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자람의 자람을 거울로 삼아 - 도서 '오늘도 자람'

글 입력 2022.05.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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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소리꾼과 밴드의 보컬리스트 활동을 같이 하는 것, 심지어 그 둘 다 멋들어지게 행하는 것에 대해 늘 잔잔하게 호기심이 차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길래 저 두 가지 일을 다 하게 되었나, 어떤 예술가이기에 두 가지 다 멋있게 해내는가. 저런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창작과 수련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할까, 내지는 어떤 기쁨을 느낄까. 이런 것들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문화초대 메시지에 「오늘도 자람」이 뜬 순간 고민 않고 이 책을 신청했더랬다.

저자 소개글에 따르면 이자람은 공연예술가, 소리꾼, 뮤지션, 음악 감독, 배우, 작창가, 작가 등으로 불린다. 다섯 살 때 <내 이름 (예솔아!)>이라는 국민 히트곡으로 유명해졌으나 어릴 적의 유명세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고, ‘예솔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음악적으로나 삶의 태도에 있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다. 판소리는 이자람이 ‘예솔이’라는 정체성을 뛰어넘게 해 준 것은 물론 평생의 단련 대상이자 자아실현의 소중한 장이다. 그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공연 「사천가」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세계 유수의 극장들에서 직접 작창한 창작 판소리 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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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의 에세이를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나는 수련하는 삶을 동경한다. 인간 이자람에 대해 읽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주의 깊게 몰입하여 읽은 부분은 그가 언급한 자신의 연습과 공연 진행 과정의 소회를 다룬 장들이었다. 평생의 사랑하는 마음을 사로잡은 예술-그것이 음악이건, 그림이건, 사진이건, 무용이건, 다른 융합적인 예술이건 간에-과 호흡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한 자락 만들어나가며 지속적이고 민감하게 자신을 파악하는 일.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나와 연습하는 나, 내가 해 온 것을 돌아보는 나 사이의 균형 잡기. 그런 일들이 업이 되길 꿈꾸고, 쓸쓸하되 비옥한 고독의 감각을 아끼고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도 자람」에는 수련하는 삶의 꾸준함과 기민함, 창작하는 삶의 균형 잡기에 대한 노력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이자람에게 연습이란 ‘목의 근육과 판소리 테크닉을 훈련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생각과 마음을 키우는 일이다.’ (p. 28)

 
‘연습의 효과는 연습 시간 동안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발견할 때 얻어진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기술과 신체 컨디션, 특정한 부분에 재미를 느끼는 나의 흥미,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망 등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주로 연습 시간 안에 왕왕 발생한다. 그런 순간들을 만나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다른 잡념이 들어올 여지는 차단해두고 내 몸과 정신을 좀 지루하게 연습 속으로 던져야 한다. 그렇게 쓸쓸함 속에서 홀로 지루함을 견디다 보면, 그때부터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이러한 반복과 발견 속에서 얻어지는 기술 향상과 신체 훈련은 연습이 다져주는 내 판소리의 주춧돌이다.’ (pp. 28-29)
 
 
나는 이런 몰입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나 역시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이야기 짓기 등을 통해 내 마음의 모습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의 이면을 들여다보거나 복잡한 생각 속에서 내가 바라는 바를 캐내고 씻어내 그것의 모양새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서사가 있는 글을 쓸 때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때 풍경 묘사에 빗대는 걸 좋아하는 등 나만의 글쓰기 버릇이나 선호하는 표현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영감을 느끼고 자기만의 기술을 수련하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수많은 ‘나’들과 조우하는 것. 내 심신의 형태를 예술과의 교감을 통해 알아가는 것. 그리고 내부, 외부의 자극을 흡수 혹은 반사하길 반복하며 ‘나’의 외연을 키우거나 내 모양새를 다듬어 내는 것. 그것을 삶으로 삼고 싶기에 이자람의 다음 말이 참 멋있었다.
 
 
‘미래에 내게 바라기는, 딴청을 오래 피워도 좋으니 결국은 다시 귀마개를 꽂고 방에 들어가서 지난하게 연습하기를 멈추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달라지는 내 신체와 마음과 기술과 욕망을 잘 맞이하고 싶다.’ (p. 35)
 
 
물론 이자람의 소리꾼 생활에 자기 발견, 자아실현의 기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언급했듯이 그런 감각을 느끼려면 일정 시간 이상 자신을 연습에 빠트려야 한다. 그리고 연습실에 들어가기까지 연습 시작을 미루고 싶은 마음, 연습이 잘되지 않는 날의 심적 고난도 책에 종종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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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그가 갈고닦는 기술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직업병이 있다. 그는 판소리의 큰 발성 때문에 귀에 이명과 버즈 사운드가 들린다고 한다. 퓨전 판소리 공연이긴 하지만 이날치 공연으로 처음 판소리 공연을 접했을 때 맨 앞자리도 아닌데 다섯 명의 소리꾼이 노래를 부를 때 말 그대로 고막의 진동이 파르르 느껴지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듣는 내가 그랬는데 직접 몸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꾼의 귀가 영향을 안 받을 리가 없다.

어디 귀만 그런가. 새로운 마당의 판소리 완창을 하고 나거나 평소보다 무리를 한다면 소리꾼들은 ‘소리앓이’를 한다고 한다. 소리앓이란 ‘판소리 발성이 인간의 기본 발성보다 훨씬 커야 하기에 소리를 하고 나면 온몸에 몸살이 난 듯 앓이를 한다고 해서 예로부터 쓰이는 말이다.’(p. 43) 작가 이자람도 새로운 판소리 마당을 완창한 이후 긴장을 풀고 술을 마셨다가 한 해 가까이 온몸으로 소리앓이를 했다고 한다. 일 년이 넘어갈 수 있는 통증이라니,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통증을 완화할 방법은 그저 잘 먹고 잘 자면서 시간을 잘 보내는 것뿐’이라고 한다.(p. 43)

소리앓이란 이 책에서 처음 접한 단어였는데, 이후 설명을 읽다 보니 어렴풋이 알던 개념이긴 했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옛날에 소위 목을 갈아서 소리를 배우고 그걸 낫게 하기 위해 맑게 만든 똥물을 먹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이것도 소리앓이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참고로 작가가 말하길 이는 환경 호르몬이 없던 아주 옛날에나 가능하던 방식이고 지금은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고 한다)

고수가 쳐주는 장단을 제외하면 해설과 수많은 인물의 소리와 연기, 극의 진행 모두 소리꾼이 이끌고 가야 할 몫이다. 판소리라는 장르의 특성상 공연 시간도 길다. 공연장마다 맨 뒤 객석까지 ‘소리와 말과 에너지가 저 끝까지 잘 가닿는지’ 계산하여 소리하는 이도 소리꾼이다.(p. 57) 그래서 체력이 달리는 경우도 있다. 체력이 달릴 때 소리꾼은 부채의 뾰족한 손잡이를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아프게 잡아 체력(사실 정신력이 아닌가 싶다)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작가는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모든 소리꾼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체력과 소리와 싸운다. 으, 이런 예술이 만들어져도 되는 거였을까.’ (p. 45)
 
 
그럼에도 그는 판소리를 사랑하며 30년간 소리 연습을 반복해왔다. 예술가로서는 물론, 인간 이자람의 가치관 때문에도 그렇다. 건강, 사람, 기술. 인간 이자람 삶의 세 가지 토대이자 그가 소중히 일궈나가려는 것들이다.

 
‘매일의 연습은 다르고, 그 다름이 축적되어 내가 된다.’ (p. 32)
 

소리 연습을 통해 그날의 컨디션, 자신 안의 생각을 발견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일의 조금씩 다른 연습이 곧 자신이 된다는 말에서 연습에 대한 그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사람에 대해서 이자람은 반은 자신이 만들지만 나머지 반은 타인이 만들어가는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중간과 타인의 한중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한중간을 잘 알고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현명하고 단단한 건강관을 갖고 있다.

 
‘뒤늦게 알았다. 내 몸을 아끼는 것은 나 자신의 의무일 뿐 다른 누가 챙겨주는 영역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 내게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행동해야 할 주체는 나뿐이다. (...) 이제는 나의 한계치와 소멸점을 예민하게 감각한다. 우리 모두는 한계가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 내게 해를 가하는 한계점에서는 깨끗이 포기하고 뒤돌아서기를 스스로에게 원한다.’ (p. 82)
 
  
그가 말하길, 몸의 건강은 결국 마음의 건강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마음을 잘 돌보고 다스리는 일이 앞선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은 작은 일에도 반응하며 자기 상태를 알려주는 ‘자기만의 팅커벨’이다. 팅커벨은 말이 없지만 직감으로, 신체적으로 반응해 오는 감정에 대해 이자람이 한 비유이다. 이 말 없지만 반응이 풍부한 작은 요정은 우리와 매일매일을 함께 한다. 그래서 매일의 축적이 몸과 마음 건강에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히 쌓이는 거의 힘, 그것의 강함과 무서움을 안다.’ (p. 97)
 

그리고 일상의 축적은 결국 인생을 만든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사건 때문에, 어떤 순간의 결정 때문에 인생이 뒤바뀌고 사람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그 순간이 너무 강력하니까. 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실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인,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p. 99)
 

결국 순간순간을 소중히 살고 나를 귀하게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이자람은 자신을 대접하는 행위로 잘 먹는 것을 언급한다. 그러니까 (되도록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이다. 대충 먹다가 매 끼니 그에 어울리는 그릇 하나 골라 세심히 담아 먹어 본 시기가 있어 깊게 공감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인데, 이렇게 자신에게 공을 들여주는 일이 바쁜 탓에 자신을 잊기 쉬운 환경에서는 참 중요하고도 효과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무엇이 축적되고 있는지 알고 쌓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채 쌓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평생 몸을 다스리고 기술을 연마하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지키려 애를 쓴다. 누군가는 포기를 쌓아가고 의심을 늘려가고 획득된 확신 위에서 편협한 경우의 수를 쌓으며 인간 불신을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p. 100)
 

위 인용문의 두 번째 문장이야말로 내가 평생에 걸쳐 하고 싶은 일이다. 저런 수양으로 나 자신만 좋은 게 아니라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만 같다. 반면 지금의 나는 혹 그다음 문장처럼 살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동경하는 삶을 이미 직접 30년 이상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이자람의 글을 읽으며 꿈을 꾸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했으나,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현재의 내게 새로운 인사이트가 되어 준 다음 문단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둔해서 기회가 기회인 줄도 모르고 살아갈까 봐 늘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기회’들을 스쳐지나 보낸 지금은 안다. 어떤 일이든 내가 만들면 기회인 거고 기회인 줄 알았는데 싱겁게 지나가면 그냥 내 것이 아닌 해프닝일 뿐이다. 기회는 끊임없이 내 안에서 발생해 내 손으로 확실해진다. 인생은 죽기 전까지 내게 기회를 주려고 애를 쓸 것이고 그럼 나는 날아오는 수많은 기회들을 그때그때 컨디션 따라 날아오는 피구공 잡듯이 배구 스파이크하듯이 축구 골 넣듯이 농구 덩크슛하듯이 받아내고 되치며 뚜벅뚜벅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말이다.’ (pp. 179-180)
 

뭔가에 도전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 혹은 무슨 일을 맞이했을 때 이것이 내 인생의 기회일까 아닐까 불안해하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이제는 익숙한 불안함 대신 위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 왠지 나는 이 대목에서 에세이의 프롤로그에 밑줄 친 문장들이 떠올랐다. 작가 본인이 읽은 여러 책과 문장에서 도움을 받았듯 자신이 쓴 글도 누군가에게 한 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내게도 같은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일련의 글이 있다. 몇 개월간 연재 중지를 했다가, 다시 머리를 싸매고 연재를 했다가, 업로드 기간이 슬슬 길어지고 있는 그런 글이다. 인생이 계속 기회를 줄 거라는 말에 프롤로그의 말과 함께 그 글이 떠오른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스릴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결국 그 글을 완결 짓는 것이어서가 아닐까.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 묵묵히 써나가야겠다. 내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법 중에 세상에 갚고 싶은 일 하나 매듭짓는 것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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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영향으로 보이는, 내 눈에 퍽 참신했던 말맛 있는 표현들과 판소리에 대해 잘 몰랐던 지식들 –예를 들어 판소리 용어로 ‘소리속을 안다’거나 ‘이면을 잘 살린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등등-이 배어 있는 문장들. 그 새로움 사이에서 헤엄치는 독자가 되어 평소 관심 가지고 있던 예술가의 인생담, 예술관을 듣는 경험은 즐거웠다. 인생 선배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내 삶을 돌아봄과 함께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먼저 걸어간 이의 길 위에 놓인 이정표들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자람의 문장은 예술과 얽힌 세상살이에 목말라 있는 인생의 후배 독자 한 명에게 거울이 되어주었고, 도움이 되어주었고, 그의 삶을 통해 빚어낸 통찰을 전해줬다. 하여 이후로도 종종 펼쳐보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두었으니. 예술과 함께하는 삶이 너무 먹먹하게 느껴질 때, 밑줄 친 문장들과 처음 읽으며 남겨놓은 메모들을 되새겨보아야겠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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