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평범함에 건배를 [공연]

굿바이, 넥스트 투 노멀
글 입력 2022.08.11 15: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다들 계절 그리고 날씨에 따라 생각나는 영화나 극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특히 생각나는 뮤지컬이 있다. 비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과 썩 잘 어울리는 색을 가진 뮤지컬.

 

바로 '넥스트 투 노멀'


 

 

모두가 기다려온 완벽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줄여서 '넥' 또는 '넥투노'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2022년, 무려 7년 만에 레전드 뮤지컬이 돌아왔다. 수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이 극을 본 공연연출가 겸 뮤지컬배우 박칼린이 자신이 오디션을 볼 테니 제발 한국 제작사가 판권을 사 갔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스토리와 음악이 완벽하게 갖춰진 작품이다.


3층의 멋있는 무대와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연기 그리고 탄탄한 넘버로 역시 넥투노! 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하는 극이었다.


'넥투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만할 수 있는 철골로 이루어진 '3층 무대'와 '보라색'이다.

 

 

무대.jpg

 

 

3층의 철골 무대는 줄곧 굿맨 가족의 '집'으로 사용되는데, 철골(건축물의 뼈대)로 되어있기에 차갑고 결핍의 느낌을 주는 동시에 단단하고 미완의 가능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철골이 주는 '앙상한 뼈대'의 이미지 때문에 철골 뒤 혹은 위에서 엄마 다이애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아들 게이브의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였고 뼈대가 주는 '아직 미완성'의 이미지 덕분에 항상 평범함을 꿈꾸던 굿맨 패밀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또한 넥투노의 상징인 보라색의 의미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특히 예술작품에서 '보라색'은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보라색 제비꽃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며 우울, 죽음, 혼란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예상외로 호화로운, 풍요 등 완전히 정반대의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극에서도 한 가지의 보라색만 사용하지 않고 자줏빛이 도는 보라색, 청색이 도는 보라색 등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상을 사용하며 극의 분위기를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색과 무대, 각각의 이중성을 의도하여 만든, 정말 잘 만든 극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며 감탄한다.

 

 


록 밴드, 못 잊어


 

록 밴드를 기반한 펑키한 분위기의 뮤지컬로 내가 이전에 봐왔던 공연들(풍월주, 팬레터, 은하철도의 밤 등)과 결이 달라 흥미 롭게 볼 수 있었다.

 

특히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밴드의 전주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의 떨림을 안겨주었다. 6인조 라이브 밴드는 무대 뒤나 아래가 아닌 무대 2층과 3층에 조금은 공개적으로 위치해 있어 옅은 조명으로 드리워지는 검은 실루엣이 철골 무대와 썩 잘 어울려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무대 장치가 되었다.

 

 

hostile-886034_1280.jpg

 

 

하지만, 이번이 4연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밴드의 연주 소리에 묻혀 배우들의 대사가 관객들에게 잘 전해지지 않는다는 아쉬움 가득한 평을 받고 있는데, 완벽한 뮤지컬임에도 계속해서 이러한 음향에 대한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5연에는 이 문제가 눈에 띄게 해결되어 넥투노 만의 록 밴드의 가치를 한껏 올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말이 많았던 음향



명불허전의 배우들과 제작자들의 땀이 돋보이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다만 이번에  작품이 올라간 극장, '광림아트센터 BBCH홀'의 음향은 아쉬움이 상당했다. 앞서 말한 밴드의 음향 문제와는 다른 음향 문제이다.

 

뮤지컬의 기본적인 스토리를 파악하기 함들 정도로 들리지 않던 배우들의 대사... 뮤지컬인데 배우들의 대사가 하나도 들리지 않으니, 정말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다. 실제로 관극하던 날, 앉아있던 좌석(1열 중블)에서는 인터미션 때 음향에 불편을 토로하는 말들이 정말  많이 들렸다.


다행히 나는 '넥스트 투 노멀'에 대한 스토리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배우들의 대사를 들으려고 용을 쓰다 보니 극에 평소처럼 몰입할 수 없었다. '넥스트 투 노멀'을 처음으로 관극하는 분들은 이 극의 매력을 온전히 다 느끼지 못하고 돌아갔을 듯 싶었다.

 

(이후 다른 후기들을 보니, 1층보다는 2층이 '상대적'으로 음향이 괜찮다는 말이 많았기에 이후의 관람은 2층에서 했지만 음향과 시야, 정녕 이 둘을 한 번에 잡을 수 없는 공연이라 무척이나 아쉬웠다.)

 

 


다들 평범하신가요?


 

'평범한 게 제일 어렵다'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극으로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평범해지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주는 극이다.

 

전기충격치료법과 너무나도 복잡한 알약 복용법 같은 약간 기괴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극을 보다 보면 이 기괴함이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그 가족들은 이러한 치료법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치료법은 실재 미국에서 치료법으로 사용되었었고, 현재도 사용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평범하길 바라지만, 결코 평범하지 못한 가족
 

 

그들이 평범할 수 없던 이유는 가장 슬퍼해야 할 때, 가장 슬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슬픔'이라는 평범함 감정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 평범함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조금의 시간도 없이 마치 '없었단 일' 마냥 서로 그 슬픔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한 다이애나와 댄, 다시 그 사실을 꺼내 마주하게 될 감정적 무너짐을 겪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무너짐은 나중에 배가 되어 다이애나, 댄 그리고 어쩌면 아무 연고도 없다고 볼 수 있는 나탈리에게까지 덮쳐왔다.

 

다행히 극은 그때 미처 누리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내며 해피엔딩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만약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이 극처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당장의 현실을 살아가야 하니까


 

1615_2475_5645.jpg

 

 

"당장의 현실을 살아가야 하니까" 라는 현실적인 말로 그동안 외면했던 생각과 감정들을 한 번씩 떠올려 지금이라도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현재를 건강히 잘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시사해 준 공연으로 무감정한 현대인들에 어떠한 울림을 전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한 사람의 귀중한 말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당신들께 바치고자 한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없고 아프면 능률이 떨어지고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저희 아티스트 분들은 사람들은 위로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니만큼 뭐 프로의식도 좋고 다 좋지만 사람으로서 먼저 스스로 돌보고 다독이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병들고 아파하시는 일이 없었으면, 진심으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 골든디스크 어워즈 음원대상 - 아이유 수상소감

 

 

 

+ 해당 글의 제목은 영화 <카사블랑카> 중 '릭 블레인'의 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Here's looking at you, kid)"를 차용하였습니다.

 

 

tag.jpeg

 

 

[여기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