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잃어야만 성장할 수 있나요 [영화]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2012)
글 입력 2022.12.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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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두 번 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먼저 이야기를 접하고 성장하면서 그 이야기를 잠시 잊어버리고 있다가, 유년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보면 행간에 기억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

 

한 이야기를 두 번 이상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동명의 원작 소설이 1978년도에 번안되어 출간된 뒤, 80~90년대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가족 구성원 및 가족 가치관의 변화와 맞물려 비교적 최근까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트세대가 탄생하기 직전까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이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비록 한국을 기준으로 지구 정반대에서,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임에도 많은 어른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통해서 어린이를 키운다는 것과 존중한다는 것의 가치가 익숙하지 않은 사회의 현실을 엿볼 수도 있다.

 

이 글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어른의 관점에서 보는 글이다. 정신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시기인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온 뒤,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 필요한 것을 제제의 이야기를 다시 보며 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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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는 결핍이 많은 아이다. 아버지의 실직과 사회에 표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숨겨져 있는 원주민 인종에 대한 차별, 빈민 동네에 살며 경험하는 열악한 인프라와 교육 환경은 제제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외부적인 결핍이다. 자신을 둘러싼 이런 외부적 결핍을 제제는 막연하게 인지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제제의 삶에 영향을 더 크게 준 결핍은 정신적인 결핍이다. 제제는 당시의 많은 브라질 빈민촌 출신이 그렇듯 대가족 출신이고, 그렇기에 제한된 자원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만족스럽게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런 부족함은 가족 전체에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 결과는 제제에게 몰리는 가족의 구박과 신체, 언어폭력으로 표출되었다.

 

여기서 제제의 삶을 결정하는 결핍이 형성되었다. 정신적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도 없고, 자신을 문제 있는 존재로 파악하게 만드는 제제의 마음속 허전함은 많은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 제제가 하는 장난이 그것이다.

 

사실 제제의 장난과 문제적 행동은 주변 사람들이 끝없이 인내하고 받아들이기에 버거운 면이 있다. 제제의 복잡한 속내와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기에 그들은 바쁘고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족과 뽀르뚜가 아저씨를 제외하고 제제가 소통하는 어른은 학교 선생님과 동네 가게 주인아저씨뿐이다. 이들도 제제의 문제를 모르지 않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여유가 되지 않아 그 문제들을 가볍게 넘길 뿐이다.

 

제제가 그의 정신적 아버지 뽀르뚜가 아저씨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경험은 제제가 자신의 결핍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제제는 망설이지만 뽀르뚜가에게 상처투성이인 자기 몸을 보여주고,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부탁하기도 한다.

 

제제가 포르투갈인 아저씨와 함께 지낸 추억이 제제에게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기는 했지만,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의 시간은 영원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그것이 뽀르뚜가 아저씨의 사망으로 일방적으로 종결되었지만, 그가 사망하지 않았어도 제제 가족의 이사나 제제의 성장에 따라 지속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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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의 서문에서는, 제제가 불우한 어린 시절에 가장 의존하던 가족 구성원의 사망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제제에게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제는 살아남았고, 소설을 쓰며 (원작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픽션이니) 영혼을 달랜다. 가장 구박받던 존재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이미 상실의 슬픔을 딛고 성장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뽀르뚜가 아저씨와의 추억은 더욱 소중하다. 제제가 표현할 수 있도록 했고, 어린 나이이지만 상실의 아픔을 이미 크게 겪어본 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에게 이렇게 큰 시련이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을 겪고 성장한 어른의 시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바라본다면 제제는 사랑과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강하게 성장했을 수 있었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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