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식물처럼 알음알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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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무실 책상에 아주 조그만 식물 하나가 생겼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다육 식물.
앙증맞은 크기에 감탄이 나왔으나,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작디 작은 이 생명체가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사무실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다육식물은 이미 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식물이라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물을 주는 게 적당하다고 한다. 오히려 물을 자주 주면 식물이 금세 죽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다육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매일 얼마나 자랐나 관찰하는 것뿐이었다. 어디 상한 곳은 없는지, 기울어져서 자라는데 괜찮은 건지. 딱히 식물에 도움은 되지 않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면 책상 위에 놓인 자그마한 아이에게 관심을 쏟았다.
'쑥쑥 잘 자란다고 하던데...자라긴 자라고 있는 건가...' 하면서 말이다.
다육이와 지금까지 함께 한 시간은 딱 한 달 정도인데,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그 한 달이 입사 두 달 차인 사회초년생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배워야 하는 일이 한가득이고, 낯선 것투성이였다. 내가 이렇게 모자라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나-하는 자괴감의 연속이었고 그 시간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진심 어린 칭찬을 상사에게 듣게 되었다. 어린 신입사원을 격려하기 위한 당근이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 당근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자꾸만 작아지던 차에, 내가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깨달은 기분이었다. 내가 착실히, 차근차근 잘 배우고 습득하며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3개월 차에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칭찬을 받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내 자리에 앉고 나니, 문득 다육이가 다른 날과 다르게 커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휴대폰의 갤러리를 열어 식물을 처음 받은 날 찍은 사진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육이는 딱 2배 커져 있었다. 옹기종기 몰려 있던 잎들은 가지가 길게 쭉쭉 뻗어 나가면서 흩어졌다. 키도 쑥 커지고 몸집이 화분보다 더 커졌다.
분명 매일매일 눈앞에서 지켜봤는데, 언제 이렇게 커졌던 건지.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날의 다육이의 사진을 또 남겨 한 달 후의 모습과 비교하고 싶어졌다.
소리소문없이 알음알음 성장한 다육이의 모습이 꼭 나의 모습과 닮아서. 대단한 관리나, 좋은 햇빛, 토양 없이도 잘 자란 다육이처럼 나도 또 성장하고 싶어서.
이 조그맣고 연약한 초록 잎들은, 언젠가 단단하고 짙은 빛을 띠는 다육이가 되겠지.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 동안, 내 모습도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된다.
[이채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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