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집은 어디인가, 사월의 사원 [연극]

글 입력 2022.12.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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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집은 당신에게 어떤 공간인가.

 

짧은 물음에 대한 대단한 답을 찾지 못해 빙빙 돌며 피해오던 시간을 ‘사월의 사원’을 관극하며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며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확인하는 따뜻한 공간인가, 아무런 부담없이 자유롭게 쉬며 나를 발견하는 공간인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로서의 집이 존재한다. 갈 곳 없이 혼자 된 이들이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눠 갖자 가족이 되고 집이 되었다는 이야기. 바쁘게 이어가는 삶 속에서 따뜻한 쉼표가 되어준 극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았다.

 

 

 

각자 다른 이유로 상처입고 홀로된 사람들이

그들의 공간을 함께 사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


 

뜨개질 공방을 운영하는 영혜. 어린 시절 자신을 버렸던 모친이 어느 날 별안간 영혜를 찾아와 부탁을 한다. 곧 요양원에 들어갈 자신을 죽기 전까지 보살펴 달라고, 그래주면 영혜 네가 평생 살 수 있는 집 한 채를 주겠노라고.

 

영혜는 모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컸던 그 집에 영혜는 마음이 가는 이들을 하나둘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혜의 마음과는 달리, 모인 이들은 서로가 불편하기만 할 따름.

 

한편, 바다 건너 캄보디아 땅의 한 사원에서는 희망을 담은 누군가의 기도가 울려 퍼진다.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존재가 물속에서 뭍으로 돌아온다.

 

*

 

2021년 벽산문화상 희곡부문 당선작, 배해률 작가의 [사월의 사원]이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사월의 사원]은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 구석구석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돕고, 끌어안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찾아 움직여 보려는 이야기다.

 

2021년 벽산문화상 심사평에서는 "[사월의 사원]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중략) 작가는 이 집을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간절한 기도가 울릴 수 있는 사원이 되게 합니다. 세속의 집으로부터 숭고한 공간인 사원으로 뛰어오르는 힘 속에서 우리는 [사월의 사원]의 새로운 언어를 확인합니다."라고 평한 바 있다.

 

요즈음은 조금 덜한 편이지만, 집이라는 공간의 속성에 대해서는 늘 할 말이 많은 편이었다. ‘집’의 물리적 공간과 나에게 주는 심리적 의미가 짧은 시간 동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첫 번쨰 집은 삶의 첫 기억 속 공간이다. 고향에서 10년이 넘는 동안 부모님과 같은 집에 살며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이 지금까지도 거주하고 계시기에 언제든지 힘들 때면 가장 편안하고 따뜻하게 쉴 수 있는, 다행스런 공간이다.

 

두 번째 집은,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의 기숙사였다. 정서적인 역할보다는 거주라는 기능적인 역할에 충실한 공간으로, 교실에서 몸을 옮겨 유일하게 누울 수 있는 학교 안의 쉼터 같은 곳이었다. 쉼 없이 공부한 후에도 성적에 대한 불안감에 가끔은 숨어 공부하고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었던 서러움 서린 공간이었다. 그래서 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알맞은가에 대해서도 조금은 의문이 든다. 몇 문장 사이에 그리움과 따뜻함의 감정을 담지 못한 건 그 때문이다.

 

세 번째 집은 대학교 기숙사였다. 그 안에서도 방을 3번 정도 바꾸었으나 약 1년간의 기억을 추려보자면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넓었으며 공용 화장실이나 식당, 부엌, 세탁실 등 편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누리기에 별 부족함은 없었다. 서울에서 타지 생활을 이어나가며 친구를 조금 더 만날 수 있길 바랐지만, 그것은 공간보다는 내 노력의 영역이었다.

 

네 번째 집은 언니와 살고 있는 집이다. 먼저 서울에서 살고 있던 언니가 기숙사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올해가 지나면 벌써 6년이 꽉 찬다.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는 곳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가족과 밥을 해먹고, 옷과 침구를 계절별로 수납해두고, 화장실을 직접 청소하는 집 다운 ‘집’을 찾게 되자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집’에 가고 싶어졌다는 마음이었다. 본가에서 만큼 편하지는 않더라도, 비용을 지불하고 잠시 빌린 것이더라도, 늘 한결 같은 표정으로 하루 중 가장 나답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언제든지 내어주기 때문이다.

 

집의 조건은 생각보다 별 것 없었다. 마음의 부담이 가장 덜한 것, 하루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거창하지 않은 것들이 삶을 계속 이어가게 한다. 일하며 번 돈으로 생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가족, 친구와의 짧은 대화, 공간을 채우는 사랑 담긴 물건들, 그런 작은 것들이 집을 채우고 나를 채운다.

 

이야기 속 인물들 또한 그렇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남겨준 집을 갖고 있던 영혜가 마음 가는 이들에, 지수, 혜영, 현주에게 거리낌 없이 내어준 공간은 집이 되어 따뜻해졌다. 지수와 함께 일하며 친구가 된 수린(캄보디아어로 4월을 뜻함)이 실종된 딸을 찾게 된 사원이라는 공간은 이 집의 의미를 한층 더 심화한다.

 

남편의 폭력으로 괴로워하던 딸이 사고로 이승을 떠나 마침내 혼이 편하게 쉴 수 있게 된 곳. 공감, 위로, 휴식이 만나 더 할 것 없이 안온해지는 무위의 공간.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집의 의미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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