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나 인간 실격이 될 수 있다.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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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의 계절, 여름이 왔다. 무더위에는 공포 영화만 한 것이 또 없다. 영화 속 음산한 분위기는 열기로 가득 찬 온몸을 식혀 주고, 잠시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은 더위도 잊게 만든다.
공포 영화를 보다 보면 신기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귀신이나 유령이 나오는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공포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은 오히려 귀신과 유령이 나오기 전, 정적이 흐르고 안개가 껴서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두려움과 공포는 두 눈으로 확인한 실체가 아닌, 실체를 몰라 느끼는 불안에서 기인했다.
인간이 두려운 한 남자의 이야기, <인간 실격>
공포 영화를 보듯 인간을 무서워하는 한 남자가 있다. 아니 정확하게 귀신이나 유령보다도 인간을 더 무서워했다. 요조는 왜 그렇게 극도로 인간을 두려워했을까. 요조의 두려움은 공포 영화에서 느끼는 무서움과 비슷했다. 인간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어 불안했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예상할 수 없어 두려웠다. 그렇기에 요조는 인간이 편안하지 않았고, 그들 틈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살아갈 수 없었다.
남들과 달랐던 요조
요조가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늘 예민한 아이였다. 노는 것을 즐겨하기보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아이였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속에 불행 덩어리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달리 먹고사는 실용적인 문제를 고민했고, 심각한 문제를 논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다. 요조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소외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엄격하고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요조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사실 털어놓았어도 가족들에게 이해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가 해맑지 않고 매사에 심각한 것은 아이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요조는 '막내아들'이라는 위치에 맞게 가족들이 바라는 '장난꾸러기'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물론 가면을 쓴다고 요조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면을 쓰면서 요조는 죄책감을 느낀다. 매사에 자신이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신보다 더한 위선과 가식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뒤에서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를 험담하면서 아버지 앞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요조는 그 모습에 한 번 놀라고, 자신처럼 누군가를 속이면서 일말의 회의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렇게 요조는 또 소외감을 느꼈다.
요조는 자신과 비슷한 무게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고, 남들과 다른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요조의 어린 시절은 혼란 속에 지나갔다.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다.
요조는 중학생이 된 후, 가족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기 시작한다. 가족이란 집단에서 벗어나 요조는 인간이 복수형이 아닌 철저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는 인간들을 관찰하며 정의하는 것을 멈추고, 한 개인으로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인간의 실체를 깨달아야 했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정한 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함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요조에게는 그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개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완성하려면 어쨌든 두려운 존재인 인간과 어울리고 또 갈등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거대한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요조에게 인간은 습관적으로 두려운 존재였다. 결국 요조는 '도망'을 선택한다. 자신이 완성해야 하는 삶으로부터 도망을 쳐 편안하게 쉴 안식처를 찾는다. 요조에게 안식처는 술과 담배, 여자였다.
물론 요조가 처음부터 삶에서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요조에게는 꿈도, 사랑도 있었다. 요조는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무척 좋아했고, 훗날 성공한 화가가 될 거라며 야심 찬 목표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요조의 아버지는 요조가 화가가 아닌 관리인이 되길 바랐고, 아버지의 반대로 화가가 되기 위한 계획은 흐지부지되었다.
꿈이 좌절되고 나서는 요조는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났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인 '요시코'를 만난다. 하지만 요조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악으로 가득 찬 세계와 인간으로부터 지켜줄 힘과 용기가 없었다. 요시코의 순수한 신뢰가 낯선 이에 의해 유린되는 순간, 요조는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염세와 무기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요조는 사랑하는 사람마저 떠나보냈다.
인간의 자격을 깨닫다.
그 후 요조는 괴로움에 술과 마약에 의존하며 하루하루 망가진 채 살아갔다. 그때 요조는 깨달았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 <인간 실격> 중
요조는 모든 일상이 파괴된 후에 비로소 인간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요조에게 인간은 '두려운 순간에 용기를 내,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는 존재'였다. 요조가 용기를 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라는 꿈을 지켰다면. 요시코가 위험에 빠져있는 순간 당장 달려가 요시코를 지켜냈다면. 요조가 두려운 그 순간에 한 번이라도 용기를 냈다면.
요조의 삶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요조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작가의 '마지막 당부'
인간 실격은 '두려움'에 관한 작품이다. 요조에게 두려움은 '인간' 그 자체였지만, 독자들은 자신만의 두려움을 요조의 두려움에 투영하며 읽을 수 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존재는 조금씩 다르지만 두려움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태도는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방법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요조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작가가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까지 독자에게 부끄러웠던 자기 생애를 고백한 이유는,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을 독자들은 꼭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를 위해 '인간 실격'이라는 자기 파괴적인 말을 하면서까지 도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인간 실격'이라는 말에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김연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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