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통 - 스트리트 뮤지엄, 가는 날이 장날 [공간]

글 입력 2022.06.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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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통의 탄생 - 박동훈 대표의 꿈

 

광고회사 [핸즈BTL 미디어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동훈 대표는 한 달 가까이 끌던 골치 아픈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고 모처럼 느긋한 저녁시간을 맞았다.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 텅 빈 사무실, 창밖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주황과 노란색이 섞인 잔을 골라 뜨거운 물을 붓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과 마음이 노곤해지면서 지나온 50년 세월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전기도 없던 경상남도 산청의 산골 마을에서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온 열네 살 소년의 고단한 삶은 스스로 생각해도 드라마나 소설을 쓰고도 남을 정도다. 정규 과정으로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박 대표에게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을지로와 충무로의 인쇄골목이, 애니메이션 하청회사와 찌라시 광고회사가 학교였고 학원이었으며 그 곳의 경력은 졸업장이었다.

 

운도 따랐지만 곤경에 빠질 때마다 주변에는 늘 도와주는 사람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아주 큰 부자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돈 때문에 못하는 그런 경우는 없을 정도가 됐다. 내가 만약 학교를 다녔더라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얼마가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박 대표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래, 여기 을지로와 충무로가 나의 학교였고 나는 학비는 커녕 돈을 벌면서 학교에서 배웠으니 이젠 내가 갚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읽은 지 오래됐지만 기억에 선명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정의도 떠올랐다. 나를 키워주고 성장시키고 대학이 되어 준 이 동네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2013년 사재를 털어 시작한 ‘예술통 프로젝트’가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다.

 

‘예술통’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껴난 도시의 유휴지를 활용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활동인데 요즘 얘기하는 ‘문화예술의 통섭’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울 중구 필동과 남산골 한옥마을 일대를 중심으로 시각과 공연예술, 음식, 학술세미나 등을 아우르는 하드웨어를 구축해 놓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운영소프트웨어도 지원한다. 박동훈 대표는 ‘복합문화예술 공간 ‘예술통’을 통해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져 모두가 주인이 되고 일상이 이벤트가 되는, 지속가능하며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이끄는 작은 불씨가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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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과 4호선 환승역인 충무로역 4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예술통’ 사인물을 볼 수 있다.

 

 

8개의 스트리트 뮤지엄

 

사전 취재를 통해 음악 무용 연주를 위한 홀(코쿤홀), 각종 세미나를 위한 시설(남학당), 요리스튜디오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 목표는 거리에 설치한 ‘스트리트 뮤지엄’ 8개였다. 스트리트 뮤지엄은 중구 필동의 예술통 삼거리와 한옥마을에 설치돼 있는 비영리 전시공간이다. 서울 도심,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자투리 공간에 설치한 미니 미술관으로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작품을 통해 사람들 간에 문화예술을 소재로 소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만들게 됐다고 박 대표는 스트리트 뮤지엄 설치 목적과 의미를 정리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8개 뮤지엄 중 4개는 리모델링 중이거나 전시물 교체 공사로 전시된 작품이 없었다. 하지만 전시작품이 없더라도 스트리트 뮤지엄 그 자체만으로 다양한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이 날 내가 움직인 동선을 따라 뮤지엄 8개를 모두 소개한다. 방문은 지난 6월 7일 약간 흐린 날 오후.

 


우물 Well

 

처음 한옥마을에 스트리트 뮤지엄을 설치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관리책임 당국인 서울시청 문화재과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선례가 없는 건 고사하고 세계 어디에서도 비슷한 유례를 찾을 수 없어 서울시 입장에서도 난감해했다고 박동훈 대표는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표는 특유의 ‘밀어붙이기’로 당시 서울시장을 설득했고 다행히 문화예술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던 서울시장 덕에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서울시 승인을 얻기까지 무용담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은 나온다는 게 박 대표의 얘기가 단순히 허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박 대표가 자란 시골마을은 상수도가 없었다. 동네사람 모두 우물에서 물을 길었고 그 물로 밥을 해 먹고 그 물로 몸을 씻었다. 동네에 있는 우물은 ‘생명수’였다. 그래서일까. 처음 구상한 게 어릴 적 동네사람들이 모이던 우물이라는 게 그냥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옥마을 정문을 통과하면 약간 비탈진 오르막길이 나온다. 오른쪽 길을 택해 계곡을 따라 2분 정도 걸어가면 스트리트 뮤지엄 《우물》이 보인다. 보통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벽에 걸린 액자를 생각하지만 《우물》은 전통적인 우리나라 우물을 모티프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을 연출한다.

 

형태도 ‘우물 정(井)’자로 우물 안 전시작품과 함께 우물에 비치는 하늘의 색깔과 구름을 겹쳐서 감상할 수 있다. 한옥마을 관람객들이 모두 돌아간 밤이 되면 우물 속 작품 위에 달과 별이 함께 빠져서 어울려 노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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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이음 Connect

 

처음에 반대하던 서울시청 담당자들도 첫 번째 뮤지엄 《우물》에 대한 관람객들의 좋은 반응이 이어지자 두 번째 뮤지엄을 설치하는 건 머뭇거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행정적으로는.

 

《우물》을 지나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조금 더 올라가면 비탈길에 선 단정한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스트리트 뮤지엄 《이음》이다. 우리말 ‘잇다’는 다용도 접착제와 성격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자연도 이어준다. 도심 한복판에서 현대문명과 전통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 작품과 관람객도 이어준다.

 

우리말 ‘이음’은 어떤 것을 이어도 어색하지 않다. 갤러리는 기와, 서까래를 모티프로 한옥과 어울리는 소재로 만들었다. 가로 10m, 세로 3m에 이르는 전시 공간은 웬만한 대형 작품도 소화할 수 있는 넉넉한 크기다. 이 날 전시된 작품은 우종일 작가의 《조선의 여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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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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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내부) : 우종일/조선의 여인들

 

 

골목길 Alley

 

뮤지엄 ‘이음’에서 나와 한옥마을 제일 윗쪽 한옥마을 후문까지 올라가면 ‘골목길’이 나온다. 진짜 골목길이 아니라 ‘스트리트 뮤지엄 《골목길》이다. 사전적으로 골목길은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을 뜻한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 땐 몰랐는데 다 크고 나서 그곳을 찾았을 때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던 경험은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골목길에서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세상을 봤으며 골목길 바깥 세상을 꿈꿨었다.

 

아마도 뮤지엄 《골목길》은 어릴 때 꿈꾸던 자유로운 세상을 상상한 것이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벽과 천정이 정각과 정방형을 이루지 않고 제각각 다른 각으로 설계돼 언뜻 보기엔 원칙과 질서가 무너진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시간을 갖고 찬찬이 살펴보면 ‘불균형의 조화로움’이라는 형용모순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선입견 없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가져야만 생각해낼 수 있는 자유분방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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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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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벽 Wall

 

벽은 집이나 방을 빙 둘러가며 막은 구조물을 뜻한다. 벽과 비교되는 담은 집의 둘레나 일정한 공간을 막기 위해 흙, 벽돌 등을 쌓아 올린 것인데 일상생활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지붕이 있는 건 벽, 지붕 없이 뚫려 있으면 담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쓰임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라톤에서 ‘2시간의 벽’ ‘조직과 조직 간의 벽’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나 장애, 관계나 교류의 단절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도 ‘벽’을 쓴다. 이 때 ‘벽’ 대신 ‘담’을 쓰면 말이 안 되거나 아주 이상한 표현이 된다.

 

한옥마을 정문을 나오면 왼쪽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공영주차장 끄트머리에 가정집과 맞닿아 있는 곳에 조금 이상한 형태의 조형물이 눈에 띄는데 스트리트 뮤지엄 《벽》이다. 박동훈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면 뮤지엄 《벽》을 만들 때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벽》과 맞닿아 있는 가정집에서 일조권을 가린다는 이유로 뮤지엄 설치를 반대했었다. 오랜 실랑이 끝에 뮤지엄의 지붕을 경사지게 설계해 일조권과 경관을 가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설치에 합의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뮤지엄의 이름을 ‘벽’으로 지은 게 아닌가 짐작하는데 내 생각일 뿐이다. 전시된 건 한성필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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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 경사진 지붕은 설치 과정에서의 사연을 담고 있다

 

 

모퉁이 Corner

 

한옥마을에서 들어가든 충무로역 쪽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든 만나는 지점은 예술통삼거리다. 삼거리를 중심으로 핸즈BTL 사옥과 남학당, 코쿤홀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한옥마을 쪽에서 올라오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 코쿤홀로 돌아가는 모퉁이에 스트리트 뮤지엄 《모퉁이》가 있다. 아쉽게도 리모델링 중인 데다 자재들이 앞에 잔뜩 쌓여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가리고 있는 지저분한 것들을 대충 치우고 좁은 공간에서 손을 뻗어 찍었지만 사진만 보고 《모퉁이》를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작품 교체를 위한 이 시간과 모습도 뮤지엄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그대로 남겼다.

 

모퉁이는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 또는 ‘변두리나 구석진 곳’을 뜻한다. 《모퉁이》에는 어떤 작품이 어울릴까 상상해봤다. 노라 에프런 감독의 유명한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어린이 서적 전문인 모퉁이서점이나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 《모퉁이》처럼 모퉁이는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난’ ‘후미진’ ‘뒤처진’ 같은 느낌을 담고 있다.

 

두 영화에 등장하는 서점과 모퉁이 분식집의 상징을 모두 ‘Coner’로 번역하니까 너무 단순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 ‘모퉁이’가 가진 뉘앙스는 모퉁이를 돌아가는 누군가와 관계의 소멸, 대화의 단절, 시간의 끊어짐 같은 것이 연상되는데 예술통의 스트리트 뮤지엄 《모퉁이》에 전시될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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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모퉁이

 

 

사변삼각 Space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

 

보통 변과 각의 개수는 같다. 변이 세 개면 삼각형, 네 개면 사각형, 여덟 개면 팔각형. 그러니 사변삼각은 모순이다. 변이 네 개인데 이루는 각은 세 개. 예술통 삼거리에서 남산으로 향하는 도로 쪽으로 올라가다가 왼쪽 축대에 설치된 게 스트리트 뮤지엄 《사변삼각》이다.

 

비탈이라는 지형적인 특성과 멀리서 보고 가상의 선을 눈으로 이어보면 마치 소실점처럼 보이는 신비스러운 시각이미지를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아쉬운 점은 하필 뮤지엄을 막고 주차돼 있는 트럭 때문에 사변삼각의 모습을 앵글에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시된 작품은 서양화가 강형구 작가의 〈자화상〉이다. 사람의 얼굴은 각기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이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제 1의 요소라는 작품 설명을 읽으니 작가의 얼굴만 크게 클로즈업한 의도가 이해가 됐다.

 

자화상의 다양한 의미 중에서 이 작품은 붉은색 바탕을 통해 자화상 속의 작가가 자신을 응시하며 마치 화를 내는 듯한 일종의 Red Card로서 ‘자신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게 이 작품의 메시지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더 무섭게 바라보는 두 눈의 경고를 잊지 않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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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삼각 : 강형구 〈자화상〉

 

 

둥지 Nest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껶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중략)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지은 집은 약한 바람에도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만약 그런 집에서 새들이 알을 낳는다면 알이 땅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새끼가 태어난다면 새끼 또한 떨어져 다치거나 죽고 말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칼럼에서 본 글이다. 새들이 나무에 집을 짓는 걸 보면 경이 그 자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높은 나뭇가지 위에, 그것도 층층이 ‘다세대주택’처럼 지어 놓은 둥지를 보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 나무 또한 아름답다. 새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나무에 지을 수 있어서 좋고 나무는 새의 집 때문에 자신들이 돋보여서 좋다. 사랑과 배려가 조화를 이룬 이타적인 삶이다.

 

박동훈 대표는 스트리트 뮤지엄 《둥지》를 지을 때 제일 이상적인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잘 말리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리벳 하나하나 촘촘히 조여 지었다고 했다. 나뭇가지는 고향 산청의 마을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렵게 공수했다. 대충해도 뭐랄 사람 없는데 그만큼 정성을 쏟았다고 했다. 자신과 자신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들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새들이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 것은 인간이 집을 지을 때 땅을 깊게 파는 것과 같다. 집의 높이에 따라 파는 땅의 깊이는 달라진다. 땅 파기가 힘들다고 해서 얕게 파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현재의 조건이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미래의 조건이 좋아질 리 없다. 박 대표는 본능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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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컨테이너 Container

 

‘컨테이너’ 하면 부두가에 정박한 거대한 화물선과 엄청나게 높은 타워크레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국제무역에서 선박 운송의 상징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컨테이너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선적과 하적 같은 하역작업을 모두 사람의 손으로 직접 했다. 그래서 ‘부두노동자’는 한 때 인원 수도 많았고 또 이들이 한번 파업하면 모든 물동이 마비되는 만큼 세력도 대단했었다.

 

컨테이너의 역사가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놀란 적이 있다. 현재와 같은 컨테이너 방식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라고 하니 기껏해야 60년 정도다. 다양한 종류의 컨테이너가 있지만 충무로역 4번 출구 입구에 설치된 스트리트 뮤지엄 《컨테이너》는 20피트 짜리 드라이 컨테이너다.

 

누군가 하역작업 도중에 도로변에 잠시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컨테이너처럼 툭 만나는 미술관, 바쁜 일상 속 잰걸음으로 걷던 길을 잠시 멈추고 호흡을 고르며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며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차도와 맞붙은 인도 한쪽에 놓여 있어 덩치는 크지만 유심히 보지 않으면 컨테이너라고 인식할 수 없게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컨테이너 한쪽 면을 파내고 투명 유리로 진열장을 만들고 안에 전시된 작품을 상상하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볼거리일 것 같다,고 상상해 본다. 왜 상상만 하냐면, 이 날 전시작품 교체를 위한 작업 중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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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예술통 8개의 스트리트 뮤지엄을 순식간에 다 돌았다. 도심 거리의 자투리 공간에 설치한 규모가 크지 않은 전시관이지만 8개의 뮤지엄은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었고 어느 것 하나 쉬운 공사가 없었다. 한두 평 남짓 공간이지만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는 물론 자연광 차단, 조도, 보안, 작품 설명 등 다양한 조건들은 여느 미술관과 다름없는 전문성이 필요했다. 차라리 미술관이라면 제대로 지어진 건물 안에서 보호받으며 설치됐겠지만 혹한과 혹서기를 비롯해 4계절을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스트리스 뮤지엄은 모든 조건이 열악했다.

 

뮤지엄을 공사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작가를 섭외하고 작품을 참여시키기 위한 건 스트리트 뮤지엄 공사와는 또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어렵게 작가를 설득해 작품을 받아도 보는 이들이 워낙 다양하고 많은 만큼 작품 교체 요청 등 스트리트 뮤지엄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도 만만치 않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스트리트 뮤지엄 때문에 전시작품 보호를 위한 보험상품이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것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라고 박동훈 대표는 지난 10년을 회상한다. 예술통에 존재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툭’ 하고 건들면 고구마줄기처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모두 옮길 수 없는 아쉬움이 컸다. 스트리트 뮤지엄 말고도 재미있는 얘기가 많지만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다음 기회로 미뤄두고 오늘 예술통 투어는 여기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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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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