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이 한 사람의 세계를 뒤바꿀 수 있다면 - 소프라노 강혜정 연말 콘서트, 누벨바그

글 입력 2023.01.06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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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조금 진부한 말이지만, 첫음절을 듣는 순간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임을 예감했다.


*


사실 음악은 그리 즐기지 않는다. 가끔 히트곡이 나올 때만 몇 번 흥얼거리다 이내 잊어버리고 클래식 곡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이나 교양과목에서 배우는 게 전부였다.


영화에서 효과음이 주는 몰입감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선 동의했지만 소리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준다는 말은 믿지 않는 부류, 딱 그런 사람이었다. 원체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와서인지 그 흔하다는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도 구기종에 머물러있다.


그런 사람이 클래식, 그것도 소프라노 콘서트를 보러 간 건 전적으로 변덕이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갑자기 너무 좁은 세상 안에 갇혀있는 것 같고, 그래서 참을 수 없이 갑갑한 때. 가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때 말이다.


동시에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콘서트의 소제목 ‘누벨바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고전적인 클래식 곡 대신 영화 OST로 채워진 공연 리스트가 좀 더 쉽게 결정을 도왔다. ‘라라랜드’나 ‘포카혼타스’, ‘티파니에서 아침을’ 같은 영화는 적어도 한 번씩은 봤으므로 적어도 멍하니 있다 오진 않겠다는 속셈이었다.

 

 

1227 강혜정포스터 Final_고화질.jpg


 

많은 이의 땀방울이 스며든 공연인 만큼, 콘서트는 잘 맞물리는 시계 초침 같았다. 단순히 소프라노 1인의 독주일 거란 상상과는 달리, 관객의 몰입에 온 신경을 쏟은 태가 났다. 감탄이 흘러나오는 강약 조절이었다.


소프라노 강혜정의 연말 콘서트는 한경arte필하모닉과 지휘자 차웅, 소프라노 강혜정과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그리고 클라리넷 솔로 연주자 송호섭으로 구성됐다.

 

 

한경arte필하모닉.JPG

 

 

처음에는 한경 arte 필하모닉의 가벼운 연주로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악단의 연주자들이 하나, 둘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낮은 단상 위에 지휘자가 올랐다. 모두가 시작을 예감한 적막 속에 높다란 바이올린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일정한 규칙을 띈 손짓이 허공을 갈랐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최초의 순간.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손짓 하나에 웅크린 몸을 이완시키는 것처럼, 하나의 개체 같은 움직임이었다. 단 1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는 정교한 설계 속에 높고 청아한 바이올린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과 숨을 죽이는 타이밍, 그 아래 단단하게 음정을 뒷받침하는 피아노의 선율과 크림처럼 녹아드는 관악기의 현율이 그저 비현실적이었다. 단숨에 테마를 바꿔버렸다.


편안한 벨벳 좌석 위에 앉아 무질서하게 이완되어있던 몸이 마치 허공을 가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떠오르는 소리라기보단,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숲길 위에 선 느낌이었다. 깊은 울림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는 진했고 편안했다. 떠오르는 대로 비유해보자면 2,000원짜리 이어폰을 쓰다 150만원짜리 이어폰을 청음 해본 충격에 가까웠다.


오케스트라의 3,4분의 짧은 첫 곡이 끝난 후엔 전반적인 설명이 이루어졌다.

 

팝 칼럼니스트의 설명에 따라 어떤 의도로 제목을 지었고, 곡을 구성했는지, 콘서트 속 의도된 모든 것들을 따라가는 시간을 가졌다. 자고로 미술관에서 도슨트가 존재하는 것처럼, 소프라노 강혜정의 콘서트에는 팝 칼럼니스트가 있었던 셈이다.

 

 

강혜정_(c)Young Chul Kim.jpg

 

 

한경arte필하모닉이 배경을 만들고, 팝 칼럼니스트가 나침반을 쥐여준 공간 속에서 드디어 소프라노 강혜정이 등장했다. 조금 비현실적이고, 안온한 공간에서 오로지 소프라노 강혜정만이 눈이 부셨다. 쏟아지는 빛무리가 모두 소프라노 강혜정에게 집중된 것 같았다.


수십, 수백의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부담 속에서 첫 곡은 여유롭게 이어졌다. 아마도 처음 들은 목소리는 구체적인 단어가 아니라, 허밍 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음표가 눈에 보인다면, 그 위에 가볍게 올라서기 위한 발돋움 같은 것, 말이다.


놀랍게도 그 허밍에 손끝이 얼어붙었다. 최초로 높은 층고의 오래된 성당 속에 놓인 것처럼, 차원이 바뀐다는 말을 경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당시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나열하자면, ‘어떻게 사람이 아주 진귀한 악기처럼 노래할 수 있지?’ 란 생각과 저항 없이 천부적인 재능을 수긍하게 됐다. 단순히 ‘아름다운’ 목소리라 칭하기엔 너무 다채롭고 복잡한 것이 그 속에 있었다. 단어로 실체를 재현해보자면, 그래. 매번 상상하던 성서 속 천국에 어울릴법한 목소리였다.


진귀한 실크처럼 깃털 같다가도 감정을 실을 땐 선명했다. 소프라노 강혜정이 다채로우면서도 유연한 목소리로 칭송받고는 한다더니, 단어의 뜻을 이만큼 직접적으로 이해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음 곡이 이어질 때까지, 각 영화의 세계관에 빠져든 것처럼 비현실감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곡과 곡이 이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맥박이 거세게 뛰는 손을 쥐었다 펼치는 행동을 반복했다. 단편적인 감각으로라도 현실이란 걸 확인받고 싶었다.


콘서트가 이어지는 동안, 누벨바그라는 이름에 실로 부합할 만큼 몰입이 이루어졌다. 이미 알고 있는 영화임에도 OST에 담기는 감정은 영화 속 일부여서 그런지, 곡이 이어질 때마다 새로이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시각적인 것에 의존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생각에 잔금이 그어지는 콘서트였다. 어떻게 보면 음악만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만으로 공간이 뒤바뀌는 듯한 감각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로 소프라노 강혜정의 콘서트를 정의해보자면, 데미안 속 대사를 빌려와야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내가 어느 날 참을 수 없이 갑갑함을 느꼈던 것, 그것 자체가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조우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음악이 누군가의 삶을 뒤바꿀 힘이 있다면, 그건 소프라노 강혜정의 목소리와 닮아있을 것이다.

 

 

 

최현서_아트인사이트 명함 겸 태그.jpg

 

 

[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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