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과 기억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6.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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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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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이 거대하고 당혹스러워 도리어 언급하길 꺼리는 상황을 뜻하는 관용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코끼리’는 금기시되는 이슈를 뜻하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의 현대미술이 다루는 주제와 일치한다. 결국 <코끼리의 방>은 코끼리, 즉 이슈가 위치하는 ‘공간’을 다루는 책이라는 것을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공간은 포스트모던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관람자의 공간 체험은 미술에서의 주체를 “작가”에서 “관람자”로 옮겨가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관람자 주체는 공간을 ‘기억’하게 되는 데, 기억은 시간에 따른 개념적 과정으로, 주체는 특정 공간에 현재할 때 소환된 과거를 느끼며 독특한 공간 감각을 느끼게된다.

 

때로 우리가 기억과 연관된 장소에 되돌아간다면, 그 공간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빈 공간일지라도 결코 빈 공간이 아니다. 기억으로 가득한 삶의 창고이자, 과거와 현재가 교체되는 삶의 플랫폼이다. 그리고 공간에서의 기억은 주체의 감정에 동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공간 미술은 이렇듯 언어적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소와 연관된 주체의 감성을 훨씬 근본적이고 관계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인의 작가들은 모두 공간이 갖는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관람자는 그들의 건축적 설치 작품을 몸으로 느끼고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생각하는 작가들이다.


 


공간과 기억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변화하고 사라진다. 남는 것은 기억 뿐이다. 여행을 가면 우리는 쉴틈없이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막상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광경을 몸으로 느낄 기회를 놓치고, 훗날 눈으로 확 인하는 사진에 의존하곤 한다.

 

우리가 이렇게 사진에 기대는 것은 스스로의 기억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떠올리는 주체의 기억은 불안정하다. 오늘날 기억의 가변성과 주관성은 주체에 대한 포스트모던 이론과의 연관성 속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때 주체의 기억이 지각과 맞물려 연결되는 장은 바로 공간이다.

 

공간에서 서로 만나는 지각과 기억은 시간의 연속선상에 놓이게 되고, 그때 비로소 주체는 공간을 온전히 체화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지각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정확하고 선명하지 않다. 부정확하고, 갈수록 변질되고, 심지어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

 

주체의 지각이 기억으로 전이되는 공간에 대해 미술이 주목한 것은 1960년대 포스트모던 시기부터이다. ‘공간 지각’을 가장 집중적으로 탐색한 것은 바로 미니멀리즘이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보 기에 주체의 공간 지각이란 시각을 넘어서고 언어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주체의 신체적 체험은 말보다 근본적이라 여겼다. 이는 언어중심적이고 시각중심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이자 도전이 었다. 포스트모던 미학은 시각을 넘어선 확장된 지각을 추구했고, 이는 공간에 대한 신체 감각의 탐구를 불러일으켰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장소 특정적 미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여러 작가들은 이 프로젝트가 모더니즘의 ‘자율성’에 대한 저항이 될 것이라 믿었다. 장소 특정적 작업은 이전 모더니즘 조각이 장소와 분 리돼 작품의 자율성을 강조한 것과 반대로, 특정 장소가 지닌 역사적, 사회 문화적 배경과 직결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포스트모던 미술 또한 자기모순에 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장소 특정적 작업 또한 일회성과 접근의 어려움에 따라 신비화가 진행되면서 모더니즘의 ‘신화(Myth)’와 다름없는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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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기울어진 호 Tilted Arc>2

 


예컨데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1981)가 논란 끝에 철거되던 당시, 세라는 작품을 설치한 장소에서 철수하는 것은 작품의 파괴와 같다고 반박하였다. 작품의 장소 특정적 정체성을 표방한 것이다.

 

작품은 이제 소멸되었지만, 그것이 설치되었던 연방 플라자에는 그 아우라가 남아있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이처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 작품이 설치된 장소는 고유한 것이며,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는 것이다.

 

*

 

오늘날 현대미술은 문화적 만남과 차이에 주목한다. 이 책은 여러 도시들의 공간에 개입하는 미술작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세계 곳곳 도시들을 여행하지만, 여행의 끝자락에 서서는 언제나 귀환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온전한 여행 주체라면 장소에 체험적으로 관여하면서도 그와 적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특정 장소에 천착하지 않으면서 분리되지도 않는 여행 주체가 되기 위해선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장소나 공간으로 매몰되지 않고 작가 중심의 주체로의 귀환을 피할 수 있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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