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의 연애 [사람]

사랑으로 가득찬 세계, 그 안에 속한 나.
글 입력 2023.01.1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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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를 즐겨듣지 않는다. 덕분에 에어팟이나 버즈같은 무선 이어폰이 보편화된 시대에 꿋꿋하게 맨 귀로 길거리를 걸어다닌다. 요즘같은 시대에 제법 흔치않은 유형의 사람인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노래를 접할 때면 늘 귓동냥인 경우가 잦다. 가족이나 지인, 가끔은 길거리 배경음악이나 버스킹 같은 곳에서 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윤하의 ‘오르트구름’이란 노래인데, 아는 언니가 동방에 틀어놓아 처음 듣게 됐다. 여기서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거, 되게 소년만화 OST같다. 무슨 노래야?”

“윤하 오르트구름. 가사가 흔한 사랑노래가 아니라서 소년만화 같다고 느낀 거 아냐? 한번 들어봐봐”

흔한 사랑노래. 나는 이 문구가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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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노래, 로맨스 드라마,로맨스 소설, 심지어 연애 프로그램까지.

 

5년 전부터 꾸준히 유행해온 것들을 보면 세상이 정말 사랑으로 빚어진 세계같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이별하고 있다. 그것이 비단 미디어든, 현실 속 인물이든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혼란스러웠다. 사랑만 집어넣으면 유행하는 건지, 아니면 사랑을 노래하는 게 그만큼 많이 쏟아져나오는 건지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흘러넘치는지 메말랐는지도 뚜렷하게 판단이 안섰다. 그냥 어딜가든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가 있었다. 가끔은 사랑이 7가지 종류가 아니라, 오로지 이성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에로스적 사랑만 있었나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인류애나 모성애같은 아가페적 사랑은 자취를 감추고 에로스만 지나치게 강조된 느낌이었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은 최근 쏟아져나오는 연애 프로그램들이었다.

 

연애프로그램들은 대개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만 선별하여 연애만을 위한 장소와 시간에 입장시킨다. 그 속에서 출연자들은 서늘한 카메라 렌즈 하에 적나라한 감정교류를 그대로 드러낸다. 누군가는 사랑을 쟁취하고, 누군가는 실패의 고배를 마신다. 한 쪽에서는 사랑이 싹틔우고, 반대편에선 슬프게도 식어간다. 그걸 우리가 고스란히 시청한다. 그게 연애프로그램이었다.

 

물론 나도 굳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성격은 아닌지라, 여느 사람들처럼 연애프로그램에 열광하며 살았다. 한때 연달아 한 시리즈를 모두 시청한 전적이 있을 정도였다. 다만, 슬프게도 연애 프로그램이 내게 기쁨만을 가져다주진 않았다.

 

‘남의 연애’

 

소위 말하는 현타와 괴리감을 한 마디로 응축시켜놓은 문구다. 어쩌면 번아웃과 닮아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 모든 게 남의 연애 같았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 로맨스 드라마나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아직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불타는 사랑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현실 속에서도 뭔가 대단한 서사가 있어야만 할 것 같고.

 

그냥 나는 아직 사랑을 잘 모르겠는데, 모두가 환상적이라느니 최고라느니 이야기하는 것에서 오는 부적응일지도 모르겠다. 트와이스 - What is Love?의 노래가사처럼 그냥 혼란스럽다고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 속 사랑에 대한 묘한 동경과 거북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우습게도, 몇번의 연애를 거쳤음에도 난 아직 이 상태 그대로였다. 처음 하트시그널이 나오던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말이다.

 

가끔 이 튀어나온 실밥처럼 거슬리는 감정이 몸집을 불릴 때엔 세계로부터 유리된 것 같다고 생각했을정도였다. 멜론 차트 Top 100 중 아무 노래나 골라 틀어도, 길거리를 걸어도, 심지어 TV나 유튜브를 켜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하나 껴있었다. 자칭 사랑을 모르는 나는, 이럴 때면 응당 갖추어야 하는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계에 통용되는 진리 중 하나를 혼자만 평생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차마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애매하고, 억지로 경험을 쌓으려 해도 안되는 이 요상한 감정을 아직 관찰 중이다. 가만히 들여보다보면 언젠가 부화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사랑 불신론자라 하기엔 얕고, 일반적이라기엔 무감한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 아가페나 플라토닉은 몰라도 적어도 에로스적 사랑에 대해선 무지렁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사랑에 대한 견해도 시시하고 표면적이지만, 언젠가 나도 연애프로그램을 볼 때 ‘남의 연애’가 아니라 스스로를 대입하며 볼 날도 찾아오리라 믿는다.

 

처음엔 사랑 타령을 하는 세상이 지겨웠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사랑이 가득찬 세계에 묻혀살다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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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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