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강아지 알레르기

보고싶은 널 추억하며
글 입력 2022.07.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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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을 지나오며 강아지 알레르기가 생겼다.


우리 집에서는 어릴적부터 다양한 생명을 키웠다. 나의 친형은 유독 생명을 기르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 덕에 나 역시 다양한 생명들을 옆에서 보고 만지고 교감하며 자라왔다. 요즘도 많이 기르곤 하는 햄스터나 구피 정도의 물고기 외에도 온갖 열대어와 토끼, 고슴도치, 철갑상어까지 집에서 흔히 기르지 않는 아이들과 많이 함께해봤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요즘에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린 나이에 그 많은 생물에 관심을 가졌던 형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지금도 형 방에는 커다란 어항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던 형이 반대하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반려견을 집에 들이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는데 주된 이유로는 처음에는 예뻐해도 나중에 강아지가 자라고 우리도 크면서 상황이 바뀌면 책임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하나, 어릴적에 강아지를 키웠었는데 한 번 보내주고 나니 다시 기르지 못하겠다는 것 하나. 총 두가지 이유였다. 그때 나는 둘 중 어느쪽에도 공감하지 못했지만 결정권이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따랐다. 강아지랑 놀고싶다는 마음만 간직한 채로.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겼다. 누나가 가족들과 상의도 없이 대뜸 강아지를 안고 왔다. 그 아이가 집에 왔던 첫 날의 그 인형같은 포슬포슬함과 손, 발, 코의 촉감이 기억난다. 얼마 뒤 ‘뿌꾸’라고 이름 붙여진 강아지는 내가 15살부터 같이 살았던 하얀색 말티즈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아 집 안에 강아지 전용으로 경계를 만들어 놓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가 껴안고 있다가 찍힌 사진도 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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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어색하게 걷던 어린시절부터 체력이 남아돌던 청소년기를 지나, 노년에는 기운이 없어 집에 오면 조용히 꼬리만 흔들던 시절까지. 긴 시간을 함께했었다. 두 차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파 물도 못 마시던 시기에도 고구마와 사과만큼은 잘 받아먹었고, 노년에 눈이 멀고서도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는 소리만 나면 뛰쳐나와서 떼를 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다른거에는 반응을 안 하면서 어떻게 사과인걸 알아보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 아이랑 함께 살면서 배운 것이 정말 많았다. 강아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먹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안아야 다리와 몸을 다치지 않는지, 샤워를 시킬때는 어떻게 해야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지, 강아지 코와 눈물을 보고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나도 이 아이같은 마음으로, 이런 삶의 태도로 살고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우리 강아지는 유독 배변훈련이 잘 안 되어서 초반부터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지 나름 찾아봤음에도 강아지는 처음이라 미숙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간식도 줘보고 혼도 내고 볼일 보는 장소에 익숙해지기 좋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 훈련이 어느정도 된 다음에도 꼭 배변패드 끝 부분에 걸쳐서 볼일을 보는 습관이 있어 자주 바닥을 닦아야 했다. 그래도 배변판에 볼일을 잘 보고오면 간식을 준다는걸 알고 간식이 먹고싶을때마다 몇방울씩이라도 쥐어짜서 화장실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달려오는 모습이 어이없으면서 꽤나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런만큼 혼내거나 야단친 적도 많이 있었다. 사람한테 하듯이 배변판과 자기가 실수해놓은 곳을 보여주며 긴 설명을 해보기도 하고, 겁을 주거나 큰소리를 낸 적도 꽤 있었다. 말은 못알아들어도 그 감정만큼은 알아듣는지 혼나고 나면 조금은 시무룩해져서 집에 들어가거나 낑낑대곤 했다.


강아지가 신기한 것은 그런 일이 있어도 얼마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찾아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해준다. 나는 나를 속상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오래오래 담아두고 고통스러워하는데, 몇 년이 지난 일들도 종종 꺼내어 아파하고 몇 개월 전 했던 실수를 되새김질하며 오늘도 이불을 차는데, 꼬리를 흔들며 나한테 달려오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면 왠지 그런 마음과 걱정들이 녹아내렸다. 나도 그렇게 살고싶었다.


내가 자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고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마음을 주고, 자기를 맡기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불안하다. 이런 아이들이 야생에서는 어떻게 살아온거지. 물론 맨날 보는 나보다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을 더 반기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꽤심하긴 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나보다는 나은 구석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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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아지가 많이 아팠던만큼 약을 먹여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자기표현이 얼마나 확실한지 먹고싶은건 먹고 먹기 싫은건 바로 티가 났다. 과일 중에서도 사과나 좋아하는 것들은 냉장고에서 꺼내기만해도 알고 달려오더니, 입에 맞지 않는 과일은 한두번 입에 대보고는 뱉어버린다. 확실한 취향을 가진 녀석이 가끔은 미웠지만 꽤나 멋져보이기도 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친구의 반려견을 구경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추억들을 되짚다보니 더 많이 보고싶다. 답답한지 나가고 싶다고 떼쓰고 창문만 바라보던 녀석이 처음 나간 산책에서 얼음이 되어 한참을 안고 달래줬던 일과 사람 많은 공원에서 사랑을 듬뿍 받던 일의 추억,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에나 겨우 보는데도 인사만 하고 10분만에 방에 들어가버렸던 날의 미안한 감정이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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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쯤부터였나. 반려견이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심지어는 우리 강아지를 안고 있어도 코와 눈이 간지러워 하루종일 휴지를 붙잡고 있기도 하고 목과 두피, 몸 곳곳에 빨갛게 발진이 일어나 간지러움을 참는데 힘을 다 쓰기도 했다.


15살때부터 그렇게 오래 같이 자라면서도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이제와서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건 이상한 일이다. 알레르기가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는 것은 들어봤지만 적잖이 당황스럽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하기 시작하니까 내가 강아지를 멀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누가 만들어주기라도 한 건가. 이제 나는 아마 강아지와 같이 살기는 어려운 몸이 되어버린 듯 하다. ‘뿌꾸‘를 보내주고 난 뒤부터는 장난삼아 내가 책일질 수 있는 생명의 크기는 햄스터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햄스터와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강아지는 정말로 안 될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는 몸이 안 좋아서 간식을 주지 못했다. 사료도 유기농 사료로 몸에 맞는다는 밥만 주도록 노력했었다. 그 아이가 좀 더 오래 우리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너무 많이 아파하고 보내줘야 할 때가 되니 그게 마음속에 얼룩으로 남았다. 맛있는거 좋아하는거 더 많이 줄걸. 더 많이 놀아줄걸. 앞이 안 보이게 되기 전에 산책을 더 많이 나갈걸. 더 많이 안아줄걸. 더 많이.


편의점에 파는 시저 캔 통조림이라고 있는데, 아파서 밥을 못 먹던 와중에도 그 캔을 따서 주면 곧잘 먹었다. 맛있었나보다. 종류별로 다 사서 며칠간 밥을 그걸로만 먹였다. 미리 더 자주 사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동안은 그 캔 포장지만 봐도 눈물이 났다. 지금도 마트에서 시저 통조림 캔을 보면 먼저 고개를 돌린다.


길에서 산책중인 강아지를 만나기만 해도 너무 행복하지만 나는 당분간 강아지는 안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강아지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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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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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연두
    • 강아지 알레르기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게됐는데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껴지는 글이에요. 이런 거 끝까지 잘 안 읽는데 끄덕끄덕 공감하면서 다 읽었습니다. 저도 강아지를 키우는데 참 남 얘기 같지 않아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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