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에 테두리는 없다.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

글 입력 2022.11.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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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폰타나의 사진은 ‘회화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평면적이고 사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회화성’을 향한 지향성은 컬러 사진이 지닌 ‘예술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 흑백 사진이 대세였던 시절부터 컬러 필름을 받아들여 작품 활동을 해온 프랑코 폰타나는 컬러 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닐까.

 

흑백 필름이 쌓아온 예술성을 넘어 흑백이 보여줄 수 없는 컬러 사진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가인 셈이다.


마이트뮤지엄에서 열린 프랑코 폰타나의 한국 최초 회고전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은 컬러 필름을 탐구한 작가의 전시인 만큼 색채에 집중한 연출이 돋보였다. 노루페인트와 협업을 통해 팬톤 페인트로 전시장 벽을 칠하고, 색의 명칭을 표기해두었다.

 

보통 흰 배경에 걸린 작품을 보게 되는 것과 달리 강한 색들이 배경을 맡고 있어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색이 칠해진 벽은 다른 벽과 구별되어 벽면 전체를 한 화면으로 생각하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개별 작품을 유심히 보는 것과 또 다른 관람법이었다.



FRANCO FONTANA© BASILICATA 1975 KKYT.jpg


 

지니뮤직과의 협업도 흥미로웠다. 지니뮤직은 ‘지니 플레이컬러’ 컬러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니에 있는 음악을 333가지 컬러로 표현하는 컬러 큐레이션 서비스로, 음악마다 고유한 뮤직컬러를 부여하여 음악 감상 이력에 따라 뮤직 컬러를 보여준다.

 

이러한 서비스 특징을 살려 색이 칠해진 벽에는 색의 명칭과 컬러별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큐알코드가 제공되었다. 전시장의 끝에 이르면 앞선 공간에 제공되었던 컬러 스티커를 골라 관람객이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 수 있는 '뮤직 컬러 스케이프'가 있었다.


뮤직 컬러 스케이프가 있는 줄은 몰랐으나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던 벽이나, 마음에 들었던 벽의 색을 찍어둔 것이 기억났다. 사진을 다시 확인하면서 스티커를 고르고 컬러별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했다. 스티커를 챙기면서도 어디에 쓸지 고민이 되었는데, 이는 기우였다.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며 ‘뮤직 컬러 스케이프’ 책자를 발견했고 그 안의 큐알코드를 통해 컬러별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게 되었다. 비록 짐정리 시간이 수 배로 길어졌지만, 전시장에서 보았던 사진과 다채로운 색상의 벽을 떠올리며 다녀온 전시에 대해 가만히 곱씹을 수 있었다



FRANCO FONTANA© Los Angeles 1990 GGTF.jpg


 

전시는 [랜드스케이프] [어반스케이프] [휴면스케이프] [아스팔토]의 네 가지 섹션을 통해 122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오래 사진 활동을 한 사람이다보니 그 안에서도 경향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초반부에 위치한 [랜드스케이프]에서 두드러졌다고 느낀 것은 색채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 같았다. 흑백 사진을 보면 명암이 만들어내는 뚜렷한 경계에 집중하게 되는 대신 컬러 필름에서는 색으로 대비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도시의 풍경을 담은 [어반스케이프]에서는 색과 함께 도시의 직선적인 형상이 구도를 만들어낸다. 높은 건물, 격자로 되어 있는 창문 등이 화면을 나눈다. 그에게 사람도, 자동차도 조명받는 주인공이 아니다. 폰타나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은 화면 전체였다.


바다도, 하늘도, 얼음도, 도로도 폰타나의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 형체는 약해지고 사물이 지닌 색이 남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그릴 때 경계선을 그려 모양을 만든다. 자동차는 사각형 아래 동그라미 두 개, 눈사람은 동그라미 두 개를 세로로 붙여 그린다. 실제로 자동차든 눈사람이든 테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테두리가 없는 3차원 사물을 누르면 색을 지닌 덩어리만이 화면에 납작하게 남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프랑코 폰타나가 추상적이라고 불리는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FRANCO FONTANA© AUTOSTRADA 1975 XXH.jpg


 

작가는 사진에 대해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말을 했다. 사진은 곧 사진작가며, 사진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장면을 존재시켜야 하고 장면을 존재시키기 위해 풍경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찍은 풍경은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다. 그만이 바로 그 순간 그 위치에서 그 각도로 찍겠다는 결심에 이르기 때문이다. 풍경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바라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풍경 자체가 되어야 한다. 풍경의 일부로 풍경과 상호작용을 할 때 찾아낼 수 있는 찰나를 담는다. 그렇게 사진은 누군가 그렇게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주관적인 매체가 된다.

 

‘인생도 꿈이기에, 사진을 찍는 것이 이 꿈을 소유하는 방식이다.’라는 말은 앞선 이야기와 이어진다. 각자가 경험하는 세상이 다르고 고유하다면, 인생은 각자만 볼 수 있는 꿈과 같다. 폰타나는 자신의 인생을 사진으로 남기려 했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폰타나에 다가간다.

 

예술이 소통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승희_네임태그_컬쳐리스트.jpg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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