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벗어야만 하는가? [미술/전시]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글 입력 2022.07.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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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서의 여성


 

여성의 평등권을 위한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60년대 이후, 창작자로서의 여성의 존재감을 지워왔던 예술계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1971년,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은 자신의 논문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를 통해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부재를 제도와 학제의 부재로 설명했다.

 

실제로 19세기 전통 회화에서 ‘의복을 입은 인물’을 대상으로 한 회화는 위대한 그림이 될 수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누드를 기반으로 한 인물화, 초상화가 가장 높은 가치로 인정받던 당시, 여성 화가들은 그 기본이 되는 누드화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성별을 불문하고 여성이 타인의 누드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린다는 전제 자체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클린은 이를 여성들이 “중요한 예술 작품 창조의 가능성을 박탈”당한 것이라고 보았다.

 

71년 린다 노클린의 논문을 필두로, 마이엄 샤피로, 주디 시카고 등을 비롯한 페미니즘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은 여성 예술가들의 단체 및 전시회 결성, 정기 출판물 발행 등으로 이어졌다. 오늘은 그중 80년대 중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던 미술가 단체,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게릴라 걸스는 고릴라 가면을 쓴 채 익명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기반의 여성 예술가 그룹으로, 1985년 결성되었다. 이들은 익명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기존의 백인 남성 중심 미술계를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활동을 이어왔으며, 대체로 포스터를 제작하고 길거리에 붙이거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이후 게릴라 걸스는 제도의 여성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문제를 작업으로 표면화하면서, 기존 사회에 팽배해져 있는 문제의식을 공론화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은 미술계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팽배했던 여성의 부당함을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하던 사회 문제들을 의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미술계와 사회 전반에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와 변화의 바람을 불어온 것은 당연하다.

 

 

Naked1989  700.jpg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해당 포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1989년, 2005년, 2012년 3번에 걸쳐 제작된 해당 포스터는 장 어귀스트 앵그르의 신고전주의 작품인 <오달리스크> 속 여성의 모습에 게릴라 걸스의 상징인 고릴라 가면을 합성하여 차용한 포스터이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벗어야만 하는가?”라는 문구가 상단에 큰 글씨로 쓰여있고, 그 아래로 “현대 미술 분야에서 여성 예술가는 5% 미만이지만, 여성 누드화는 85%이다”라는 문구가 뒤따라온다. 2005년의 포스터에서는 여성 예술가와 여성 누드화의 비율이 각각 3%, 83%로 수정되었고, 2012년의 포스터에서는 4%, 76%로 수정되었다.

 

게릴라 걸스의 포스터는 미술계에서 당연시되던 주체로서의 백인 남성과 그 주체의 시각을 통해 ‘수동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으로만 표현되는 예술계의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예술계에서 여성이 겪는 부당함을 알린다. 교양이라는 명목으로 감상되던 전형적인 여성 누드화 패러디와 함께 구성된 강렬한 텍스트는 전복적인 효과를 가지고 관람자에게 더 큰 에너지를 갖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앵그르 오달리스크 700.jpg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오달리스크〉, 1814년, 캔버스에 유채.

 

 

특히 〈오달리스크〉를 그린 화가 앵그르는 프랑스 태생의 신고전주의 화가로, 〈오달리스크〉를 그릴 당시 로마보다 먼 곳으로 떠난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동양을 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동양을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프랑스 백인 남성이 그린 터키의 오달리스크라니, 다시 보니 조금 우습기까지 하지 않은가?

 

*

 

진지한 직업세계는 오랜 시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으며, 여성들이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는 겨우 한 세기도 되지 않았다. 현재에도 일부 국가 혹은 직업 세계에서는 임금차별을 비롯하여 여성을 진지한 직업인으로 인식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중심지 뉴욕에서 “게릴라 걸스”와 같은 집단적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난 것은 20세기 미국에서도 여전히 백인 남성을 제외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어쩌면 20세기 가장 진보된 도시, 뉴욕에서조차 여성과 유색인종 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어려웠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릴라 걸스의 활동으로 인해 그동안의 남성 중심적 미술계와 제도가 극복되었냐 묻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아니다’에 가깝다. 특히 2009년 게티 리서치 인스티튜트에서 게릴라 걸스의 아카이브를 만들 당시, 그룹의 47명 중 40명이 자신의 실명 공개에 동의했던 일은 그동안 게릴라 걸스의 활동에 가장 궁극적인 정체성이었던 익명성의 전략을 저버리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이전과 같은 정확한 목적성을 가진 활동에 소홀해졌고, 활동의 지향점 또한 불명확해진 것도 사실이다.

 

20세기의 활발한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양성평등이 이루어졌다는 통계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여전히 유명 관광지의 유명 미술관에서 아주 쉽고 당연하게 유명 여성 누드화를 감상한다.

 

하지만 게릴라 걸스와 같은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이 무용했나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현재 게릴라 걸스의 지향점은 흐릿해졌을지 모르나, 그들이 예술계에 불어온 바람과 더불어 미술계의 남성 중심적 제도와 관념을 다시 한번 재고하게 했다는 점에서 게릴라 걸스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2004GuerrillaGirls-DecideMarchWashington 700.jpg

 

 

*게릴라 걸스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누구나 게릴라 걸스의 활동을 쉽게 접하고, 자신들의 작업물을 대량 복사할 수 있도록 했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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