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한 번 엄마와 딸의 관계를 파헤치다 - 연극 '거울'

글 입력 2022.11.1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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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거울 포스터_최종.jpg

 

 

 

공연 정보


 

시놉시스

 

해정은 엄마와 같은 면역계 질병을 유전으로 물려받아 평생 몸을 관리해야하는 직장인이다. 일상에 지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년 동안 연락하지 않고 있던 엄마 순영을 찾아간다. 해정과 순영은 아버지의 부재, 질병 등으로 단절되었던 관계의 회복을 시도한다.

 

 

출연진

 

정인정 - 최해정 역

최서연 - 최순영 역

최규호 - 동우, 의사, 팀장 역

 

 

 

시작과 끝 - 움직임과 멈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관객들이 착석하고 있으면, 환한 불빛 아래 두 명의 여성 배우들이 '움직임극'을 한다. 이 움직임극은 연극 '거울'을 연출하고 공연한 극단 정:지만의 특징이다.

 

신기한 건 두 배우가 '엄마'와 '딸'을 연기하는 것 치고는 나이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이는데도 누가 엄마이고 누가 딸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 절망하는 사람이 딸이다. 그는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많아 괴로워한다. 세상의 모든 딸이 그렇듯 엄마를 걱정하기에 엄마를 노려본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듯한 사람이 엄마다. 엄마는 딸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그저 뒤돌아 있는 딸을 바라보다, 딸이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자 황급히 시선을 피할 뿐이다.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충분히 고생하며 생을 살아왔는데도 딸 앞에서는 작아지는 이유가 뭘까.

 

연극이 끝나고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추고 나면 관객들은 손뼉을 치고, 퇴장한다. 관객이 손뼉을 치는 동안 배우들은 가볍게 한 번 인사를 한 뒤, 밀랍 인형처럼 굳는다. 관객이 퇴장하는 때까지도 마치 사용이 끝난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다.

 

연극의 내용과 현실에 단절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 역시 극단 정:지만의 개성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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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고뇌 - 총에 맞고 시작되는 이야기


 

연극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딸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정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면역계 질환을 선고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의사가 건조하게 자신의 질병과 증상, 관리 방법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그 말의 무게는 마치 총을 쏘는 것처럼 묵직하다.

 

해정은 자신에게 갑자기 찾아온, 그리고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질병을 받아들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한다'는 부담은 그가 소개팅에 나가서까지 자신의 병에 대해 소상히 말을 한다거나, 갑자기 계획도 없이 휴가를 2주나 내게 하는 '미친 짓'을 하게 만든다. 평생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짐이 생겼다는 슬픔이 그를 방황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은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내게 '하자'가 있고, 그것이 나의 엄마에게서 온 것이라는 데서 오는 원망. 그것이 원망 때문인지 아니면 숨겨진 그리움 때문인지 해정은 엄마에게 2년 만에 연락한다.

 

엄마는 잘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엄마가 곧 나의 미래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며.

 

 

 

아버지의 부재 - 고립되어 서로를 탐색하는 모녀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연극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두 모녀는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다. 해정의 아버지, 순영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둘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상처가 생겼고, 거리감이 생겼다.

 

극에서 '남성' 캐릭터 역에 한 배우를 사용한 점은 흥미롭다. 아버지의 부재, 그러나 아버지는 모든 곳에 비슷한 얼굴로 존재한다. 그들은 해정에게 시한부와도 같은 선고를 내리고, 과장된 몸짓으로 데이트 상대가 되어주며, 상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결핍은 엄마와 딸 사이에 마치 금기처럼 자리잡아 오랜 기간 단절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상황에서 비로소 두 사람은 금기를 건드리게 된다. 해정은 딸로서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는데 엄마는 죽은 아버지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애정의 결핍을 느끼고, 그로 인한 원망을 엄마에게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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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극장

 

 

 

어설픈 봉합 - 딸은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감정이 폭발하는 극의 클라이맥스는 흥미로운데, 오직 딸만이 감정을 마음껏 폭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딸은 마치 미친 사람 처럼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내고,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엄마의 무릎에서 운 다음에 갑자기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는 그런 딸의 감정을 받아내고, 자신의 감정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에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한 번 더 참아낸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모습에 더 화가 나는 딸은 참지 말고 감정을 드러내라고 엄마에게 다시 한번 윽박지른다.

 

해정은 감정을 잠시 해소한 뒤 불현듯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 '나는 약도 먹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엄마의 집을 나온다. 순영은 딸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당황하지만, 해정이 원하는대로 해정을 보낸다.

 

해정이 감정을 폭발한 뒤 버스를 타러 가며 엄마와 어색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과 해정이 '거울'을 통해 순영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겠다는 마무리가 참 흥미롭다.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가정에서 딸이 주로 동일시하는 사람은 엄마이고, 이로부터 딸의 생애에 많은 문제가 엄마의 그것과 닮아가기 때문이다.

 

아주 전형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 매일을 천둥이 치듯 싸워대다가도 어느 날은 한 밥상에서 얌전히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것. 딸은 화가 나 엄마에게 하지 못할 말을 막 해대다가도 뒤돌아 방에 들어오면 쏟아낸 말들이 후회되고, 엄마는 쟤가 왜 저러나 하고 설거짓거리에 가만히 화풀이만 하는 것.

 

엄마와 딸의 관계는 친구와 같이 살가운 듯하다가도 싸우고 나서는 서로 따뜻한 말로 화해를 할 줄은 모른다. 그래서 항상 그 둘의 관계는 어설프게 봉합된다. 삐뚤빼뚤한 바느질로 기운 옷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잘못된 바느질을 고치기 위해선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까.

 

연극 '거울'은 되돌이표와 같이 반복되면서도 가장 일상적인 모녀 관계의 단면을 포착한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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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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