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난 자연으로의 초대 - 도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작은 인간의 생명이 더 큰 생명력에 굴복하게 될 때
글 입력 2022.07.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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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을 좋아한다.


스스로 自 그럴 然, '자연+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에 따르면 3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둘째,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셋째,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이 말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부자연'스러운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꾸민 것. 순리에 맞지 않은 것. 힘든 것. 애쓰는 것. 저절로 되지 않은 것. 삶을 회상해보면 인간이 일군 사회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것에 둘러싸여있다. 인간이 만든 판타스틱한 플라스틱의 세계는 어느새 지구를 질식시키기 일보 직전이고, 의식주를 향상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물건들은 쓰레기로 한 대륙을 새로 만들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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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자연스러워지기 위해 자연을 바라본다.
 
매주마다 등산을 가는 사람들, 업무가 끝나고 공원으로 찾아가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내쉴 때의 '해방감'. 태초에 주어진 심폐의 기능을 그제서야 자연스럽게 발휘할 때다. 자연의 품은 언제나 작은 우리를 따스히 감싼다. 그저 자연은 한자어 풀이대로 '스스로 그렇기' 때문이다.

 

 


도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난 '자연'


 

도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읽게 된 계기는 무한한 것에 대한 경이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확실히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의 목숨은 눈 깜짝할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무한하다.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듯이, 자연의 광대함도 예상할 수 없다.

 

10억 번의 겨울을 떠올려 본적이 있는가. 100억 번의 초승달은? 적어도 사람인 우리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삶은 기껏해야 100년 전후가 될 테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자연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연에 대해 알려거든,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나라!" 그래서 언젠가 유한한 삶을 마무리한 후 자연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리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자연과 하나 된 삶의 기쁨을 영원히 누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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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읽으며 가장 중점에 두었던 독서 포인트는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남'이었다. 이 책에서는 광활한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삽화 한 장을 끼워놓지 않았다. 그래서 오로지 머릿 속의 상상과 내재된 감각경험에서 산과 바다, 나무들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떠올려 내야만 한다.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나 자연의 박자를 그려보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당장 자연의 한 가운데-이를테면 캠핑 장소나 바닷가에서 읽어내려가는 것이 가장 감동적이겠지만-에서 읽을 수 없더라도 괜찮다. 찬찬히 읽다보면, 어느새 일상에서의 작은 삶도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한번 더, 두번 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 테니까. 날아가는 새들을 찾아보고, 밤하늘의 별을 찾고자 고개를 들게 될 테니까.

 

무엇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짧은 여러 편의 에세이를 한 데 묶어 편안하게 자연을 떠올리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약 20명의 작가들이 적어내려간 짧고도 다채로운 이야기 속, 각자의 심장에 초록색 잉크를 떨어트리는 재미가 크다.

 

우리가 저마다 땅의 시를 적어 내려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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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이 여름의 폭염과 폭우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이 있다. 바로 언제든 '나무'를 찾는 것이다. 7개월된 아기 강아지를 데리고 때때로 산책에 나갈 때면 나무의 그림자가 그늘진 곳을 찾는다. 눈살을 찌푸리는 여름 속에서, 나무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작은 강아지와 나의 발 밑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때로 예상치 못한 비가 폭포처럼 쏟아내려도 우선 나무부터 찾는다. 넓고 든든한 나뭇잎으로 된 우산이 잠시 비를 막아줄테니까. 그렇게 자연에게 무심한 도움을 받을 때면 저마다 땅의 시를 적어내려가는 의미를 생각한다.

 

단편 에세이 '우리가 저마다 땅의 시를 적어 내려갈 때'에서는 있는 그대로 자연의 삶을 느끼게 하는 색채감 넘치는 언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땅에 관한 말'들과, 우리의 사전에는 없는 '비에 관해 무수한 애정어린 말'들이 자리한다. 이를테면 슬픔의 쓴 비, 무지개색 비, 가볍게 움직이는 비, 달 무지개 등의 아기자기한 언어들. 생동감이 넘치고 살아있는 말들이다. 이 언어들을 보기만 해도 한편의 수필이 완성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지 않은가.

 

 

나는 땅에 관한 말들을 할 때면 기분이 나아진다-이슬,꽃봉오리,비, 벌, 바람, 오솔길, 습지, 강,달. 땅의 말들은 고난이나 위험에 관한 것이라 해도, 디지털 템플릿이나 전략계획만큼 아프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나는 하와이어 사전을 훑어보며 나 자신의 빈곤함을 깨닫는다. 그 언어는 비, 가랑비, 폭우로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와이 사람들은 비에 관해 무수한 애정 어린 말들을 지녔다. 비(신들의 장식), 고운 이슬비(많은 사랑을 받는),슬픔의 쓴 비, 무지개색 비, 가볍게 움직이는 비, 달 무지개 등. 언어의 특수성은 촘촘한 야생 그물망 안의 상세한 것들을 면밀히 보게 한다. 

 

(중략) 우리는 무언가 진실하다true고 말할 때 그 단어의 뿌리가 나무tree, 휴전truce과 유사하다는 걸 안다. 우리는 나무의 한결같은 성격과 유연한 정신에서 진정한 삶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회복력을 되찾기 위해 자연의 장소들에서 어휘를 그러모아, 마음을 치유해줄 주문을 정제해내야 한다. 

 

- p.54-56 '킴 스태퍼드, <우리가 저마다 땅의 시를 적어 내려갈 때>' 

 

 

삶에서 회복력을 되찾고 싶을 때 자연의 장소로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결같은 성격과 유연한 정신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곧게 나아갈 힘과 에너지를 준다. 마음을 치유해줄 주문을 정제하는 것은 우리의 부자연스러운 물질 사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영원했던 자연의 언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무언가 진실하다고 말할 때의 'true'라는 단어는 나무tree, 휴전truce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여기 또 다채로운 '자연의 언어'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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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는 개개의 별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에머슨은 별과 같은 고독 속에서 인류가 하나인 이유를 발견한다. 그는 우리에게 어휘와 은유, 직유를 제공해주는 자연 속에 모든 언어들의 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 p.85 '알리레자 타그다라, <한 방울의 물이 비구름이 된다는 것, 루미부터 에머슨까지>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가 쓰는 말조차도 자연의 것을 사용한다. 위처럼 '자연 속에 모든 언어들의 뿌리가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치유의 가능성을 선물한다. 진절머리나는 삶의 비속어와 오염같은 말에 현기증을 느낄 때는, 언어의 뿌리로 돌아가자. 어휘와 은유, 직유를 제공해준 자연 속에 정화의 답이 있다.


바닷가에서 파도와 포말에 기대어

 

"어릴 적 풍경은 세계에 형상을 부여하고 감정적, 정신적인 근원이 되는 마음의 지리이자 정신의 지도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나에게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성장기를 보냈던 뉴저지 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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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시 숄의 단편 에세이 <바닷가에서 파도와 포말에 기대어>를 읽을 때면, 아직 가본 적도 없는 뉴저지 해안을 떠올렸다. 심지어 구글 검색을 통해 그곳의 지리와 관광지도 파악했다. 여유롭고도 평화로운 뉴저지 해안을 떠올리면 이미 내 몸은 한반도를 벗어난 것이다.

 

 

우리는 늘 세상사를 등지고 물가에 서서 탁 트인 광대하고 신비로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 바다는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고 무한한 것, 다른 것에 대한 비전을 갖게 했다. 물론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경계를 침범했는지도 보여준다. 어렸을 때는 낭만적으로 보였던 것들-잔해가 이룬 길 걷기, 긴 밧줄 사리 같은 먼 난파의 흔적들 발견하기- 이 이제는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를 상기시킨다. 

 

(중략) 그 해변은 나의 정신적 삶의 기틀이 되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고민거리들과 옹졸함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미지의 세계, 늘 우리를 관대함으로 이끄는, 내가 신성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더 큰 생명력에 굴복하기를 원하는 나의 정신적 염원은 바로 이 마음의 지리에서 나온다. 

 

- p.92-93 '벳시 숄, <바닷가에서 파도와 포말에 기대어>

 

 

다시, 뜨개질하듯 밀려오는 파도와 포말에 기대어 끝없는 바다를 회상한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바다여행을 간 적이 있다. 고층건물 숲과 자동차 매연연기의 늪에서 벗어나 2박 3일동안 바다만 바라봤다. 우리는 별다른 관광지를 가지 않고도 숙소에서 떠들고, 바다로 나와 사진을 찍고, 모래알에 우리의 이름을 새겼다. 바다는 우리의 놀이터였고, 우리의 속삭임과 웃음을 다 감싸줬다. 

 

벳시 숄의 말처럼 바다는 절대적인 미지의 세계를 꿈꾸기에 충분한 곳이다. 작은 인간의 생명이 더 큰 생명력에 굴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넘쳐나는 바다. 땅에 사는 인간일지언정 바다의 존재없이는 감히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두 눈으로 바다의 끝없음을 바라보고, 은근히 밀려오는 바다의 짠내를 맡고, 소매를 걷어 바닷물을 철썩철썩 만져보면 알 수 있다. 

 

*

 

랠프 웰도 에머슨은 그의 저서 <자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다". 코로나 19로 급격하게 변화한 지구환경을 실감하는 오늘날, 이기심과 욕심을 잠시 내려두고 자연의 언어와 본질에 다가가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편안하게, 혹은 쉽게 어깨에 들어간 힘이 스스르 풀릴 지도 모른다. 꽉 쥐었던 주먹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도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통해 늘 곁에 있지만 잊기 쉬운 위대한 힘과 경이를 깨닫기를 추천한다. 지금, 자연 속 성찰의 공간으로 우리 스스로를 초대하자.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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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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