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진실 혹은 거짓 - 톨락의 아내

다면적인 인간
글 입력 2022.09.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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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골짜기 마을에서 잉에보르그, 목재소, 들판과 산, 나의 두 손, 도끼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나의 그런 삶은 이제 끝이 났다. 지금 내 곁에는 잉에보르그도 없다. 내 삶의 작은 불빛이 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나. 변하지 않은 나.

 

듣고 있나?

 

- 22쪽

 

 

평범한 남자가 살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목재소를 운영했던 남자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아들을 낳았다. 마을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도 집으로 들여와 키웠다. 어른이 된 딸과 아들은 집을 나갔고 아내는 없다. 소년은 여전히 장애를 겪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얼마 못 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일'에 대해서 고백한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한 여인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남자일 뿐

 

 

 

2020년 노르웨이 최고의 소설


 

토레 렌베르그는 노르웨이가 사랑하는 작가이다. 현대 노르웨이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토레 렌베르그는 <잠자는 엉킴>으로 노르웨이 최고의 문학상인 '타리에이 베소스 상'을 수상하였으며, <잉베를 사랑한 남자>와 <오하임 컴퍼니> 등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면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25주년 기념작으로 발표한 <톨락의 아내>는 가부장적이지만 죽어가는 늙은 남자 '톨락'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아내 '잉에보르그'와 딸 '힐레비', 아들 '얀 비디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소년 '오도'를 '톨락'이 집으로 들여오면서 발생하는 갈등은 이 가정을 이끌며 모든 결과를 가지고 오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토레 렌베르그는 각 인물마다 현대인의 고립, 가족의 해체, 페미니즘 등의 사회적 이슈를 부여하여 단순히 '소설을 읽는다'를 넘어서 한 가정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게끔 한다. 이러한 장치는 작가 특유의 짧은 문장으로 결코 과하지 않게끔 접근해오며 책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인물들간의 복잡한 서사와 짧은 호흡으로 읽혀지는 글의 조합은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가지고 책을 읽게 하며,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은 놀라움을 선사한다. 어쩌면 놀라움보다도 경악에 가까운 그것은 이 책을 여러 번 읽을 때 보다 가치가 있다.

 

토레 렌베르그는 작가로서 25년째 되는 해를 믿을 수없을 만큼 강렬한 초상화로 기념했다. 그는 문학계의 거대한 기둥이다. - 마르타 노르헤임, NRK


한 남자의 초상이자 비극적인 가족사, 한 편의 문화비평, 사랑 이야기, 그리고 스릴러. <톨락의 아내>는 올해 가을을 가장 강렬하게 덮쳤던 작품이다. - 네타비젠


사랑, 폭력, 저항에 관한 압축적인 문학 스릴러. 토레 렌베르그가 쓴 작품 가운데 최고작. - 아프텐포스텐

 

마지막 페이지까지 타오르듯 빛을 발하는 서스펜스. - 다그스아비센

 

 

톨락_평면(띠지)유.jpg

 

 

 

톨락의 고백록


 

톨락은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골에 사는 늙은 남자다. 그는 목재소를 운영했으며 무뚝뚝하고 차가운 남자다. 그는 세상에 대해 분노가 담긴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톨락의 아내 잉에보르그는 반면에, 상냥하고 다정한 여자이다. 그는 따스하고 인자한 사람이였으며,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였다. 전혀 연고도 없는, 마을에 사는 장애인 소년 오도를 톨락이 집에 데려왔을 때도 그녀는 오도 또한 사랑으로 감싼다. 톨락은 그런 잉에보르그를 사랑하였고 그녀에게 충실했다. 마을 사람들은 톨락을 잉에보르그의 남자로 부른다. 그런 그녀가, 사라졌다.

 

톨락은 끊임없이 잉에보르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과거, 잉에보르그가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 자신과 잉에보르그의 첫 만남부터 종종 나누던 사랑까지 톨락은 회상하고 그리워한다. 이쯤 돼서 독자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잉에보르그의 행방은 어디에 있는가?'

 

또한, 장애를 겪고 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 소년 오도를 톨락이 데려온다. 오도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녀도 톨락에게 오도를 맡겼다. 톨락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오도에게 정성을 다했고, 심지어 친자식인 얀 비디르와 힐레비에게도 오도를 받아들이게끔 강요한다. 친자식들에게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쏟는 톨락을 보며 독자는 자연스레 톨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늙은 톨락은, 양치를 하며 피가 나고, 빠진 이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 출혈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김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식들에게 '진실'을 고백한다.

 

 

 

톨락과 잉에보르그는 닮았다


 

톨락은 차갑고 비관적인 사람이고, 무심한 아버지였다. 잉에보르그는 따뜻한 사람이고, 다정한 어머니였다. 독자들은 톨락이 잉에보르그를 살해한 그 순간부터 톨락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이 책을 읽었을 것이며, 잉에보르그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톨락이 고백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톨락은 얀과 힐레비보다 오도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아버지였다. 따라서 그들은 톨락에 대해 당연히,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톨락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힐레비는 라디오에서 남성에 대해 비판하고 아버지에 대해 비난한다. 결국 정신과까지 간 힐레비는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당신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느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시나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아시냐고요. 아버지는 아시나요? 우리의 삶이 어땠는지? 내가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자주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는지, 아버지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냐고요. 아버지의 딸로 살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는 아세요? 당신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지 아세요? 어머니가 실종되었을 때 우리의 삶도 함께 무너졌다는 건 알고 계시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 아시나요? - 107쪽~108쪽

 

톨락은 힐레비를 사랑했다. 비록 고집스런 성격에 가부장적이지만, 힐레비를 매우 사랑했다. 그럼에도 오도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오도는 톨락의 친자였다. 오도에게 베푼 톨락의 사랑은 결코, 잉에보르그가 얀과 힐레비에게 베푼 사랑보다 작지 않았다.

 

따라서 톨락은 잉에보르그가 오도를 내버리고 싶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얀과 힐레비가 장성해 곁을 떠난 후, 우울해진 잉에보르그가 오도를 바라보는 눈빛은 톨락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것과 비슷했다. 잉에보르그는 오도를 혐오했고, 톨락은 잉에보르그를 살해했다. 그리고 오도와 함께 그녀를 정원에 묻었다. 여전히, 톨락은 잉에보르그를 사랑한다.

 

차갑지만, 사랑이 가득했던 톨락.

 다정했지만, 분노하던 잉에보르그.

 둘은 서로를 닮았다.


 

 

비극적인 가정의 결말


 

얀과 힐레비는 톨락이 모든 것을 고백하고 난 후 집을 떠났다. 아마 밝혀진 진실과 거짓에 충격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톨락에겐 여전히 자신의 곁에 있는 오도를 바라본다. 그러나 오도는 장애인이였으며 그의 장애는 비장애인인 톨락이 이해할 수 없는 범위였다. 오도는 잉에보르그가 묻힌 정원에 불을 질렀고 톨락은 망연자실하게 잉에보르그만을 떠올린다.


 

 

진실과 거짓,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토레 렌베르그는 책의 서두부터 현재 톨락의 감정과 생각만을 묘사하였고 사실관계는 일부러 숨겼다.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후반부에 독자들은 긴장감이 극대화된 상태로 집중하게 된다.

 

톨락이 고백한 사실은 오도가 톨락의 친자라는 '진실'과 잉에보르그가 오도에게 상냥했다는 '거짓'이다. 톨락과 잉에보르그를 이분법적으로 묘사하다가, 책의 말미에서야 그들의 양면성을 표현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들을 바라보던 독자들의 시선을 비틀어버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실을 알고 나서 <톨락의 아내>를 다시 읽으면, 무언가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마 내가 알던 그들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얀과 힐레비가 자신의 어머니의 오도를 향한 혐오를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톨락이 이 사실들을 고백했다 할 지언정, 톨락이 잉에보르그를 살해 후 유기했다는 사실과 잉에보르그가 생의 대부분을 다정한 사람이자 어머니로 살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톨락이 고백했다는 그 점 때문에 이 인물관계와 사실들을 다르게 본다는 것도 모순이지 않은가?

 

바로 그 점을 통해서, 아마도 작가는 톨락의 입을 통해, 인간이 가진 다면성에 대해 독자가 스스로 체험하고 그를 깨닫게 하고 싶지 않았을까. 톨락의 사랑, 잉에보르그의 회피, 힐레비의 저항 등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다양한 면이 존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선으로 이 사건들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잉에보르그 살인이나 오도를 무책임하게 데려와 주변인들이 피해를 본 것들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해야 한다. 톨락이 그저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변호한 것이 불쾌했던 이유는 이런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한 여자'라는 것은 결국, 다면적인 잉에보르그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숨겨진 아들을 정성으로 키웠던 과거의 잉에보르그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톨락이 사실관계를 밝혀내며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며 회피하지 않는 점은 이 책에서 볼만한 묘미이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 그것은 고집 많고 병든 할아버지였던 톨락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모습이기에 톨락의 마지막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과거에 행했떤 모든 일과 과거에 보았던 모든 것과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차례 눈앞에 스친다. 하나도 빠짐없이. 좋든 싫든. 바로 그때, 우리는 스ㅡ로와 화해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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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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