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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쉽게 씌어진 글 [문화 전반]

by 민지연 에디터
2022.10.06 21:20

 

 

가족같이 너무 친숙한 ‘글’. 펜 한 자루만 있으면 쓸 수 있고, 키보드와 커서가 깜박거리는 모니터만 있으면 문장을 시작할 수 있다. 어떠한 틀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편했지만, 날이 갈수록 글을 시작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글은 ‘수단’이었다.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과제를 제출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글을 사랑하게 되면 될수록 쉽게 씌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함부로 이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 그저 환경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너여서. 그래서 쉽게 만지고 싶지 않았다. 영감이 오는 대로 손가락이 굴러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감정이다. 더 정확한 단어가 있을 것 같고, 상황에 맞는 조사를 쓰며 불필요한 부사는 되도록 생략하고 싶다. 너를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에 좋은 글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내용뿐 아니라 문장과 문장 간의 호응, 전체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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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히려 소중하게 다루었다. ‘영화’가 그랬다. 영화가 퍽퍽한 나의 삶에 위로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나를 가장 먼저 위로하고 말없이 늘 곁에 있었던 건 글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 마음은 잘 알지만, 가족 마음은 잘 모르는 것처럼.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통해서 글을 향한 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글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피드백이 없는 것 같기도 해 답답했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글을 지속적해서 쓸 수 있다는 강제성?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창구? 어느덧 이유를 찾는 시기는 지났다.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왜 너를 사랑하지?”라고 이유 찾기를 갈망했을 때처럼. 어느덧 그 시기는 지났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글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었다. (방금 이 문장도 너무 쉽게 씌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써보자) 시나리오는 영화의 기본이 되는 본질이자 뼈대이다. 그런데도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만 앞서 글은 너무나 쉽게 써버렸다. 씬 넘버 원. 장소. 시간.

 

소설을 읽을 때는 위와 같은 죄책감이 조금 덜어진다. 소설이야말로 한땀 한땀 문장을 조각한 결과물이 아닌가. 문장의 배치에 따라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감정이입의 속도가 달라진다. 영화를 만들 때 카메라, 음향 장비, 미술 등 다양한 재료가 동원된다. 그런데 글은 아주 단단한 단 하나의 재료만이 동원된다. 가장 쉽게 씌여지지만 그래서 가장 쉽게 쓸 수 없다.

 

소설뿐 아니라 좋은 글, 칼럼, 에세이를 마주할 때도 희열을 느낀다. 아, 이 사람은 글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구나. 좋은 글은 단 하나의 단어도 낭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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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로 활동한 지 네 달째이다. 글을 쓰는 근력을 기르고 싶어서 시작했다.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면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오래 달리려면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글을 쓰는 나의 스타일은 어떠하고 글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지 살펴보고 있다.

 

책상 위에 국어사전이 생겼다. 유의어, 반의어 등을 찾기 시작했다. 뉘앙스와 느낌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단어는 없는지, 내가 모르는 새로운 단어는 없는지, 귀찮을 일이기도 하지만 퍽 재미있다. ‘국어’라는 것도 너무 쉽게 내뱉을 수 있기에, 다 안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는 요즘이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렸더니 전과 다르게 이번 글은 오타가 적다. 키보드 위에서 함부로 손가락을 굴리지 않고 한 자 한 자 정성 어리게 타자를 친 덕분일 것이다. 다음에는 원고지에 적어볼 생각이다. 가끔 이면지에 쓰고 워드로 옮기곤 하지만, 원고지는 다른 맛일 것 같다. 필기구에 따라 맛도 달라질까?

 

점점 궁금해지는 만큼 천천히, 오래도록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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