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내 사상의 지평

제11회 오프라인 모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후기
글 입력 2022.08.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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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11번째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이 있던 날이다. 마지막 모임으로부터 채 2달이 지나지 않았으니, 모임은 예상외로 빨리 찾아왔다. 지난 모임이 코로나 창궐 이래 처음이었으니, 아무래도 구성원 모두에게 들뜨는 행사였을 테다. 약 3년간 모임이 없었다고 치고, 대략 반기에 1개 기수씩 추가된다고 하자면,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에게 첫 모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제의 모임은 익명 누군가의 피드백을 반영해 대단히 길었다. 4시간 정도로는 해갈이 아쉽다고 여겼던가 보다. 오늘은 10시에 모여 18시가 조금 넘어 해산했으니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허리가 아픈 것도 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구면이 꽤 있었다. 한번 얼굴을 구경해 본 것만으로도 은밀한 친밀성이 생기는 것은 물론 자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눈빛으로까지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것, 그러기엔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이 감정이란 나 혼자만의 것이니까. 튀어 나가려는 섣부름으로 인해 관계의 가능성, 그 씨앗이 가진 잠재가 쉬이 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유롭게 풀어두기에 나는 혼란하며, 너무 왕성하다.


관계는 초록 식물의 비유를 가진다.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이 최초에 침묵으로 대면한 상태는, 두 명의 우주 사이에 관계라는 이름의 씨앗이 날아와 심기는 모양을 따른다. '우리 서로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가능성으로서의 씨앗, 그것은 차분하고 신중하게 길러 내야 하는 것. 투박한 손으로 모래를 덮어버리거나 마구 사랑하는 마음으로 왈칵 물을 뿌려대면, 씨앗은 이내 죽어버리거나 허약한 줄기를 겨우 틔우내곤 얼마 가잖아 생장을 그쳐버렸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 한정해서 하는 생각, 내 짜른 생애에나 새겨진 교훈이다. 신 내다가 날려버린 관계가 너무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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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다. 하지만 느린 것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빠른 것에는 차도가 없었다. 그리고 빠르게 서두르다 끝나버린 관계는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 관계는 일정 피어나면, 대개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곤 하니까. 어떻게 키워내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좀체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이것에는 역시 식물의 비유가 어울린다. 고로 눈빛으로도 말로도 피어나지 않으려는 이 은밀한 친밀성은 나만의 것, 지금의 나는 내 안에 영그는 것들을 세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단한 조심성을 가진다.


나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렸기 때문에, 너무 왕성하거나 지나치게 고요하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이 양극성은 나를 참 어렵게 만든다. 한순간 불타올라 유쾌하다가 삽시간에 사그러 조용해지면 모두에게 곤란하니까. 한 가지 모습으로 통제해내지 않으면, 그날의 텐션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무작위성은 상대에게 혼란과 오해, 내지는 불쾌나 소외를 주었다. 고로 아직 나를 속들이 알지 못하는 그대에게 나는 한가지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내가 마침내 충분히 스민 어느 때까지, 혹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생각해보라.


매일 왕성하는 것과 매일 차분하는 것, 내게 두 가지 택지가 있다면, 전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이다. 없는 것을 꾸준히 지어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모든 순간, 어제를 예시로 더욱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장장 8시간 동안 꾸준하게 왕성함과 유쾌함을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게 그런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그 모습으로만 계속 있을 수 없기에 그렇다. 또한 다음번과 그 다음번의 만남 그때까지 줄곧, 그러니까 그대에게 내가 스미는 어느 때까지 꾸준히, 왕성함과 유쾌함을 지어내 보일 수는 더욱 없을 노릇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없는 것을 부러 만들어 유지하려는 것과 있는 것을 굳이 내리누르는 것의 두 가지 택지 앞인 것이고, 개중 무엇이 타당한 선택인지는 자명해진다.


가만히 있으면서 최대한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퍼진 즐거움의 홀씨가 나에게까지 날아들면, 나는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먹으며 웃음을 피워댔다. 그런 중에 공중으로 피어나는 이 웃음을 따라서 쏟아지려는 마음은 계속 잡아두었다. 이 은밀한 친밀성은 한동안 나만의 것이고, 나만의 것이어야 할 테니까. 다만 다른 치들은 여태 서로의 글을 읽어 왔고, 이제 서로 동경해 눈에 가득 호기심을 드리운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글을 안 읽거든… 리스트 업 해둔 읽을거리들만이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읽고픈 것과 읽어야만 하는 것들은 제목만 늘리어 가고 있다. 변명 아닌 변명이지만, 아니 그래 분명 변명이지, 쓰려는 자가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은 냉소를 자아낼만한 일이다.  서론 끝.

 

*


그렇게 가만히 있는 중에도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날아들었다. 나는 여러분의 글을 읽지 않았는데, 이 모임을 위해서인지 내 글을 미리 읽고 온 이들이 칭찬을 건네주었다. 나는 돌려줄 칭찬이 없어 부끄러워만 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는 중에도 귀에 젖은 칭찬이 지워지는 건 또 아니라서, 나는 마찬가지로 가만히 행복해했다. 무어라 했더라? 나를 유심히 보더니 '책 먹는 여우'를 닮았다고도 해주었고, 내 글을 두고 용암 같다고도, 무언가 왕성하게 쏟아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6시간이 넘도록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나 했는지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건 내가 무심해서가 아니라 평균 이하의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것은 낯선 이들 사이에서 평온했고, 불안하지 않았고, 즐거웠다는 것 정도이다. 이건 내게 있어 대단한 일이다. 아, 그리고 허리가 조금 아팠고 눈이 따가웠다는 것까지.


얼마 전 친구는 내게, 렌즈를 껴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물었다. 왜냐고 되물었다. 그는 나를 잘 아는 이로, 내 가진바 고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이다. 너는 안경을 벗으면 더 온순해 보인다고, 그것은 네가 원하는 바일지라고 말했다. 나는 내 얼골을 몰라, 나보다 잘 아는 그이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렌즈가 눈물을 말려버리는 것까지 그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8시간 동안 렌즈를 끼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다. 어제 강연에는 어느 여성 CEO가 찾아와 강연을 해주었는데, 그녀는 살아온 생애에 줄곧 함께 한 스트레스가 어느새 자신을 말려버려, 눈앞을 뿌옇게 만들어버렸다고 서론을 열었다. 그녀가 6시간 차에 왔으니, 그쯤 나는 마찬가지로 뿌예진 눈을 부비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


강연자 정영선 대표님은 '브이알북'이라는 스타트업의 여성 CEO, 스토리텔링 마케터로서 자신의 입지와 커리어를 개척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트인사이트에 게시된 그녀의 인터뷰를 참고하자) 그녀는 조용하게 입장했다. 서로 간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우리였다지만, 그녀는 언제 온 지도 모르게 공간에 스며들어 있었다. 강단으로 향하는 정 대표님, 소리 나지 않는 발걸음과 크게 흔들리지 않는 상체 끝으로 자연스레 매달린 두 팔이 눈에 확 걸렸다. 이런 것들은 대개 그 사람이 지닌 우아함의 힌트가 되어주기에.


CEO는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온 사람으로서, 특유의 강렬한 아우라를 가지는 것 같다. 눈빛은 맹렬히 타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응시해 보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압도하지 않지만, 결코 압도당하지도 않을 눈동자, 그리고 그 가변으로 편하게 열려 있는 눈꺼풀이 잘 보인다.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성질을 가진 지에 대해 상상해볼 수가 있다.


강연 내내 은연중 강조하시는 우아함의 중요성은, 그 사람에게 이미 깃들어 있는 풍모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소리 나지 않는 발걸음과 크게 들썩이지 않는 상체와 그럼에도 그 끝에 매달린 팔의 자연스러운 흔들림 등이 이미 선보이고 있던 것. 뒤죽박죽 써본 그녀의 인상을 정리해보자면, 단단하고 우아하다. 그런 사람은 카리스마를 가지게 된다,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수월히 흔드는. 고집과 주관이 강한 나는 스스로 무장해제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놀라워했다. 그것은 앞으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쉽게 마음으로 들어오리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녀 또한 한 명의 작가로서, 글 쓰는 우리에게 조언했다. 한편 그녀는 또한 스토리텔링 마케터로서, 글 쓰는 우리에게 조언했다. 마케터는 시장을 읽고 대중의 니즈를 파악해야만 하는 직업이겠지. 그러니 전 반야를 작가로서, 후 반야 지금까지는 스토리텔링 마케터로서 살아온 그녀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에는 여러 방면으로 된 생의 교훈이 베여 있었다. 다 꺼내어 말해보자면 맛이 안 살 것 같고… 그녀의 당부를 '작가로서 살기 위해 천재와 경쟁하지 말 것이며, 작가로서 살되 괴물이 되지는 말라'는 충고였다고 줄여보겠다.


방송 작가로서 원컨 원찮건 대중의 니즈를 알게 되고, 또 그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하였다. 또한 스토리텔링 마케터로서도 마찬가지, 대중의 니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종래 자신의 글과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하였다. 작가는, 최소한 요즘 시대의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럴만한 시간도 더욱 적어졌고, 독자 평균은 오히려 작가보다 유식해졌으니까. 읽기 수월하고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는 글을 빚어야 하고, 독자로부터 유리된 채 자기만의 영역에 침잠해서도, 자신 만의 성에 갇혀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선 살아남을 수 없고, 영영 닿을 수 없을 테니. 더이상 나는 어려운 글을 쓸 테니 너희가 그것을 해석하라고 은연중 명령할 수 없다고 했다.


우연인지 대표님은 유독 나를 자주 응시했고, 그녀의 말들은 나를 정면으로 겨누었으며, 죽비가 되어 내 정수리를 딱- 딱 때렸다. 내가 독자를 크게 상정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쏟아내는 작가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제 발 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도 더 나아가 그녀는, '자신 안에 갇힌 채 괴물이 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자신이 겪은 몇 명의 괴물들을 예로 들어 힘주어 말했다. 난해 속을 헤매다간 이해받지 못하고, 더욱 철저히 고립된 공간 속에서 허영과 오만과 상처와 힐난으로 점철되지 말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글 쓰는 이로써 자연하게 느끼게 될 특권의식에 빠지지 말라고 했으며, '글이 무슨 특별한 능력이 허락된 자들만의 것'이라는 선민의식에 빠지지도 말라고 했으며, 글과 예술을 삶과 사람 너머에 있는 대단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들 했다. 글은 삶을 갈무리하는 것이고, 예술이란 것도 결국 삶을 꾸미는 것이기에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을 향하지 않는 예술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독자를 향하지 않는 글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정말 단순하고도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 말이 나를 크게 때렸다. 그 순간 내 안에는 먼 미래, 괴물이 된 나의 영상이 삽시간에 그려져 버린다. 사실, 이미 미약하게나마 그 가능성이 내 안에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네게 다가가지 않고서 네가 나에게 다가올 것을 기대치 말라고 바꾸어 써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로 느껴지지만, 그게 왜 글에서는 잘 안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이에 나는 질문한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그러면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가장 먼저 답하게 된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모두 말로써 해 보이고 이해받기란 어려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댄다.


더 질문한다. 글 쓰는 나는 스스로 관철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종국에 이해받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면 둘 다라고 답하겠지. 그러면 더 짓궂게 질문한다. 왜 그런 것이냐고. 이것을 내 안에서 답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써보이기엔 쉽지 않은 것, 그렇기에 굳이 나한테 짓궂게 질문한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고 있고, 그것을 공고히 하고 싶으며, 종래엔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며, 승리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패배하고 싶지 않았고, 나에 대한 부정을 대비하여 무의식중에는 온갖 논리가 마련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답변으로도 의식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까지 전부 대변할 수 없음을 알기에,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러면 조금 더 깊은 곳에서는 조금 더 발칙한 답변이 튀어나온다.


 

'일상 언어로 영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전히 답변이 남아 있음을 나는 예감한다. 사실 이 모든 문답이 이미 어느 정도는 스스로에게 개척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듯 문답의 형식으로 성문화되거나 구조화되지 않았을 뿐, 그러니 나는 이따금씩 떠올라 개별적으로 파편화된 채 간직된 각각의 사상들을, 의식의 우물 속에서 계속해서 길어 올려본다. 잠깐 집중해보면 이런 답변이 또 등장한다.

 

 

'세상의 생각들 중  대부분의 것은 

옳은 것과 인정받는 것이라는 

두 권역의 교집합에 걸쳐져 있지만,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한다. 

심지어 나의 사상은 두 권역 모두의 외집합에 

외따로이 떨어져 있다.' 



계속 나를 몰아댄다.


 

'올바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고 개척하고자 한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수천의 문장으로 그려낼 수 있고

심지어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의 옳음은 마찬가지로 증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멀었다.

 

 

'나는 자주 그릇 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친구들과 심지어는 나로부터.

그러나 나는 정말로 잘못되었는가? 

나는 내가 사실 그릇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만 두려움에 의심한다. 


그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의 만인에 대한 이해와 인정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증명해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아마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손쉬운 생각들에는 진리를 담을만한 깊이의 공간이 마련되기 어렵다. 

또한 손쉬운 생각들로는 인간의 모순을 대처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쉬운 생각들로는 아름다움에 가닿을 수 없다. 


아름다움.

그래 그것은 아웃사이더의 환상향이고

고독한 자가 찾는 아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움은 쉽게 잡아볼 수 없는 것이라야 한다. 


토마스 만이 말했듯, 

그 영광의 월계관은 수없는 밤의 고통으로 와야 하는 것이고


릴케가 말했듯, 

그 아름다움은 가장 깊은 고독으로부터 빚어져야 하며, 


니체가 말했듯, 

그 아름다움은 마치 초인이 그러한 것처럼, 

의식에 번개를 내리고 불을 댕길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것으로서 생각을 대하고

그렇게 어렵게 글을 짓고 

그것을 하나하나 쌓아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과정이자 계단으로 삼고자 한다'

 


이만큼 고백했으면 충분한 것 같다. 의식에 숨어 있던 사상들은 이제 글로써 명백한 것이 되어 버렸고, 그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독하다. 이미 각오했던 수치스러움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실컷 써놓고 게시물에서는 빼버릴지도 모르지. 이렇게 고백록으로 적어두고서 바라보자니 앞서 정 대표님이 가리켜 만류한 것이자 내가 은연중 감지해버린 괴물의 예감, 그 지독한 운명이 조금 더 노골적인 것이 되어 있다. 내가 왜 이런 생각들을 무의식과 의식 사이, 아마 전의식 어디쯤에 곶감처럼 별처럼 박아두었는지, 그 까닭과 연유에 대해서는 아마 다른 글에서 쓸 수 있겠지. 의식이 얼얼해서 오늘은 못 쓸 것 같다.

 

*


글은 내게 몇 가지 귀한 경험을 주었다. 그중 하나는 쓸수록 생각이 자명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쓸수록 그 생각이 깊고 첨예해진다는 것이며, 마지막은 그것이 공고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첨예해지는 생각은 이제 와 다시 바라보니 아편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 독에 취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중에 점차 공고해져 버리는 생각이란 한편, 유연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양보하지도, 어울리지도 못하게 되는 것임을 근래에 겪어 알았다.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관계는 어려워졌다. 나에 대해 생각할수록 마찬가지로 그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할수록 현실의 사랑은 아예 먼 것이 되었다. 왜 그랬던가. 작게 꾸물거리고 있던 이 의구심을 드디어 의식 전면으로 꺼내어본다. 그것은 앞전의 고백보다 쉬운 일이다. 지금 나의 수치, 그것이 가지는 역치는 너무 높아져 있으니까. 그것은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지나치게 밝혀버리는 작업이며, 그런 발견들을 글자로 박제해 휘발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작업을 원하든 원치 않든 수반하기 때문이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사랑을 예시로 설명해볼까.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멀거니 구경하곤 한다. '너는 무엇으로 사랑을 시작했니?', 이렇게 묻지는 못할 터이니 사람 말로 바꾸어 넌지시 물어본다. '그냥… 취직도 했겠다, 연애하고 싶기도 하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데도 가고 추억을 쌓고 싶어서…? 소개팅을 계속 받았고, 결국 소개받은 한 친구가 꽤 괜찮아서 연애를 시작했다'라고 답한다. '무엇으로 사랑을 지속하니?'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풀어서 했다. '글쎄… 그냥? 어제도 좋았고 오늘도 좋으니까 만나고 내일도 아마 좋을 거고… 그 너머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라고 답했다.


지금의 나는 이런 것들이 도저하다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사람 말로 바꾸어서 해보자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랑에 대해 개발한 생각들이 경구가 되어 내 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다간, 그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는 모든 행동과 생각들에 제약을 걸어버리기 일쑤인 까닭이다. 사랑은 이러 해야 하며, 사랑은 또 저러 해야하며… 이런 것들이 가득 차 있고 또 박제된 상태에서는 생각도 그에 뒤이을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최근에 겪어 알게 된 것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내 무덤을 판 꼴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내가 뱉은 말을 내가 위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정도로는 내 자존심이 강하니까.


다행히도, 어느 순간 내가 잘못 인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부를 낱낱이 밝히고자 하는 시도로써 최근 연작 에세이를 쓰는 참이었다. 세상이 논리만으로 살아지는 곳이 아니라는 자각은, 내 모든 사상을 논리로써 짓고 퇴고하고 공고히 하고 증명하고 관철하겠다는 기존의 생각을 논파하는 참이었다. 그랬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었고, 그랬기에 해낼 수 있는 성토였겠지. 그리하여,


 

이제부터 내 글과 사상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이번 에세이는 정 대표님이 준 충격으로부터 비롯되었고 바로 위의 예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겠고, 몰라도 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가지고 있던 불안한 운명에의 예감, 그것이 의식 전면에 대두하였고, 글로 박제되어 비로소 유의미한 위기감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진실한 것들은 너무도 강력한 원리가 되어, 또 알게 모르게 나의 의식 뒤편에서 아득바득 다른 방향성을 생산할 것임에. 글과 사상에서 힘을 빼는 건 아마 조금 나중의 일이 될 테고, 일단 알기 쉽게 풀어쓰는 것부터 해야겠다, 수치가 불을 댕기니 이런 생각은 간절해지기 시작한다.


수치라… 정 대표님이 건네주신 예시를, 거기서 받은 충격을 조금 더 자세히 씀으로써 내 고백의 까닭을 더욱 분명히 하고, 거기서 받을 수치를 줄이고 싶은 열망이 간절하지만, 이제와 다시 아무리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럴 수는 없겠다. 그것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니라서, 내가 소유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 수치를 안고 내 사상의 지평과 그로부터 뻗어나온 언어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다르게 바라보고 첨예하게 생각한다. 이번 오프 모임이 내게 참 유의미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시리라 생각한다.


성토가 끝나가는 광복절 저녁, 때맞추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온종일 씨름한 것들을 마무리하는 단계, 담배 한 개비만큼만 밖에서 비를 맞았다. 고백은 예상보다 독했고, 의식은 너무 얼얼했기 때문에… 다음 주에는 조금 바뀌어 있을 사상의 방향성을 안고서, 정 대표님이 언급한 다른 흥밋거리인 루 살로메에 관한 이야기를 해봐야지…


…  그나저나 다음 오프라인 모임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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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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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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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랑파랑
    • 지난 오프라인 모임 때 만났던 터라 괜히 더 반갑게 느껴졌던 에디터님!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같은 강연을 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멋지네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 모임 때는 더 많은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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