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여있는 사람 [사람]

글 입력 2022.12.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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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 해의 끝.


무엇인가 끝이 보인다는 건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지금껏 살면서 한 해를 보내주는 일을 수십번 반복했는데도 아직도 가끔 목이 메인다. 뭐든 끝이 날 것만 같은 시간이다.


이처럼 12월은 끝과 맞닿아있는 시간이다. 새로운 시작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12월이 되면 본능처럼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연말결산이나 버킷리스트 달성하기, 아니면 대청소를 하는 것들 말이다.


내가 다가오는 올해의 결말을 맞이하는 방법은 ‘회고하기’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후회하고, 한 문장으로 정의해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1년간 무슨 일을 하였는가, 그래서 뭘 이루었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는 과정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달력의 숫자가 바뀌자마자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분명 날마다 숨 가쁘게 살았는데도 말이다.


그 당시에는 그토록 강렬한 감정과 동력을 만들어냈던 일들도 이젠 머릿속에 겨우 1초, 아니면 그보다 짧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나중엔 감정을 스러지고 결과만 남는다더니, 이 말을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매년 반복해오던 일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난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처럼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막연히 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기묘한 탈력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 주제에 몰입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떠오른 문장은 그거였다. ‘고여있는 사람’. 아마도 내 2022년을 정의해줄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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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있다’는 의미는 주로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단 의미다. 때로는 한 분야에 능숙한 사람을 일컫기도 하지만, 내가 떠올린 의미는 그거였다. ‘성장하지 못하고 한곳에 묶여있는’, 고여있는 사람.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사실 스스로도 잘 모른다. 그저 떠올렸고, 곱씹어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을 뿐이다. 올해의 나는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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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다른 장소를 방문하지 않았다거나,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서울 곳곳을 누비며 살았다. 그럼에도 말뚝에 묶인 코끼리 같았다. 같은 곳을 빙빙, 의미없이 왕복하며 살았다.


내 한 해를 정의한 지 고작 하루.

 

나는 마치 하루 내내 우울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생각의 늪에 빠져들었다가, 입안을 잘게 짓씹으며 늘어지는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내가 말뚝에 묶인 코끼리였다면, 그 말뚝이 뭔지 알아낼 차례였다.


레포트를 쓸 때처럼 커다란 A3 종이를 무작정 써와서 그 위에 제멋대로 글을 썼다. 어느 땐 문장이었고, 내킬 땐 단어였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실타래가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우습게도 금방 답을 찾았다.


올해 내가 성장하지 못한 분야는 그거였다. ‘인간관계’. 누굴 만나듯 기존에 해왔던 대로 웃고, 이야기하고, 친밀해지려는 절차를 밟았다. 과거에 성공했듯이, 이렇게 하면 모든 인간관계가 성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밝고,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을 최소한 싫어하진 않을 것 아닌가.


잘 만든 NPC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비슷한 곳을 가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게 리스크가 가장 적은 일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인간관계에 실패하기 싫었다.


실패하기 싫어 발버둥 치다 보니, 관계에서 늘 노력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됐다. 나는 항상 비슷한 텐션을 유지해야 했고, 비슷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으며, 비슷한 조언을 반복했다. 말뚝에 묶인 코끼리처럼 빙빙빙, 같은 사람의 페르소나를 반복했다. 그 행동을 1년이나 했다. 1년, 365일, 8,760시간. 그 귀한 시간들을 말이다.


이로 인해 몇가지 관계에 대한 원칙들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1.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말 것

2. 진실할 것

3.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땐 신중할 것

그리고 4. 나만 노력하는 관계는 미련 없이 놓아버릴 것.


사람마다 적용되는 폭도, 실현 방식도 천차만별일 테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지표가 되리란 건 확신할 수 있다. 마치 다가오는 2023년에 내가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성장하지 못한 나’를 긍정적으로 소화하고, 성장동력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사실 이 글을 쓰는 현재에도 ‘고여있는 사람’이란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인간이라면 응당 따라오는 아쉬움, 안타까움 같은 감각이 손끝에 만져질 듯, 너무 가까웠다.


그럼에도 이 날것 그대로인 글을 Opinion으로 발행하는 이유는 이것마저도 이겨내겠다는 다짐임과 동시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계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문장을 써볼 작은 계기, 스스로를 돌아볼 생각의 파편, 그리고 누군가의 안에도 존재할 ‘고여있는 나’를 다루는 방법들에 대하여 말이다.

 

이 글을 처음 쓸 때부터 마무리 문장으로 써두었던 글을 남기며 Opinion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많이 다정하고, 사랑하고, 너그러워지세요. 하지만 다정의 대상에서 스스로를 배제하진 마세요. 꼭 타인에게 너그럽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워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이 행복으로 가 닿는 길이 포근하고 다정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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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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