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극히도 인간적인 이야기 - 원청

글 입력 2023.01.23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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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단편 영화처럼 똑 떼어와 보여주는 듯한 소설 <원청>은, 비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한 인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북쪽 어느 마을에서 목공을 배우던 남자가 남쪽 어느 마을의 갑부가 되고, 고향을 떠나 온갖 잡일을 하던 남자가 우여곡절 끝에 아들 둘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아편 중독인 남편을 두고 사창 일을 하던 여자는 얼떨결에 큰돈을 쥐게 되지만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며, 어떤 소년은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귀까지 희생하며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먼 길을 떠나고, 섬기던 옛 상사를 목숨 걸고 구출해오는 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것만 같은 대범한 행동들이 등장하나, 이들만큼 평범한 사람들도 없다는 것을 읽다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영웅처럼 비치는 인물들이 있지만 사실 그런 큰 용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임을 작가는 강조한다.


실제로 어디선가 살아 움직였을 것만 같은 인물들은 확실히 작품을 오랜 시간 써 내려간 작가의 애정과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쩡완푸와 같이 어리석고 답답한 군상이 있는 반면 천융량과 같이 매사에 적당히 잘 대처해 내는 군상도 함께 해 실제로 존재하는 군중을 묘사한 듯한 느낌을 준다.


온고지신이라 하면 응당 버려지는 것들, 전통이라기엔 이제는 많이 사라진 것들, 예를 들어 가부장적 문화, 남존여비 사상과 같은 요소가 마치 작가가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서술이 되어있다.

 

불편하리만치 자세하고 본능적이다. 토비들의 잔혹함 역시 고문하는 장면을 직접 관전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진다. 독자의 표정을 움직일 수 있는 작가는 엄청난 표현력을 지닌 것이라 생각하기에, 왜 사람들이 ‘위화’를 이리도 기대하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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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반에 걸쳐 인간의 입체성이 다루어진다.

 

린샹푸, 천융량과 같이 다양한 상황에 처해도 일관성이 비교적 강한 인물들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적지 않다. 천야오우를 살려주는 토비 스님은 훗날 장도끼를 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며, 리메이롄은 한없이 다정하고 똑똑한 엄마로 나오지만 정작 위험한 상황에서 잠긴 대문의 빗장을 열 생각은 하지 못한다.

 

린샹푸는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단을 두고 오는 선함을 지녔지만 얼떨결에 들어간 사창가에서도 큰돈을 두고 나오는 모습은 선한 것인지 아둔한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다. 물론 그 ‘선함’ 덕분에 결국 만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하지만.


토비들의 고문 방식을 모방한 대회를 열고 북양군에게 가진 것을 먼저 적극적으로 내어줌으로써 목숨을 부지하는 시진 사람들의 모습은 원초적이고 폭력적이다. 멍청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들 나름의 지혜로 최선을 다해 대처하고 있음을 알기에 숨이 막히는 기분으로 읽히는 장면도 여럿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이야말로 상당히 인간적이고 절대적인 선악의 부재를 보여준다.


린샹푸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청’을 결국 찾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자연사도 아닌 죽음은 독자로서 다소 충격적이었으나, 꽤나 허무맹랑하게 죽는 인물들이 많은 서사인 만큼 린샹푸 역시 다를 것 없이 설정하여 더욱 좋았다. 죽는 장면마저 ‘죽자마자 귀신이 되는 것을 보았다’는 토비들의 혼비백산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된다. 중요한 순간에 황당한 반응을 넣어 실소를 자아내는 것이 중국 소설의 특징인 것도 같다.


샤오메이의 미련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뒷이야기를 읽어 보면 무엇 하나를 원인으로 한 파장이 연결되어 불행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인간人間이란 말 한마디에 전쟁까지 일으키는 존재로, 그런 존재들이 구축한 관습과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참혹함은 명확한 소수의 인자가 있다기보다는 개개인의 우주가 부딪치며 어긋나고 비틀려 개화하고 파멸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위화는 그 과정을 총체적으로 직조하면서도 상당히 미시적으로 서술한다.


“시간의 급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라는 문장은 <원청>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참상을 마주하고 한참의 침묵을 거쳐도 결국 어떻게든 선택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끝을 알 수 없어도 결정하며 시간의 급류를 타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서사. ‘잃어버린 도시’를 내세워 ‘잃어버린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들만의 원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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