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에는 알코올이 필요하다 : 2022 ㅊㅊ-하다 페스티벌 [공연]

2022 ㅊㅊ-하다 페스티벌 후기
글 입력 2022.11.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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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결점을 남들에게 내보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우울'에 있어서는 더욱. 우리 모두 살면서 일정량의 우울을 앓으며 살아가는데도, 여타 질환에 비해 정신질환(우울증)은 타인에게 항상 숨겨야만 하는 결점이 된다.

 

즉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도 우울감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우울의 쓰나미 한복판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나의 경우에는 나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켜서 내면에 쌓아 두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다 우울이 너무 거대해져서 버거울 때에는 그것을 간헐적으로 소설이나 시로 토해 내는 식이었다.

 

그리고 동일한 맥락에서 나는 눈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실은 많지 않다기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방 안에서 우울에 침잠해 있을 때는 꽤나 잘 운다. 하지만 혼자였든 남과 함께였든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 그러니까 우울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여전히 결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 한 공연을 보면서 나는 군중 한복판에서 마스크가 젖을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우울은 쌓아두어야 할 짐이 아니라, 알코올로 쓰라리게 소독해야 하는 상처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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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ㅊㅊ-하다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것은 올해로 두 번째다. 아직 이 축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ㅊㅊ-하다 페스티벌〉은 '젊은' 국악 예술가(전공자)들이 모이는 축제다.


그에 걸맞게 "청년이 청-하다, 청춘이 채-우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매년 11월에 개최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축제가 점점 판이 커지는 중이다.'청년축제' 아니랄까봐 무럭무럭 성장하는 듯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악과 무용 부문의 공연만 있었는데, 올해로 '성악' 부문이 추가되었다.

 

성악 공연은 주로 판소리를 중심으로 기획된 듯 했다.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판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기에 나는 러닝타임 90분 내내 자연히 대중적으로 익숙한 장르의 공연들과 이것을 견주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2022 ㅊㅊ-하다 페스티벌 : 성악〉에서 내가 본 것은 K-뮤지컬이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무대장치도, 유명한 넘버도 없었지만, 내가 이 공연으로 받은 압도감은 한 편의 거대 뮤지컬을 보고 나온 기분과 유사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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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신해랑의 《심청이 인당수 빠지는 대목》으로 시작되었는데, 그의 힘있고도 구슬픈 목소리 그리고 적절한 몸짓 연기는 관객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

 

이후 조은주의 《이별가, 회심곡》,  서의철의 《거문고 병창 심청가 중 ‘방아타령’》, 조의선X문세미 팀의 《수양산가》, 별안간 팀의 《망각 환상곡(Oblivion Fantasia)》, 창작아티스트 오늘 팀의 《나빌레라, 자유(freedom)》 무대가 이어졌다.

 

내게 전반부 전통 판소리를 감상하며 인상적으로 본 지점은, 판소리는 단 한 명의 창자가 여러 명의 인물 역을 도맡고 서술자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공연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노래도 불러야 하고, 조곤조곤 상황 설명도 해야 하고, 이 인물 저 인물 표정 연기도 해야 하고, 부채도 박자에 맞추어 펴야 하는 와중에 나의 목소리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반주라고는 북 소리 뿐이다. (심지어 판소리에는 음이탈이 나기 딱 좋은 꾸밈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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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가 가미된 후반부 퓨전 판소리를 감상할 때에도 공연자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볼 때 서양의 고전 성악과 비교해서 우리의 전통 성악은 '위로'에 최적화되어있는 듯하다. 서양의 고전 성악이 직선으로 솟구치는 웅장한 느낌이라면, 한국의 판소리는 관객들에게 말을 걸듯 따뜻하게 감싸 어깨를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이 포근한 위로를 경험한 관객들은 저마다 쌓인 것들을 터트리며 상처를 음악으로 소독한다. 달리 말하자면 판소리가 우울 치료에 제격이라는 소리다.

 

특히, 창작아티스트 오늘 팀의 《나빌레라》 공연은 안구건조증 10년차인 나의 메마른 안구를 끝내 축축하게 적셔 냈다. 바다소리와 새소리를 닮은 악기 소리, '함께' 날아가자는 듯 관객들을 향해 뻗는 공연자들의 나긋한 손짓, 객석을 바라보며 짓는 흐뭇함과 해탈 그 사이에 있는 표정, "순간에서 순간으로 머무르다 머물렀다"와 같이 모든 것은 순간에 불과하니 앞으로 나아가자는 듯한 가사. 나는 그들의 공연을 통해 지난 몇 주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던 나의 우울을 끄집어내어 상처를 소독할 수 있었다.

 

판소리가 곧 나의 알코올 솜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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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2022 ㅊㅊ-하다 페스티벌 : 성악〉 공연에 대해 총평을 남겨보자면, '젊지만 노련하다'였다.

 

보통 젊음은 노련함과 함께 존재하기 힘든 개념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ㅊㅊ-하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성악가들(소리꾼들)은 화려한 무대 세팅 없이 단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꽉 채웠다.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숨도 쉬지 않고 한 번에 소리를 10초 이상, 그것도 기교가 가득한 진성으로 뽑아냈다. 그들의 섬세하고도 가공할 폐활량에 나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긴장은 했을지언정, 그들의 소리에 단연코 서툶은 없었다.

 

작년에 비해 개선된 점도 눈에 띄었다. 아티스트 개개인에 대한 인터뷰가 부족해 아쉬웠는데, 이를 개선하여 사회자가 매 공연이 마칠 때 마다 공연자를 무대 앞으로 불러 내 공연 준비 과정에 대한 간단한 사담을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공연자 서의철이 전국에 5명밖에 없는 '병창'악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소리를 하는 공연 소리꾼이라는 사실, 조의선X문세미 팀이 10년지기 친구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해 공연을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성악'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도입되면서 개선해야 할 지점도 보였다. 가사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성악 공연은 기악 및 무용 공연과 달리 가사 전달의 중요성이 크다. 물론 나의 청취력이 낮았을 확률이 크지만, 나처럼 판소리 형식의 발성 및 어휘들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가사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지점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 같다. 해외 오페라 및 뮤지컬 공연처럼 무대 한 편에 가사를 띄워 주면 어땠을까 싶다.

 

청춘을 닮아 매년 성장하는 〈ㅊㅊ-하다 페스티벌〉의 다음 공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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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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