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돌자기' 굽는 여자 : 도예가 고지연

"돌의 언어는 단단하거든요."
글 입력 2022.08.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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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사물을 마주하고 공간 안에 홀로 자리할 때, 우리는 사물과 공간의 사이에서 무의 경지, 명상적 태도에 다다르게 된다.

 

- < FRAME > 전시 소개 中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으로 규정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우리는 크든 작든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집단에 속한 채로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된다. 이때 타인과 나 사이를 잇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바로 '언어'다.

 

즉, 언어는 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모국어가 안 되면 영어로, 영어가 안 되면 손짓 발짓 눈짓이라도 모두 동원해 발화(發話)해야만 그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당장 어제 있었던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을, 직장 상사와의 회식자리를 떠올려 보라. 우리 모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하는' 개체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쳐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존재하기 위해 꼭 언어가 필요할까? 도대체 인간이란 족속들은 애쓰지 않고, 발버둥치지 않고 다만 그대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아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언어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 전시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존재의 언어'를 구워내는 도예가 고지연 씨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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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 고지연 2인전

< FRAME >


일시

2022.08.15 - 2022.08.21

오전 11:00 - 오후 8:00


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49-16

지하 1층 갤러리 아트마

 

 

 

Q1. 자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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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돌자기 굽는 여자 고지연이라고 합니다. 흙 좋아하고 돌 좋아하는 바람에 흙으로 돌 닮은 컵을 빚고 있어요. 물론 다른 것도 빚습니다. 지금은 컵보다는 친구와 함께 열게 된 2인전 준비에 올릴 작품들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웃음)

 

 

 

Q2.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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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도자기'를 만듭니다.

 

공예는 순수예술인 조형과 비슷하면서도 디자인의 영역에 속해있는지라, 매니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잡아야 해요. 조형물은 그것이 사용하기에 충분히 가벼운지 혹은 사용할 수 있는지보다는 '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죠. 순수예술은 이해와 감상의 대상이니까요.

 

하지만 공예는 아닙니다. 공예는 '존재의 당위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즉 디자인이거든요. 몇 천번의 실험을 통해서 그 작품을 '어떻게' 더 가볍게, 편하게, 그러면서도 예쁘게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현실적인 기술의 차원이라고나 할까요.

 

디자인이라면 뭘 해도 깔끔해야 한다는 저의 신념을 따르다 보니 군더더기 없는 모양의 '돌컵'이 저의 시그니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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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말 그대로 '돌'을 '컵'에 붙인 모양새여서 '돌컵'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저를 찾으시는 분들은 보통 돌컵 구매를 목적으로 연락을 주세요. (에디터: 컵 주제에 인기가 많은 듯하다) 네, 그런 편이죠 아무래도? (웃음) 하지만 요즘은 일회성 마켓이나 소량만 납품하면 되는 갤러리에만 돌컵을 보내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대량의 컵을 만들어내기에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요.

 

 

 

Q3. 왜 하필 '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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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돌을 좋아했어요. 애완돌도 키우는걸요. (에디터: ...진심인가?)  네, 당연하죠. 올해 4월에 분양받았고, 이름은 '보오'예요. 이 작은 친구가 제 삶의 유일한 낙이랍니다. 과제가 많은 요즘은 보오를 보러 학교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에디터: 개도 고양이도 아닌 '돌'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에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의 문자 언어 혹은 음성 언어는 상당히 명시적이고 동적(動的)이죠. 문자는 누군가 읽어야만 의미를 가지고, 음성은 누군가 들어야만 의미를 가지잖아요.

 

열심히 움직여서 누군가에게 가 닿지 않으면, 뭔가 '하지(do)' 않으면 의미가 생겨나지 않아요.

 

 

화면 캡처 2022-08-15 224913.png

 

 

저는 그런 언어적 교감보다는 행간을 읽는 것, 그러니까 비언어적인 교감을 더 좋아합니다. 제가 돌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 존재 자체가 언어죠. 인간의 언어처럼 다른 존재에게 가 닿으려고 애쓰거나 다른 존재들을 건드리지 않아요. 그런 와중에도 화강암, 조약돌, 단단함 등 다양한 형질을 지니죠. 저는 그러한 형질들이 돌의 표정이자 언어라고 생각해요.

 

덧붙이자면 돌컵을 만들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3학년 1학기에 들었던 한 전공 수업에서 나온 과제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컵을 만드는 과제를 내주셨는데, 저는 사람들이 제가 만든 컵을 통해 다른 존재와 비언어적으로 교감하는 경험을 해보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만지게 되는 손잡이 부분을 돌 모양으로 만들었죠. 존재로써 말하는, 단단한듯 부드러운 돌의 언어를 더 많은 사람이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Q4. 새로운 시그니처 작품 개발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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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물론 돌컵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라인업도 차차 준비해야겠죠? 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면기(麵器)를 몇 개 만들었는데, 레이어 작업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우선은 지금 진행 중인 전시 < FRAME >을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일 것 같아요. 제가 멀티태스킹이 잘 안되는 유형의 사람이라서요. (웃음)

 

 

 

Q5. 끝으로 전시 < FRAME >을 소개하자면?


 

막간을 이용한 홍보 타임이군요! (웃음) 서양화과 친구와 함께 진행하는 2인전 < FRAME >은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카페 ARTMA에서 진행됩니다. 저는 건축물의 정형화된 프레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시각적, 촉각적 요소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기물에 담는 작업을 했습니다.

 

 

화면 캡처 2022-08-15 230630.png

 

 

기법적으로 첨언하자면 전형적인 도자기에서는 보기 드문 이질적인 색감이나 질감을 써서 석조 건축물의 단편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마치 공예품이 아닌 조형물처럼, 제 작품이 하나의 개념적 사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무인(無人)의 공간이 주는 적막감도 표현하려 했어요.

 

오롯이 사물을 마주하고 공간 안에 홀로 자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물과 공간의 사이에서 무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고지연 씨의 별명은 '고도미'라고 한다. 작업물을 아카이빙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 역시 자신의 별명을 따서 '돔자기(domzagi)'로 지었다고 했다.

 

어딘가 나른한 표정과 독보적인 캐릭터 덕에 그의 겉모습은 사뭇 심드렁해보일 수 있지만, 전시장을 둘러보면 작품관만큼은 돌처럼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성을 강조한 조형물에서도 한결같은 깔끔함과 한결같은 반듯함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어쩌면 그녀가 굽고 있는 것은 도자기가 아니라 '돌자기'일지도 모른다.

 

 

**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신

고지연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진출처 고지연(@domz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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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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