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잃어버린 나의 도시 - 원청

한 시대가 담긴 소설, 원청
글 입력 2023.01.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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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는 드라마 대장금과 관련 있다. 심한 감기에 걸려 열이 끓고 온몸이 아팠는데, 가족들은 대장금을 보느라 끙끙거리는 나를 신경 쓰지 않다가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야 화들짝 놀랐다. 그때는 고작 드라마가 뭐길래 그러는지 서럽기까지 했는데 어느덧 나도 대하드라마의 방대한 세계관에 푹 빠져들었다.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가 8년 만에 내놓은 소설 ‘원청’은 그때 드라마를 보며 푹 빠졌던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여느 소설처럼 하나의 사건을 다룰 줄 알았는데 책을 덮을 땐 한 시대, 지역이 보였다. 특히 등장인물 개개인의 감정 표현에 집중하기보다 상황 묘사에 신경 쓴 문체는 영화를 보듯 내 눈으로 상황을 살피듯 현실감 있다.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생소한 시대인데도 표현이 생생하다.

 

소설은 딩촨이라는 도시에 남매가 도착하며 시작한다. 오빠 아창은 원청에서 경성으로 가던 중에 수레가 망가져 작은 시골로 오게 되었다고, 잠시 동생을 맡아주신다면 경성으로 가 친척에게 일자리를 받고 난 뒤 돌아오겠다고 한다. 그렇게 아창이 떠난 후 린샹푸는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지만 어느 날 샤오메이는 사라진다. 처음에는 친가 원청에 갔다고 생각한 샤오메이가 계속 돌아오지 않자 린샹푸는 뒤늦게 그가 영원히 떠났음을 알게 된다. 샤오메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린샹푸의 아이를 밴 후였다. 린샹푸는 아내를 받아들이며 만약 그가 다시 떠난다면 지구 끝까지 찾아가리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샤오메이가 아이를 낳고 또 떠나버리면서 린샹푸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는 처음에 원청이란 곳을 찾아 헤매다가 시진이 샤오메이가 말한 원청과 상당히 닮아있고 아창과 샤오메이가 쓰던 말투와도 비슷한 걸 알아차린 후 터를 잡고 살게 된다.

 

이런 시작에 샤오메이와의 재회를 기대하며 읽게 되었지만,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 원청과 잃어버린 아내를 추적하는 대신 새로운 터가 된 시진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처음에 린샹푸는 아창과 샤오메이라는 이름을 찾아 헤매고 빈집을 수리하면서 돌아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둥 나름대로 아내의 행방을 조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을 버린다. 그때부터 시진은 사람을 납치해 인질값을 받거나 토지를 약탈해 살아가는 토비와 군민혁명군, 북양군의 싸움에서 살아남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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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린샹푸의 시점에서 시작해서 점차 가지를 뻗어나간다.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는 물론이고 린샹푸를 모셨던 톈 형제들, 린샹푸처럼 이민을 온 천융량과 그의 가족, 아들의 이야기와 시진 상인회 회장인 구이민, 토비인 스님이나 장도끼, 대장장이 쉬씨와 쑨펑싼, 민병장 수장 주보충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길고 짧게 설명한다. 

 

위화는 이 다양한 사람들로 인간의 여러 모습을 조명한다. 대인배처럼 남을 위해 스스럼없이 나서는 사람도 있고 남들 뒤에 숨어 목숨을 보전하는 사람도 있다. 위풍당당하던 사람도 사고를 겪고 나면 겁에 질리고 겁쟁이도 분노에 차서 민병단에 지원한다. 마을에 있을 법한 모든 사람이 있으니 입체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성격도 상황도 인생의 흐름도 다른 이 많은 사람들은 제각각의 서사를 내놓으며 600장에 달하는 소설이 대하드라마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열이 끓는데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어린 날 나의 서운함을 씻어내던, 대장금에서 받은 경이로움을 느낀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물로 피신하자 약탈을 일삼는 북양군이 시진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까지 왔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결국 삽시간에 물가로 인파가 몰리고 사람들이 밀치락달치락하며 자기 뗏목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뗏목들은 떠나기도 전에 풀어지고, 어떤 뗏목들은 수면 가운데에서 풀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얼음장 같은 물에 빠졌다. 노인과 아이들은 몇 차례 발버둥 치다가 꽁꽁 언 채로 가라앉고 튼튼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옆쪽 뗏목에 올라탔다. 그 바람에 수많은 뗏목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풀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물에 빠지고 더 많은 사람이 가라앉았다. 살려달라는 다급한 울부짖음이 시진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원청'은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전쟁이 빈번해 피난민이 늘어나고 일반인을 약탈하는 토비도 기승을 부린다. 시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맞서거나 극진히 대우하여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때론 넘기지 못해 고통을 겪는다. 

 

이 소설은 시대의 영웅이 없다. 삼국지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영웅담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살기 위해 도망치고 도리를 지키기 위해 남을 돕고 괴로움을 겪었기에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나온다. 위대하지는 않지만 공감되고 대단하진 않지만 감동적이다. 모든 이의 행동에 각자의 이유가 부여되어 소설보다는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일까. 읽는 내내 전쟁의 잔인함에 몸이 옹송그려진다. 담백한 문체가 서술하는 전쟁은 위대하지도 숭고하지 않다. 전쟁 영웅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당백으로 달려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뒤에 가려진 일반 병사들의 이야기를 한다. 미화도 과장도 없다.

 

토비는 온갖 잔인한 고문을 강행한다. 인질 몸이 문드러지거나 동상에 걸려도 개의치 않고 인질금이 제때 오지 않으면 귀를 잘라 보내면서 협박한다.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안고 달리다가 같이 찔리고 강물은 사람들의 피로 붉다. 마을에 불이 나고 열심히 키운 곡식도 다 빼앗긴다. 복수를 이루어도 몸이 성치 않아 눈을 감는다.

 

당시 시대상을 잘 모르니 대신하듯 한국의 역사를 떠올린다. 역사책에는 연도와 함께 몇 줄로 짧게 설명되는 전쟁이 깊게 들여다보면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혹은 그보다 더 끔찍하게 벌어졌을 것이다. 시험을 위해 외우기만 한 내가 부끄러워지고 전쟁의 잔인함에 치를 떨게 된다. 대체 전쟁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평화롭던 공간이 엉망이 되어야 하나.

 

대장장이 쉬씨는 인질로 잡혀가 고문을 받은 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엉뚱한 곳을 치기 때문이다. 또 쇠를 칠 때마다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전쟁이며 고문은 단순히 괴로운 일을 당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억은 평생에 걸쳐 남아있고 괴롭힌다. 읽는 동안 같이 고통스러워 책을 내려두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하며 전쟁의 처참함을 되새긴다. 


 

얼마 뒤 왕 선생은 기이하게도 자신이 계속 제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도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어서 문을 쳐다본 뒤 조심스럽게 세 아이에게 방금 자신이 문 앞으로 걸어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대답했다. 왕 선생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쪽으로 쏠리는 버릇이 고쳐졌다.

 


인질로 잡혀간 왕선생은 귀가 잘린 후 자꾸한 한쪽으로만 걷게 되었다. 그가 가르치던 학생은 하나 둘 책상을 빼서 그보다 못한 장선생에게서 수업을 들었다. 왕선생이 침울해 있을 때 그와 함께 인질로 잡혀가 귀가 잘렸던 천야오우가 동생과 린바이자를 끌고 수업을 듣는다. 그 후 왕 선생은 고문 후유증을 더 이상 겪지 않는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이후의 삶이 녹록지 않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보았으니 안타까움이 더 크다.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이어지는 생에 안도를 느낀다. 그 순간 나는 도시의 일원이 된다.

 

 

“점점 멀리 갈 거야. 원청을 찾아갈 테니까.”

아창이 원청을 언급해 샤오메이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청이 어디 있는데?”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원청은 어딘지 그리우면서 안개처럼 흐린 공간이다. 시진 그 자체이면서 완전 다른 공간이다. 아창은 원청을 언급했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창이 말한 원청이 존재하는 도시인지도 알 수 없다. 린샹푸와 그의 딸에게 원청은 잃어버린 아내이자 어머니를 의미하고 또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는다.

 

“이건 아직 시작도 시작되지 않고, 끝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띠지의 문장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원청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린샹푸에겐 시작되지도 않은 이야기이고 그 많은 인물의 삶의 끝을 보지 못했으니 내겐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린바이자가 어떻게 살아갈지, 천야오우와 다시 만났을지 궁금하며 천융량은 또 어떻게 살지 끝없이 궁금해진다. 이미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의 이웃이 되었는데 끝을 알 수 없으니 야속하기만 하다. 


원청은 이렇게 린샹푸가 영원히 찾아 헤맬 도시이면서 이미 일원이 된 나의 잃어버린 도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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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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