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자극 세상 속에서 개복치로 살아남는 법 [사람]

예민함의 생존일기
글 입력 2022.06.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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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너가 정말 예술을 해야 해.”

 

그래 그러니까 미술을 공부하는 예술가도, 음악을 작업하는 아티스트도 아닌, 예술에는 완전 문외한인 내가 지난 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또 다시 평범하고 뻔하게 대학생이 되어버린 나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인데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거지?

 

심지어 그 말을 뱉고 있는 당사자야 말로 학창시절부터 미술을 공부해 미대에 재학하고 있는 친구였기에 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은 예술적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를 뽐내는 게 아니야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 세상에 말을 거는 게 예술이지”

 

아, 그 덧붙인 설명을 듣고 나서야 사랑하는 친구가 나에게 말한 말의 의중을 알아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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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가슴 속에 넘쳐흐르는 말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왔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뭐가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순간 감정과잉 상태였던 듯 싶다. 말 그대로 이미 턱 끝까지 차오른 감정들과 말들이 가슴에 울렁거려서 조그만 자극에도 그 것들이 넘치고 토할 것 같아 숨을 쉬기가 힘들었던 순간들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들로, 학창시절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친 직후에는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업 대신 영화나 다큐 같은 영상을 왕왕 틀어주시곤 했었다. 그 해 역시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여름이었고,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들어오신 사회선생님께서는 수업에 파업한 반 친구들과의 귀여운 언쟁에서 말리셔서 방송사에서 제작했던 전쟁 고아에 관한 한 다큐멘터리를 틀어주셨는데, 겨우 남은 수업시간 (3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동안 본 영상에 마음이 무거워진 나는 결국 그 날 점심급식도 거르고 하교 후에는 국제기부단체에 관해 밤새도록 인터넷 서핑을 하다 꼴딱 날을 새어 버린 것이다.

 

또 이번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 나를 놀리는데 회자되는 일화인데, 동아리 선배들의 졸업식날의 이야기이다.

 

이미 전날 애정하는 선배들에게 진심을 눌러담은 손편지를 각각 두세장씩 쓰다가 몇시간동안 내리 울어서 나만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참여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졸업식이 진행되는 내내 졸업생 중 그 누구도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았는데, 당사자도 아닌 한 학년 아래 후배였던 내가 정작 선배들의 옷자락을 쥐고 엉엉 오열하는 유일한 학생이었고 결국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의 부모님이 오히려 날 안아서 달래주실 정도였으니.. (부끄럽지만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19살이었다) 얼마나 유난이었는지 짐작이 갈까.

 

더 골때리는 일화도 여즉 남아있다. 초등학생 무렵, 어린 마음에 지하철에 탄 할머님을 보고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조금 우습지만 ‘난..행복하면 안돼.. 별로인 사람이니까’ 따위의 웃픈 자학을 1년 내내 한 적도 있다. 정말 행복할때마다 불행해야 한다고 되뇌이는 초등학생이었던 것이다.

 

뭐 백번 양보해 이런 일화들은 귀여운 일화로 취급한다 하더라도, 차마 전체공개에 털어놓지 못하는 유난하게 우울하고 예민한 일상이 다분한 인생이었다.

 

누군가 조금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심지어 그 대상이 내가 아니어도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던 적도 많고,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싸움이 태반인 학창시절엔 특히 주변사람들을 자주 지치게 만들기도, 스스로는 늘 지치고 아프게 했던 것 같다.

 

물론 인간관계 난이도 최상이라고 불리는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련을 뚝뚝 흘리고 다니면서 겁은 또 한아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첫사랑을 시작한 이래로 사랑의 기억은 늘 쓰고 아팠다.

 

지나치게 좋아했고 지나치게 겁을 냈으며 모양 빠지게 도망치면서 후회했고 모든 걸 알면서도 또 유난하게 놓지 못했다.

 

하다못해 친구들은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한 달에 한 번씩 애인을 바꾸기도 하고 좋아 죽겠다던 사랑을 잊는 것도 순식간이던데, 역시나 난 한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아무도 사랑의 결실을 응원하진 않는 전형적인 드라마 속 서브주인공처럼 썩고 낡은 사랑만 하는 사람으로 커버리고 말았다.

 

실은 구체적인 이유가 없이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사람 속에 있다가도, 하염없이 세상에 발가벗겨 내팽겨쳐진 기분을 느끼며 쉬는 숨 한 숨마다 모든 것을 버거워 하곤 했다.

 

남들은 몇 십분 길게는 몇 시간 뾰루퉁하다 잊어버릴 일을, 몇 주 가끔은 정말 몇 년을 끙끙 끌고가다 그렇게 쌓인 마음들이 임계치를 넘는 날엔 앓아 누워 며칠씩 아프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자아에 대해 인식하고 고민하게 된 사춘기 시절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어딘가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지나치게 진하고 무겁다는 느낌을 늘상 껴안고 살아 올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런 개복치 같은 내가, 이런 고자극의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1인분의 밥값을 하기 위해서는, 즉 유난 떠는 것을 싫어하는 보통의 어른인 척 가면을 쓰기 위해서는, 더 이상 참지 말고 어딘가에 이 거지같은 심정들을 풀어놔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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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 그러니까 독자를 기대하는 작가가 아니라 숨을 잘 쉬고 살아가기 위해 내 마음의 쓰레기들을 글로 쏟아 붓는 사람. 이라는 표현이 나에겐 적절한 듯 싶다.

 

하루에도 수편의 일기를 적고, 상처를 받은 마음들,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자극을 느끼게 만든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틈만 나면 생각을 쏟아냈다. 핸드폰 속 메모장, 블로그, 비밀계정, 작은 수첩, 원래 쓰던 일기장.. 등등 그 순간 순간마다 비틀린 숨통을 트여줄 창구는 다행히도 많았다.

 

그렇게 과하고 진한 감정을 덜어내고 나면 그제서야 보통의 어른들처럼 적절하게 일상을 굴릴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예민하고 버거운 내 기질과 세상 사이에서 적절한 템포로 호흡하는 법을 익혀나갔다.

   

그래서인지 덜어낸 감정만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나를 본 지인들은, 특히 학창시절이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에 날 만난 사람들은, 평소 나의 행실이나 성격과는 다른 날 것의 감정을 쏟아낸 글들을 보면 내가 쓴 글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그 말은 어느 순간부터 온전한 내 모습이 드러나는 건 오직 내 글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내가 쓴 글들이 쌓여가고, 스스로도 조금은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마음 한구석에선 진짜 나를 온전히 드러낸 이 글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 같다.

 

무던히도 힘들고 외로웠던 내 지난시간들과 비슷한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도망쳤던  출구를 알려주고 싶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더는 이 글들이 한 철 나만의 감정배설물 따위로 남아있지 않길 바랬다.

   

예민한 만큼 섬세하고, 그렇기에 더 많은걸 보고 느끼고 꼬집을 수 있는 내가, 세상에 대해 풀어낸 의문들과 감정들을 나 이외의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길. 과한 게 아니라 보다 많은 걸 지나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더는 숨지 말고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말을 걸기 위해 글을 쓰길 바라게 되었다.

   

그래 이젠 그게 개복치인 내가 이 고자극 세상 속에서 나로써 살아 갈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그 첫 번째 발 걸음이다.

   

 

[박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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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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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히
    • 너무 공감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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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금옥
    • 박유정에디터 같은 분들이 많은 세상이 따뜻한 세상이죠..응원합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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