[오피니언] 겨울이 싫다. [사람]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글 입력 2023.01.2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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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싫다.


 

따뜻한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점점 추워지는 겨울 날씨는 매년 적응하기 어렵다.

 

몸에 열이 없어 손과 발을 뻣뻣해지다 못해 얼기 일쑤고 내복을 필수로 옷의 몇 겹이나 겹겹이 껴입어야 움직일 만하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칩거하기 바쁘다.

 

그렇다고 집이 따뜻한 것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쉽지 않아 점심때가 되어 일어나고 집에 외풍도 심해 방에 들어와도 실내에 있기보다는 실외에 있는 기분이라 책상이 아닌 전기장판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잠시만 있다 나가야지, 5분만 있다 나가야지 하지만 정신 차리면 이미 잘 시간까지 전기장판에서 시간을 보내고 할 일을 미뤄두고 자러 가버린다.

 

지금의 나는 다가온 겨울을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다.

 

 

경ㄹ.jpg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인데 우리는 해가 바뀌면 겨울부터 맞이해야 하는가.


 

마지막 학기는 참 다사다난했다.

 

여름 방학부터 틀어지는 기미가 보이던 사람과 일이 크게 터져 관계를 정리하고 그에 따른 부가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동시에 한 달이면 끝낼 거로 생각했던 자격증은 석 달이 꼬박 걸려 겨우 합격했고 절대 헤어질 거로 생각하지 못했던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그에 따른 서류를 떼러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새해가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나는 나아갈 방향을 잃었다.

 

 

 

채울 것이 없다.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며 이력서를 준비하는데 인생의 회의감이 들었다.

 

그 흔한 토익 하나 없고 자격증 하나 달랑 있으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어정쩡한 작업물에 교차지원으로 들어가 울면서 공부해 막판에 겨우 올린 평균보다 살짝 떨어지는 성적. 뭐하나 확실하게 할 줄 안다고 증명할 게 없는 그저 그런 풋내기.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깨끗했다.

 

나는 학교를 도대체 어떻게 다닌 거야. 후회하기엔 늦었다. 이미 지나왔으니 일단 뭐든지 해야 했다. 하지만 뭘? 무엇을 먼저 해야 하지? 이것이 중요해 보이면 저것이 중요해 보였다. 일단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너무 지쳐버렸다.

 

그 어떤 학기보다 힘들었고 그걸 견뎌낸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상황을 정리할 멘탈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용기를 잃었다. 계속된 불합격과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나는 위축되었다.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밖은 추웠고 집도 추웠다. 누군가에게는 핑계 같아 보일 것이다. 그저 노는 게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무의식중에 이 상황을 도망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겨울을 핑계로 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안온함에 취해 늘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사람을 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감정에 따라,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계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지금의 감정이라면 나는 겨울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아주 힘든 겨울. 누군가의 눈에는 나의 겨울이 한없이 포근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추위는 상대적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이 고위도 나라의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고 저위도의 사람에게는 힘든 것처럼.


가본 적 없는 미지의 땅으로 가는 길목에서 고장 난 나침반을 들고 겨울바람을 맞고 있는 나는 발을 떼는 게 두려워 웅크리고 있다.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남은 체온이라도 유지하려고 웅크리고 있다.

 

눈앞의 길을 나아가기 위해서 힘을 모으는 거다.

 

누군가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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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단단한 껍질을 두른 식물처럼. 봄에 활기를 띠기 위해 웅크리고 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나는 이 겨울을 잠시 쉬기로 했다. 인생에 수많은 겨울이 왔다가 간다. 그 겨울 중 하나를 잠시 쉬는 것뿐이다.

 

지금을 이겨내고 다음의 겨울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봄을 맞이하기 위해.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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