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조각 태우기 [영화]

영화 한 편으로 '나'를 찾기
글 입력 2022.12.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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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어둠을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몰려오는 공허함에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뉴스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죽음에도 세상은 원래 그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 받고 싶어하는 듯 물음은 온몸을 덮쳐온다.


결국, 나의 존재를 명확히 밝히지 못한 순간 삶의 조각을 태우게 된다.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나라는 사람이 쓸모없음을 알게 되고, 삶의 조각을 태우면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한다.


허나, 그 과정에서 삶의 조각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면서 세상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중 필요치 않은 것은 없다며 허탈한 마음을 가득 채운다.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며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강력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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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HO

 

 

갑작스러운 시한부에 당황할 틈도 없이 주인공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의문의 존재’는 계약을 제안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가지를 없애는 대신에 숨이 붙어있는 하루를 내어 주겠다며 달콤한 속삭임을 들려준다.

 

이 달콤한 제안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시계 따위 있지 않아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전화기가 없으면 편지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러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물건들이 없어짐과 동시에 물건 안에 담겨 있던 추억과 사랑이 사라지면서 주인공의 삶은 바뀌게 된다.


삶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는 주인공 앞에 천사인지 악마인지 헷갈리는 ‘의문의 존재’를 등장시킨 것은 독특한 스토리텔링이다. 의문의 존재의 등장은 다소 우울하게 전개될 수 있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여기게 하며 더욱 유쾌하게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든다.


존재의 이유조차 불명확한 의문의 존재는 주인공을 시험대 위에 올리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고민을 고취시키고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존재 한 가지쯤 없어도 된다는 주인공의 마음을 변화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선택으로 그 안에 담긴 추억과 함께 존재를 없앤 것인데, 되려 자신을 향해 화를 내는 주인공에게 의문의 존재는 수명이 늘어났으니 된 것이 아니냐며 가시가 돋은 말로 주인공을 건드린다.

 

그리고 의문의 존재와 겪은 몇 번의 사건 끝에 주인공은 의문의 존재와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고 있던 나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의문의 존재의 모습은 주인공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무의미한 고민들과 함께 허망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를 나누라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였다.

  

또 다른 나를 의문의 존재로 등장시킨 스토리텔링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마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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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HO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하는 이 영화는 나의 삶의 가치에 값을 매기기보다 영원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고착시킨다.

 

크든, 작든 삶에는 무수히 많은 존재와 추억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며 산다. 적게 보이지만 큰 노력으로 만들어낸 ‘나’라는 사람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삶의 주인공이 되는데도, 타인을 상대로 비교를 하며 부정적으로 삶을 바라본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존재의 이유를 찾으라 말하면 주변을 둘러볼 시간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대로 하루를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밤 늦게 침대에 누워 깜깜한 천장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나는 소중한 사람일까?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누가 슬퍼해 줄까? 무의미하고 우울함이 가득한 고민들로 손가락을 접어가며 내 장례식에 와 줄 사람을 세어가다 까무룩 잠이 드는, 그런 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눈을 뜨는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직장을 가기 위해 손에 쥔 교통카드에 세월의 땀냄새가 묻어 있는데도 그게 자신이 살아온 삶의 가치인 줄 모르고 물티슈로 벅벅 닦기만 한다.


영화는 말한다.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일궈낸 하루는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라고 분명하게 외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인 ‘나’를 만든 건 자신이고, 자신이 아니면 이 캐릭터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똑같은 일상에 ‘나’라는 존재를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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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HO

 

 

죽음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논하는 영화는 따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허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느끼며 소중함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에게 평소에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영화 속에서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에 대한 의욕이 없고 삶이 지쳐 물먹은 솜 마냥 몸이 무거워진다면, 삶을 환기시켜 줄 수 있는 마법이 있는 이 영화 한편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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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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