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서, 당신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도서]

예상치 못했을 당신의 독자로부터
글 입력 2022.11.0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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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닮은 당신의 산문을 잘 받아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으로 당신을 처음 만난 독자입니다.


짧은 가을이 야속하게 느껴질 즈음 당신의 책을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마구잡이로 바쁘게 어지럽히던 일들이 얼추 마무리되어서, 그동안 삶에게서 도착한 답장은 없었는지 기웃거리게 되곤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답장이 없는 삶’이라니. 내심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던 이 사실을 콕 집어 말하는 당신에게 저는 어떠한 동류의식이라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야속한 이 삶에, 개의치 않고 ‘이라도’라는 조사를 붙일 수 있게 되기까지 당신이 지나 왔을 숱한 시간들이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과는 별개로, 솔직한 글 앞에 마주 설 때면 어쩐지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제게 있어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란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는, 기대와 의심을 동시에 품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아직은 이 마음을 어찌할 바를 잘 모르겠어요.


한동안 저는 곱씹는 일을 무용하다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제게 있어 솔직함이란 후련함과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어서, 그저 잊는 것만이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앞으로 쌓아갈 것들을 신중하고 예민하게 고르게 되는 새로운 고질병을 얻었거든요.

 

사실 이런 조심스러움을 바라지는 않았어요. 당신의 말처럼, 모든 것을 잃고도 깨달은 게 없으므로 삶은 가벼운 것이어야 했을 텐데 말이에요.


제가 읽은 당신은 자신이 지나온 모든 풍경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끌어안고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을 입히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었나요.

 

그래서 처음에는 당신의 글이 나를 마구 헤집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나도 후련해 보이는 그 투명함에 내 삶을 비춰 보고 나니, 조금 초라해지면서도 유치하게 평소에는 신경도 안 써서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빛바랜 반짝이 상자들을 긁어모아 ‘나도 이거 있어’라며 내밀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걸 과연 사랑이라 불러도 괜찮은 걸까요?


백지를 자유롭게 노니는 당신과 달리 나는 썼다 지우고를 자주 반복하고, 남기기보다는 추리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부러워 마지않는 당신의 울창한 은유의 숲을, 거닐기보다는 그냥 헤엄쳐 보았어요.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을 수없이 잠수하며 슬픔을 건져 올렸습니다. 답장이 없는 삶이 있다면, 예상치 못한 데에서 얻는 답장도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낯선 고향에서 답신을 쓰고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머무르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나의 이상한 점을 눈감아주겠다 해주어 고맙습니다. 저도 줄을 길게 늘여보겠습니다. 풀어야 할 오해가 많아요.

 

하지만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당신의 시에 감사합니다.

 

저는 어쩌면 답장이 아니라 답을 기다려왔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하염없이 남게 되는 시간들, 그래서 기다림이 외로움과 닮았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아직 자신은 없지만, 그사이에 편지를 띄우는 일을 더욱 가까이해보려 해요. 지금처럼요.

 

예상치 못했을 당신의 독자로부터.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_표1.jpg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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