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을 잃고 생각을 얻다 [미술/전시]

말을 잃고 생각을 만드는 공간, 사유의 방
글 입력 2022.10.2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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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보는 방송 중에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모든 새로운 것의 시작은 질문인데 기본적인 질문조차 주고받지 않는 불통의 시대에 교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질문을 던져보자는 취지로 만든 교양 프로그램이다.

 

관심 없는 주제가 나올 때도 있지만 지난 주에 나온 강사는 좀 특별했다. 종종 박물관에 가기는 하지만 박물관에서 대해, 또 박물관을 어떻게 이용하면 더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좋은 팁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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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JTBC

 

 

이 날 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있는 정명희 박사. ‘학예연구관’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냐는 출연자의 질문에 정 박사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유물을 수집해서 가치를 연구하고 밝혀낸 가치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숨은 명작들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는 39개의 전시실이 있어 어느 전시실을 들어가든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좀 다른 관점으로 보는 특별한 감상법을 소개하자면, 만약 비가 오는 날이라면 3층 목칠공예실을 가보라.”고 추천한다. 전시실을 걸으면서 나무 냄새가 나는 향을 맡을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물관을 ‘오늘 하루에 정복하겠다’고 마음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거나 야외 정원을 산책하면서 좋아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하면 박물관이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언제든 쉬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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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정명희 박사가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것. 2층에 있는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인 반가사유상 두 점을 전시한 공간인데 지금은 문화재 지정번호가 없어져 그저 ‘국보, 보물’이라고 부르지만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예전 국보78호)과 7세기 삼국시대 것(예전 국보83호)으로 추정되는 비슷한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반가사유상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정 박사는 방송에서 반가사유상실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학예연구관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숙제라고 말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모나리자가 있듯이 반가사유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년 11월에 드디어 별도의 공간으로 ‘사유의 방’을 만드는 것을 관철시켰다고 했다.

 

방송을 보고 참을 수 없어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유의 방’을 다녀왔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방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방에 들어서면 야트막한 경사로를 따라 저 멀리 있는 두 점의 국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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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그러면 아주 쉬운 질문부터. 요즘 문해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는데 ‘반가사유상’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보통 불교에서 수행을 할 때 ‘가부좌’라고 하는 두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를 하는데 ‘반가’는 반만 가부좌를 튼, 그러니까 한 다리는 꼬아서 가부좌를 하고 다른 한 쪽은 편안하게 내려서 앉은 자세를 뜻한다. 그리고 ‘사유(思惟)상’은 한자 뜻 그대로 ‘생각에 잠긴 상’이다. 그러니까 반가사유상은 ‘반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생각에 잠긴 부처의 상’이 된다.

 

보통 불상의 이름을 부를 때 존재의 이름을 넣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상, 아미타불상, 약사불상처럼. 그런데 반가사유상은 특이하게도 자세가 이름이 된 경우다. 불상의 형태 중에서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손을 뺨에 댄 모습을 앞면과 측면 그리고 뒷면을 조각하는 건 난도가 높고 또 그만큼 빼어난 조형미가 강한 인상을 남긴 게 아닌가라고 그 이유를 추측한다.

 

세상은 정보의 홍수다. 거리를 몇 미터만 걸어도 수많은 정보를 보고 듣고 맞이한다.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넘치는 정보를 싫어도 맞닥뜨려야 한다.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하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워졌다. 나뿐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받고, 밥을 먹다가도 알림소리에 문자를 확인한다.

 

수시로 정보를 처리하느라 생각의 여유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유행하는 게 ‘멍때리기’인지도 모른다. 그냥 멍때리는 것도 모자라 ‘불멍’ ‘물멍’에다 ‘풀멍’ ‘별멍’까지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치유가 돼버렸다. 마음과 생각을 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사유의 방’이 딱 그런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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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방

 

 

‘사유의 방’을 들어가기 전에 한 영상과 만나게 된다. 영화감독 장 줄리앙 푸스의 ‘영원히 실재하는 것은 없다’는 불교의 ‘공(空)’ 개념을 담은 영상이다. 얼음과 물, 수증기 등이 느린 화면으로 펼쳐진다. 영상을 보면서 마음을 한번, 생각을 한번 내려놓는다. 영상을 보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탁 트인 공간 안쪽으로 반가사유상이 보인다.

 

‘사유의 방’에서는 공간 어느 곳에서도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진열장 없이 앉아 있는 사유상을 보면서 가만히 서 있으면 은은하게 코끝을 스치는 편백나무와 계피향도 느껴진다. 그윽한 조명 아래에서 침묵하며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움직이며 빙 돌아 뒷모습을 본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만큼은 말을 잃어버린 것 같다.

 

‘사유의 방’은 말이 아니라 생각을 만드는 공간이다. 혼자만의 생각 속에 잠길 수 있는 그 시간이 이 방에 온 사람들 모두에게 치유의 선물 아닐까.

 

 

 

신유빈 (1).jpg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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