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찮은 예술도, 하찮은 삶도 없다. 도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글 입력 2022.08.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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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우다보면 참 재밌는 순간들이 생기곤 한다. 분명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단어인데도 동일한 방식으로 조어(造語)된 말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듯이 사람이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결국 거기서 거기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사람과 언어 자체에 대해 재밌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단어는 바로 주류(主流)와 Mainstream이었다. 말 그대로 조어 방식이 동일하다. 주인 그리고 중요한 것을 뜻하는 한자 주(主)와 영단어 Main, 그리고 흐름을 뜻하는 한자 류(流)와 영단어 stream이 각각 결합된 것을 보면 문화권이 달라도 사람들이 비슷하다는 게 새삼 실감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주류에 대한 단어를 곱씹어보게 되는 이유는, 비주류를 집중 조명하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미술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소영은 비주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 아트를 소개하는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을 올 7월 말에 출간했다. 교과서에서 본 적 없고, 한국에서 열렸던 전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홀로 모아 한 권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제 서양권에서는 더 이상 비주류라고만 볼 수 없는 그들이 아직까지도 국내에서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저자 이소영은 주류에 속하지 못해 소외되었던 예술가들 중 일부를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였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을 펼쳐보게 되었다. 아웃사이더 아트를 다루는 건 미술 도서계에서 파고들 틈새를 잘 찾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직 시장수요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펴내는 것이, 개인의 성취감 차원에서는 만족스러웠겠지만 상업성 차원에서는 약간의 모험을 감수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해낸 저자 이소영에게서 나도 아웃사이더 아트 속에 담긴 그 포근한 온기를 나눠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책 소개 >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출연 등 다양한 방송활동으로 화제를 모은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이 이번에는 숨겨진 미술사의 비밀을 가득 안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은 저자의 오랜 관심사 '아웃사이더 아트'를 찾아다닌 마음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의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미 미술계에서는 근래에 가장 주목받는 영역에 속한다. 이소영은 백인 남성·강대국 중심의 미술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던 화가들의 이야기를 자기의 내밀한 고백들과 함께 먼지 쌓인 서랍에서 꺼내놓는다. 이들 각각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새롭고 읽을 만한 일화로 가득 차 있을뿐더러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저마다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하는, 또 누구나 아는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늘 새롭고 참신한 주제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저자는 이번에도 남들이 가는 길을 거부한다. 이를 위해 오랜 기간 전세계를 누비며 사라진 화가들의 작품을 찾아다녔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의 현대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같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앞장서 소개하고 있는 어엿한 '주류'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받지도, 또 일부는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점이 저자를 더욱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며, 여태껏 접하지 못한 다양한 이들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보며 심미안이 확장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미술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나에게, '아웃사이더 아트'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생소한 단어지만 이름만으로도 무슨 의미를 가진 단어인지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필시 주류가 아닌 비주류 예술을 의미하는 단어일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이소영이 서문에서 아웃사이더 아트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준 내용을 보니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가 전통적 문화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예술,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아르 브뤼(Art brut)라고 만든 단어를, 예술 평론가 로저 카디널이 아웃사이더 아트로 번역하면서 이 단어가 최초로 탄생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주류라는 우월적인 입장에서 시혜적인 태도로 만들어진 단어라 할 수 있겠다.


주류와 비주류를 범주화하는 것은 대개 주류의 시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그런 맥락은 다소 불편한 감이 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면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카테고리가 새롭게 생겨난 것은 그 범주에 드는 예술가들을 다른 시각으로나마 조명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가 비주류인 것은 곧 이 범주에 속한 이들이 기득권층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이는 다시 말해 취약계층의 예술을 한 단어로 정의함으로써 학계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확실히, 저자 이소영이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취약계층에 속하는 삶의 형태에 속하고 있었다.


이소영은 크게 4부로 나눠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 속에 담겨있는 작가들은 확실히 약자였다. 누군가는 노예였고, 누군가는 나치로 인해 수용소에서 버티다 생을 마감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버거운 일상을 생업으로 이어나가는 와중에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어려웠다고 해서, 그들의 예술이 하찮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뇌리에 남았던 것은, 예술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개인도 사실은 그 속에 얼마든지 각자의 비범함을 품고 있다는 것을, 저자 이소영은 아웃사이더 아트를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삶이 소멸되는 것이 두려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쓴 그의 그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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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가 테레진 수용소에서 가르친 아이들의 그림



그 많은 아웃사이더 아트 작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사람은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였던 테레진 수용소에 끌려갈 때, 디커브랜다이스는 미술용품들을 가득 챙겼다고 한다. 1인당 50kg밖에 허용되지 않는 짐을, 오로지 미술을 위해 할애한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유대인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아니, 그것은 미술을 가르친 게 아니었다. 자유를 가르친 것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못 그리는지의 여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디커브랜다이스가 그린 그림과 수용소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내 마음에 끝없는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만이, 오로지 그것만이 내게 유의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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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 아베르캄프의 작품



헨드릭 아베르캄프는 명확히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작가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이 기시감이 들어서 유심히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봤던 게 아니고 유럽에 있던 때에 본 적이 있는 그림인 것 같은데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는 암스테르담에 있고 하나는 런던에 있었다. 그럼 어쩌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봤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베르캄프의 그림은, 너무 추워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추위를 이겨내려고 하면서 눈 내리는 바깥을 누비며 놀았던 스웨덴의 겨울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아베르캄프의 작품으로 한순간에 나는 오래 전의 그 겨울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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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모더존베커의 작품

 

 

파울라 모더존베커 역시 꼭 언급하고 싶은 작가다. 사실 그가 임신한 스스로를 상상해서 그렸다는 점이 나에게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 작품이 다른 여성 화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파울라의 이야기를 쫓아가던 나는, 그가 남긴 마지막 자화상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그린 임신한 초상화의 모습이 여성을 객체화하는 행위에 불과하기만 한 것이냐고 나에게 되묻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더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파울라 모더존베커가 남긴 마지막 초상화는 나에게 아주 뜨거운 화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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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앙케르의 작품

 

 

책의 중반부에서 소개되는 아나 앙케르 역시 짚어보고 싶은 작가였다. 그는 점점 노쇠해가는 어머니를 여러 작품으로 남겼다. 점차 노쇠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가는 아나 앙케르의 마음이 어땠을지 알 것 같아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없이 컸던 어머니가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낄 때 얼마나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던가. 그런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 더 나아가 점차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듯한 작품들이 수록된 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이별이 삶의 어느 순간에 기필코 찾아오고야 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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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임 수틴의 작품

 

 

도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었던 작가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카임 수틴이다. 이전에 카임 수틴의 작품을 봤을 때 너무 야성적이고 거칠어서 파괴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에, 저자 이소영이 카임 수틴을 꼽은 것이 다소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카임 수틴은 조금은 마음의 각오를 하고 봐야 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소개하는 꼭지를 보니, 소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그림'이라니. 도덕적인 의미에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전통적인 태도에 대한 거부가 깃든 그림을 일컫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카임 수틴의 나쁜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3부의 '나쁜 그림' 꼭지를 꼭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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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트레일러의 작품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작가는 저자 이소영이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수집하게 만든 영감의 대상이다. 바로 빌 트레일러다. 사실 그의 그림이 잘 그린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나 같은 미술 문외한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가 소개한 빌 트레일러가 뇌리에 오래도록 남은 이유는, 이소영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의 그림 속에 담긴 성실함과 우직함을 언젠가 나도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성실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어렸을 땐 몰라도 지금은 너무나 잘 안다. 사실 그 성실함과 우직함이 얼마나 눈부신 재능인지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해보이는 그 비범함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빌 트레일러가 남긴 그 성실함의 유산이 나에게 무슨 말을 들려줄 지, 직접 대면해보고 싶어졌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군가는 항상 주류와 비주류를 나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인데 미술계에서는 이런 정의(Definition) 내리는 행위가 비단 학자뿐만이 아니라 비평가나 아트옥션, 컬렉터 등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렇게 정의를 내린다는 건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에 내려진 모든 정의가 절대적이었다면, 단적인 예로 고흐는 사후에 재평가 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 결과 현 시점에서 결코 주류에 편입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살아생전의 고흐는 명백히 비주류였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어떤 작품이, 어떤 창작물이 혹은 어떤 사람이 비주류라고 해서 이를 우습게 보거나 평가절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어느 시점에 재평가되어 주류가 되다 못해 최고의 경지로 손꼽힐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저자 이소영이 말한 것 같이, 하찮은 예술도, 하찮은 삶도 없다. 그저 모두가 각자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뿐이다. 각자가 내포한 그 찬란함이 어느 시점에 빛을 발할 지 우리 중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아주 평범한 당신이, 그리고 내가, 언제 우리 속의 비범함을 세상에 드러내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 


지은이: 이소영

분야: 에세이


출판사: 창비

페이지: 256쪽


정가: 18,000원

ISBN: 978-89-364-7914-5 (0360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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