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전히 사랑하려 하는 도시, 파리 13구에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려는 청춘들, 영화 파리 13구
글 입력 2022.05.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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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단어는 가슴을 뛰게 만든다. 도시는 기이한 공간이다. 도시는 꽉 차 있는 동시에 텅 비어있다. 빠르고 빈틈없어 보이는 도시 속 문득 스치듯 보이는 공허는 그 도시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 “파리 13구”는 도시 같은 현대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복잡한 관계와 감정들을 흑백 화면이라는 탁월한 선택을 통해 가장 단순하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여전히 사랑하는 도시, 파리 13구”라는 영화의 홍보 문구 그대로,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파리 13구”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가진 영화다. 타이트한 인트로 사운드와 흑백 화면을 통해 보이는 도시 건물들의 줌인과 다른 숏으로 전환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단번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파리 13구”의 오프닝 시퀀스는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의 사운드는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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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파리는 사랑해야 할 것만 같은 도시다. 파리에 가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나에게 파리는 사랑의 동의어였다. 정작 파리에 가 본 적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소설에서는 항상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일 거다. ㅡ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 이들이 ㅡ 영화 “파리 13구”에는 사랑하는, 아니 사랑하고 싶은 네 청춘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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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는 “파리 13구”에서 가장 자신의 공허함에 직설적으로 충실한 인물이다. 에밀리의 공허함은 육체로 직결된다. 프랑스 병원에 입원한 치매 할머니를 둔 중국인 에밀리는 파리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다. 어디선가 채우려 할수록 공허는 커진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온기가 필요하다. 사실 인간이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와 같은 따뜻함을 다시 찾기 위함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에밀리는 따뜻함을 필사적으로 찾으려 한다.


잠시 에밀리의 동거인으로 함께했던 카미유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카미유는 소위 말하는 ‘플러팅’에 능한 사람이다. 에밀리와 카미유는 관계를 정의 내리지 않은 채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정의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건 그만큼 그사이에 여러 감정이 스며들 여백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카미유와 하는 섹스를 넘어 카미유 자체를 좋아하게 된 에밀리와 복잡한 게 싫은 카미유의 관계는 결국 어긋난다.

 

이후로도 카미유는 에밀리와 계속해서 친구로 지내고 에밀리의 “함께 잘 남자 찾기” 탐험기를 들어주지만 둘의 관계는 한동안 그렇게 맴돈다. 카미유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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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는 뒤늦게 대학교를 다시 다니기 위해 파리에 온다. 노라는 파티에 금발의 가발을 쓰고 참석하고, 정말 우연히도 하필 금발 가발을 쓴 그녀의 모습은 유명한 포르노 배우 앰버 스위트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앰버 스위트로 오해받게 된 노라는 학교 학생들의 괴롭힘과 비웃음으로 인해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둔 뒤 파리에서 대학에 다시 입학하기 전  하던 공인중개사 일을 다시 시작한다. 공인중개사로 일하면서 노라는 사무실에서 카미유를 만나게 되고, 이렇게 파리의 네 남녀의 이야기는 얽히게 된다.


노라는 카미유에게 끌리지만, 사랑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라는 결국 자신이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했던 이유가 된 앰버 스위트와 1:1 영상 채팅을 하게 된다. 포르노 배우와 공인중개사는 서로의 닮은꼴로서 화면 너머로 만나게 되고, 둘은 화상 채팅을 하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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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 13구”에서 섹스는 네 청춘의 감정과 사랑을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하고 원초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누군가는 섹스를 통해 이게 사랑임을 깨닫고, 누군가는 섹스를 통해 이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감정 없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섹스를 사용하던 이는 섹스 없이 이뤄지는 관계에서 고차원적인 위로와 안정을 느낀다. 사랑이 사랑인지도 모른 채 흘러가는 시간이 존재하는 반면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는 시간도 존재한다. 결국 모두 우리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결말 부분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방향을 찾은 이들의 관계들이 모두 정말 사랑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제목대로 “사랑을 믿는”다는 것 아닐까. 에밀리와 카미유가 앞으로 잘 사랑할 수 있을까, 또는 앰버 스위트와 노라가 첫 만남에 나눈 키스가 어떤 의미였는지,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시 속 우리에게 아직 사랑을 믿을 공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지치고 닳아버린 마음에도 여전히 사랑이 들어 올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사랑은 하나의 거대한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랑을 좇는 인간은 어쩌면 실체 없는 것을 좇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정답 없는 그 무언가를 여전히 믿으려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찾고자 한다면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 꽉 막힌 차가운 도시의 빈틈 사이에 사랑은 그렇게 존재한다. 도시에는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이 있으며 사랑을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들이 있다. 우리의 도시는 그렇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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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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