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래알 같은 껄끄러움 - 레이디스

글 입력 2022.12.1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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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캐롤>의 작가로 유명한 저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의 시인’, ‘서스펜스의 대가’ 등으로 불린 미국의 소설가이다. 에드거 앨런 포 상, 오 헨리 상, 프랑스 탐정소설 국제 부문 그랑프리 등을 수상하고 <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로 꼽혔으니 '우리 시대 최고'의 범죄소설과 심리소설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

 

하이스미스의 초기 심리소설 열여섯 편을 발굴해 묶은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집 <레이디스>.

 

수록된 단편 열여섯 편에서 도드라지는 분위기는 '불안'이다. 몇 작품을 제외, 어딘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긴장감이 작품 전반을 차지한다.

 

수록된 소설들이 매력 있는 이유는 소설의 흡입력이다. 소설 속 묘사되는 미묘한 불안은 어느새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느새 큰 일렁임으로 변모한다.

 

소설이 불안을 극대화하는 법을 두 가지 관점에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페이지를 특히나 더 넘기기 싫었던 두 편의 단편을 일부 인용해 내용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미묘한 시작


 

독자를 이야기에 몰입시키기 위해, 하이스미스는 도입부부터 이유 모를 불길함을 심어놓는다. 보통 평범해 보이는 일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익숙하고, 때로는 평화롭기까지 한. 하지만 이내 일상 속 불안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낸다.

 

<엄청나게 친절한 남자>는 익숙한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샬럿과 에밀리. 이내 한 남자가 걸어온다.

 

 

“안녕.” 남자는 아이 둘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는 잠시 발길을 멈추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저씨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니?” 그는 미소를 띠고 조용하게 말했다. 

"사탕을 좀 사다 주마."

 

p.222-223

 

 

독자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전개될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다만 두 아이들이 놓인 상황을 보며 어떠한 '감'을 느낀다. 이에 독자의 불편한 감각이 깨어나고, 이는 미묘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이를 모른 채 답한다. “나는… 사탕이면 다 좋아요.” 샬럿이 말했다.(p.223) 막연한 상상이 이내 현실로 전환되려는 싹이 보일 때 미묘한 불안은 이내 진득한 불쾌함으로 변모한다.

 

<영웅> 또한 다를 바 없는 일상에서 비롯된다. 가정교사 인터뷰에서 열심히 대답하고 있는 루실. 가정교사에게 물어볼 당연한 질문들과 질문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대답, 시시콜콜하고 평범한 상황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내 루실 스미스가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상황과 함께 분위기가 전환된다.

 

 

"처음부터 새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루실." 거울 속의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행복하고 쓸모 있는 삶을 살면서 이제까지의 모든 과거를 잊자."

그러나 자기 말을 스스로 부정하듯 그녀의 눈이 다시 지나치게 크게 떠졌다. 그렇게 휘둥그레 크게 뜨면 눈은 어머니를 아주 많이 닮아졌고, 어머니는 그녀가 잊으려는 과거의 일부였다.

 

p.244


 

소설 한 장을 넘기자마자 드러나는 것은 '숨겨진 과거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거가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행복하고 쓸모 있는 삶'과 반대되는 과거가 있다는 갑작스러운 복선은 불안함을 만들어낸다. 하이스미스가 제시하는 어딘가 불안한 상황은 마치 운동화 어딘가에 모래알 한 알이 들어간 듯한 껄끄러움을 불러일으킨다.

 

 

 

불안의 심화


 

하이스미스는 미묘한 불안을 끈덕한 기분 나쁨으로 바꾸어 놓는다. 마치 마치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듯 말이다. 감시받는 인물, 쫓기는 인물, 또는 강박을 지닌 인물과 함께 미묘했던 불안은 커져간다. 껄끄러운 감정은 불쾌함을 조성하기 위해 철저히 설계된 상황과 섬세한 속마음으로 심화된다. 이는 문장에 잘 드러나는데, 상당히 불쾌하게 만들었던 문장들이 있었으나, 예비 독자들을 위해 극히 일부만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남자가 덥석 샬럿의 손을 잡았고, 샬럿은 손가락이 뜨끈하고 축축하다고 생각했다.

 

p.229

 

 

이제 <피노키오>의 책장을 넘기는 그녀는 강렬한 만족감과 행복에 젖었고, 그 감정이 그녀가 읽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기억이 났다. 정신병원의 의사가 독서를 권했고 영화도 보러 가라고 했다.

 

p.258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을 파헤치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기분이 불편해졌다. 읽기 꺼려졌던 것은 분명 작가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잘 꺼내왔기 때문이다. 탐욕, 시기, 증오 등의 소재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를 상세히 풀어냈다. 상세한 서술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감정의 근원을 찾게 만들었고, 때로는 인물의 심리를 짐작하게 만드는 찝찝함을 선사했다.


책을 통해 문장과 전체 이야기 흐름을 따를 때, 불안을 보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심리소설의 묘미는 '몰입'이다. 내가 곧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고 이해할수록 소설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인물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소설에 몰입하게 된다. <레이디스>는 그중 인간이 잠재워둔 어두운 내면을 수면 위로 꺼내 올리는 탁월한 소설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묘한 불쾌함과 불편함을 잘 알고 있다. 잠재워 두었던 불안의 존재를 깨우고, 그 불안의 크기를 키워가는 식으로 전개해나간다.


결말은 이야기마다 상이하다. 어떤 단편은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기도, 어떤 단편은 김이 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작은 불안이 심화되는 과정이 상세하고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글로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서스펜스 장르의 책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레이디스>를 추천한다.

 

 

[이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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