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음 달에 필름카메라를 사야겠다 : 비비안 마이언 사진집 '나는 카메라다'

글 입력 2022.08.3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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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한, 특히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에 관한 관심이 지극한 요즘이다. 그의 생애를 다룬 묵직한 책 한 권을 읽고 그라운드 시소에서 진행 중인 전시까지 다녀왔다. 어쩌다 이렇게 한 사람을 탐닉하듯 알아가게 되었을까.

 

사실 안다는 게 불가능하다. 이미 생을 떠난 사람인 데다가 사적인 흔적마저 미미해서 추측과 예상, 의견과 생각이 전부이니까. 우직하게 한 가지에 몰입했다는 사실을 존경스러워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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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잠시 유행을 탔다가 새로운 것 앞에서 사그라들더니 다시금 유행의 선두주자가 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바쁘다.

 

'평생'이라는 안정적인 말 대신 'N잡'을 하는 게 당연해졌다. 안 하면 뒤처지리라는 이상한 협박 내지는 공포가 또 불안한 사회를 휩쓴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땅덩이에서 감정은 손쉽게 퍼지고 말아, 이제 모두가 하나의 입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뱉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지친 것 같다. 세상은 너무 바쁘고, 나의 하루 또한 바쁨으로 넘친다. 잠시 간의 휴식과 대화, 노닥거림이 있지만, 이마저도 쉼이 아니다. 에너지를 몽땅 소진하여 -100이 될 때가 되어서야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니까. 생각했다. 도파민이든 엔돌핀이든 코르티솔이든 호르몬이 망가진 것 같다고. 다른 말로 하면, 몸이 망가진 기분이다.


육체는 정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니 잘만 해오던 '할 일 미루지 않고 제때 하기'가 불가능한 영역에 이르렀다. 이른 지는 꽤 되었으나,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조금 변한 건 알겠는데 사람은 늘 변화무쌍하니까. 언제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던히 넘기려 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그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공포를, 아득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마주하고서다.


단 하루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늘어졌나. 이불을 정리하고, 옷을 골라서 꺼내고, 시간을 확인하고, 가방을 챙기고, 음식을 먹고, 다시 시간을 확인하고. 아침만 해도 정신없이 몰아친다. 이처럼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부터 몸집이 큰 것까지 수십 가지를 처리하며, 해나간다는 감각조차 잃은 지금이야말로 정반대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방법을 몰라 하나의 사물을 떠올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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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을 땐 그 의미를 도통 모르겠던 그 카메라. 핸드폰 앱으로 간단히 느낌을 낼 수 있는데 굳이, 왜, 돈을 들여가며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전자기기로 온통 둘러싸인 세상에서 그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라서, 그것 없이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평소엔 관심도 없던 사진전을 찾게 되는데, 바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시였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에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난 후에 사진집을 읽었다. 흑백의 정방형 사진으로 빼곡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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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사회를 고발하며 사람들의 의식 수준 향상이나 변화를 도모하는 것, 혹은 심미적인 것. 물론 전자라고 한들 아름다운 모양새는 중요하다. 사진은 이미지니까. 시선을 끌수록 집중하는 눈들이 많아지고, 그 눈들이 서로에게 입을 열어 영향력이 더 널리 뻗어나갈 테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사진가라서 그런지 비비안 마이어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견주어 말하는 대목을 더러 본다. 두 사람의 전시회를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느꼈다. 앙리는 사건을, 비비안은 상황을 포착한다. 전쟁이나 난민, 탄압을 낳는 사건들은 비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일상적이다. 인간들은 늘 싸우고, 편을 가르고, 짓밟고, 화해하곤 했으니. 그래서 앙리의 비일상적 사건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으로 연결된다.


비비안은 어떠한가. 길거리에 오가는 수많은 이들을 찍었다. 잠든 노숙자, 화려한 차림새의 유명인, 별다른 수식어가 없는 그냥, 사람들을. 그들을 정방형 틀에 넣고 신체 일부나 뒷모습 등을 담아 익숙한 이미지를 다르게 인지하게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비일상적 시선은 오래도록 사진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흑백의 힘은 유별나다. 단조롭고 꽉 막힌 정사각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들도. 대칭과 대조, 그림자, 질감을 살려 생동감을 자아냈다. 빛을 활용해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나타낸 사진들도 종종 보인다.


거리나 풍경 또한 비비안이 쫓던 사진의 주제이긴 하지만, 인물 사진이 가장 인상 깊은 건 왜일까. 나 또한 사람이라서일까, 누군가를 이런 시선으로 담아 보고 싶어서일까. 눈과 눈을 맞춘 상태 말고, 허리춤에서 살짝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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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여기저기서 넘쳐나지만, 인물 사진은 유난히 심미적인 영역에 갇혔다. 눈이 커 보이고, 코가 오뚝하고, 주름이 없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입은 새초롬하고, 얼굴은 조그맣고, 어깨는 직각이고. 정방형의 사진틀에 완전히 갇히길 바라는 듯 규격화된 틀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준에 맞는 사진은 '잘 나온 것', 그러지 않은 건 모두 휴지통 신세다.


다리가 길어 보이게끔 낮은 곳에서 전신을 찍어달라는 요청은 지겹게 들어봤지만, 로우 앵글에 바스트 샷으로 한 사람만을 정사각에 오롯이 담으려는 시도는 쉽게 보지 못했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인물이 고압적이고 위엄 있게 보일 수 있는 방식은 일상적이지 않다고 여기니. 친근하면서 묘하게 있어 보이는 사진. 그게 지금, 정사각 세상의 핵심이 되었다.


비비안은 셔터를 누를 때 망설임이 없다고 했다. 결과물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뷰파인더에 맺힌 피사체를 보았기에 따로 볼 필요가 없다던 언급은 자신감으로 읽혔다. 다시 생각해보니 당당함에 가까운 것 같다. 순간에 집중하고, 그걸 뒤돌아 보지 않고, 지나가는 대로 보내는 행위.


치열하고 바쁜 게 덕목인 세상인지라, 나의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느라 삶이 조금 더 고달픈 걸까. 지금 이 순간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생각이, 마음이, 기억이 딴 곳으로만 향해서 말이다. 이제부터 셔터를 누른다고 생각해야겠다. 매 순간 끝없이 누를 필요는 없지만, 항상 목에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비비안처럼. 마음에 드는 순간을 언제든 포착해서 기억하고, 그러는 동시에 그 순간을 놔주며 뒤돌아보지 않기로.


사진을 들여다보면 사진 생각을 하다가 나를,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비비안이 수십만 장을 찍으며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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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조만간 필름 카메라를 사야겠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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