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망가진 관계의 실타래를 풀고 다시 엮어가는 일 – 연극 ‘사월의 사원’

각기 다른 상처를 입은 이들이 한 데 모여 서로를 돕고 보듬어가는 연대의 이야기
글 입력 2022.1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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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사월의 사원_전화벨이 울린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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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연극 ‘사월의 사원’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극 <사월의 사원>은 배해률 작가의 작품이자, 2021년 벽산 문화상 희곡 부문 당선작이다. 이 극은 관계에서 입은 상처 혹은 사회적 폭력 등 각기 다른 이유로 홀로된 이들이 한 데 모여 서로를 돕고 보듬기 위해 마음 쓰고 연대해가는 이야기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려 한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연대한다는 연결감, 그리고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항시 느껴야 안정을 찾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계’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개개인마다 타고난 본성이나 성질, 혹은 겪어온 환경이 천차만별이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완적인 관계를 맺기까지는 적절한 시간과 거리가 필요한 듯하다. 


이 극 역시 관계와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자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들이 모여 그들이 사는 공간을 ‘함께’ 사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고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를 찾아 움직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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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공방을 운영하는 영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렸던 모친으로부터 집 한 채를 받는다. 대신 한 가지 부탁과 함께. 홀로 살던 삶에 불쑥 나타난 모친은 곧 요양원에 들어갈 자신을 죽기 전까지 보살펴주기만 하면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주겠다고 한다.


제안을 수락한 영혜는 혼자 살기엔 너무나도 넓은 집을 주변 사람들로 채워나간다. 영혜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을 주워오기 시작한다. 지수와 해영은 그렇게 영혜의 집에서 방 하나씩을 꿰차게 된 인물들이다.


지수 또한 영혜처럼 가족에게 버려졌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누군가가 폭력을 행하는 것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보아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듯하다. 공장,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정신병 약을 복용하며 영혜의 집에서 살아간다.


해영은 BL 장르의 성인 웹툰 작가로 항상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가짜’ 게이가 아니냐는 말이 그의 신경을 계속해서 거슬리게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남들의 편견과 시선이 지긋지긋한 듯하다. 1년 반 전 죽은 남자친구의 환영 또한 그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다.  


영혜, 지수, 해영 모두 고독이 일상인 존재들이다. 자신이 속하는 공동체인 가족과 사회의 폭력으로 인해 상처 입고 홀로 남겨진 연약한 개인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공통점 덕분에 우연히 한 데 모이게 됐다. 각자의 생활을 살면서도 거실이라는 공간에서 간간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반평생 혼자였던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에 큰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영혜가 집에 현주와 기정을 새로 데려온 이후부터였다. 남편과 이혼한 현주는 그 사이의 식솔인 기정과 둘이 나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싶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영혜의 호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해영은 현주가 불편하다. 방에 있는 남자친구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표하며 자신의 생활에 신경 쓰는 그녀가 성가시기만 하다. 두 사람 모두 서로와 잘 지내보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자신과 가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낯선 이가 정신병 치료를 권하는 말까지 꺼내자 해영은 마음의 문을 닫는다.  


지수는 기정이 신경 쓰인다. 학교에서, 길에서 버릇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기정이 두렵다가도 그가 훗날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폭력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충고를 건넨다. 그러나 기정에게는 그 충고가 반가울 리 없다. 지수가 자신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한다고 생각하며 소리 지르고 분노한다. 


모두가 홀로된 이들이기에, 공동체가 간절했던 이들이기에 관계에 서툴러도 그들의 공간을 함께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애썼지만, 서로가 너무나도 달랐다. 가진 상처와 생각의 차이로 인해,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적절한 언어와 방식을 취하지 못했고 그렇게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각자가 다르지만 삐걱대기도 하고 맞춰가면서 다 같이 살아갔으면 하는 영혜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그들은 서로의 존재가 때로는 불편했고 때로는 껄끄러웠다. 영혜는 호의를 보인 것이었지만 닿는 사람들에게는 그 선의가 거북하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지수는 지난 시절 자신에게 힘이 돼주었던 존재인 메싸를 만나러 캄보디아로 떠나고, 해영도 집을 나간다. 기정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현주마저 떠나면서 영혜는 넓은 집에서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흩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서로의 안녕을 생각한다. 홀로 집에 남은 영혜는 모두가 다시 돌아와 다 함께 이야기할 날만을 기다리고, 우연히 만난 해영과 현주는 집에서 꺼내지 못했던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


메싸의 딸인 수린의 유골함이 있는 캄보디아 사원을 찾은 지수는 간절한 희망을 담아 기도한다. 영혜와 해영이 더 이상 외로워하거나 상처 입지 않기를. 현주가 부당한 대우 없이 일하면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정이 폭력을 쓰지 않고 감정을 표출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를. 그렇게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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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가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일은 그녀가 하는 뜨개질이라는 행위와 닮아있다. 서로 다른 실을 한 데 모아서 깊게 얽히게 하고,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꿰고 엮어서 하나로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뜨개질은 금방이라도 코가 어긋날 것처럼 위태로운 행위다. 소중히 엮고 애써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고 싶어도 마음처럼 쉬이 되지 않는다. 실 하나가 보기 좋지 않게 삐져나오거나 아니면 결과물이 완전히 망가지는 일도 흔하다.


그런 점에서 관계는 곧 뜨개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로 엮이고자 하는 본성이 있어서 가깝게 얽히게 되지만, 그 가까움이 어느새 불편함으로 다가와 코가 어긋나듯 한순간에 어그러질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그러진 관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망가진 실타래를 풀고 다시 엮는 것처럼, 적절한 거리와 방법과 모양을 찾아간다. 다시 가까워지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방법으로 서로를 위함으로써 연대하고자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동시대의 연대라는 건 때론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닿기 어려운 무언가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거리 안에서는 그럼에도 낙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배해률 작가의 말을 빌리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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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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