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 팀 버튼의 현실 세계를 엿보다 - 팀 버튼 특별전

글 입력 2022.05.1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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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밖에선 마스크도 벗을 수 있겠다. 주변에 팀 버튼의 엄청난 팬인 친구가 있어 친구에게 안내도 받을 겸 함께 팀 버튼 전시를 가기로했다.

 

이미 방문한 도시는 다시 가지 않는다는 팀 버튼이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는데 정말 행운이 아닌가 싶다.  전시는 디디피 배움터에서 진행되고 있고 오후 8시까지 관람이 가능해서 느긋하게 볼 생각과 나들이로 설레는 마음이었다.

 

 

정사각 poster_6.jpg


 

10년 만의 한국전시인 만큼 작품의 양이 방대했다. 드로잉, 회화, 영상, 조형물 등의 작품이 모두 왔고, 팀 버튼을 잘 알지 못했던 내겐 그저 기이한 드로잉을 하는 애니메이션 작가였던 그의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였다.


모두가 알겠지만, 머릿속에 있던 것을 평면에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평면을 실사화하기는 더더욱 어려우리란 것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팀 버튼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가위손,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신부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상업적인 작품에서부터 굴 소년이라던지 풍선 소년... 등의 조금은 마이너(?) 한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그 유연성이 어디서 오는 걸까 전시 내내 궁금했는데, 전시의 중반 정도 오니 그 이유가 설명되었다. 전시의 50-60%가 드로잉, 즉 낱장의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유화, 영상, 조형물이 기억에 잘 남을 정도였는데도 드로잉에 비해선 그 매력이 잘 살지 못했다. 특유의 건조한 기괴함, 날것의 느낌이 묻어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 후엔 짤막한 영상들을 관람 가능한데, 실사, 스톱모션 등 여러 기법이 쓰임에도 불구하고 드로잉에서 다져온 작가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그대로 보였다. 작가가 영화감독인 만큼 대중들에게 드로잉 작업보단 영상 작업이 친숙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팀 버튼 자아가 투영되어 보이는 드로잉은 그 후 모든 작업의 기반이 된다. 어쩌면 그가 많은 영역을 아우르는 유연성을 갖게 된 연유도 탄탄한 드로잉이 덕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팀 버튼 전시장1.jpg

 

 

전시의 중반부부터는 우리가 아는 대표작, 캐릭터들이 나열된다.

 

팀 버튼 특유의 활기, 비극, 풍자, 기괴함이 서사와 캐릭터들을 가지고 구체화되는 과정을 엿 볼 수 있다. 영상들이 함께 전시되긴 하지만 역시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드로잉이 작품과 작가의 생각을 뒷받침하기에 좋은 요소였다. 친구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팀 버튼에 너무나 무지했기에 전시장 곳곳의 영상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나, 드로잉 등이 함께 있는 것이 전시 전체를 연결하며 관람하기에 좋은 장치였다.


언급했듯 팀 버튼은 나르시시즘과 자학의 공존, 상업과 순수의 공존 등 경계선을 매우 잘 융합한 작가로 느껴진다. 캐릭터들이 눈이 동그랗고 볼은 쑥 들어간 게 솔직히 팀 버튼 본인과 똑같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작가가 성장하며 느끼고 본 일상이 그만의 시선으로 작품화 되어있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주간과 일상의 간극. 사순절 전에 사치나 유흥을 부리는 사람들의 이중성 등은 상대적인 개념을 잘 융합시킨다는 카니발레스크 개념을 매우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을 보며 생각나는 작가가 몇 있는데 드로잉 작품은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떠올렸다.

 

초현실적이고 기괴하고 잔인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보쉬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팀 버튼과 비슷한 영혼을 지닌 듯하다. 보쉬의 작품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여러 알레고리와 상징, 신화를 겹치고 겹쳐 병든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개선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에 비해 팀 버튼의 작품은 조금 더 직관적이고 쉽지만, 유기체와 무기체를 혼합하고, 외계, 이상, 비정상의 유기체를 드로잉 한다는 점에선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팀 버튼의 작품이 사회비판적이다 혹은 아니다 라고 확언할 순 없어도 그의 작품엔 희로애락의 서사가 담겨있고, 사회비판적인 관점으로 해석될 여지도 농후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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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세번째 패널》中 일부, 1504경, 목판에 유채,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두 번째 작가론 신디셔면을 들고 싶은데 특히나 영상의 기반이 되는 드로잉에서 신디 셔먼의 작품을 보면 하게 되는 서사의 상상이 느껴진다. 어떤 작품이 영상화가 되면 자연스레 시간성을 갖기에 서사를 갖게 되는데, 드로잉 단계에선 시간성을 느끼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팀 버튼의 드로잉은 서사와 시간을 추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특유의 도착적인 묘사, 유기체화 된 사물의 모습, 기형, 자유자재의 펜압, 공간묘사 등의 드로잉 능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신디 셔먼은 대표작 <무제 영화 스틸>과 같은 작품에서 의도된 서사, 기호화된 이미지, 원본과 자아의 상실을 표현한다. 팀 버튼의 작품은 이와 같은 것들을 의도하진 않지만 둘 다 이미지에 상상력을 부여할 장치와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선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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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셔먼, 《무제- 영화 스틸 #21》1978, 젤라틴 실버 프린트, 19.1*24.1(cm)


 

팀 버튼이 만든 기이한 존재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혐오” “장애” “비정상” “약자”의 개념들과 긴밀하게 연결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가 만든 이야기는 정말 그의 상상 속 환상에서 끝나는 이야기일까? 겉으로 보기엔 환상 속 존재였던 그의 작품 속 괴물과 소년, 소녀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축약해 보여주고,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려 드는 일부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팀 버튼의 세계는 감히 지옥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천국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그가 만든 세계는 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를 하며 오락거리와 대중적인 미의 기준에 한몫 하며 살수있었던 그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예술이 현실의 도피처의 역할을 그만둔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팀 버튼이 자기 세계를 전시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는 각자가 더욱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외에도 그의 평면을 거대한 크기로 만든 조형물이나, 중간중간 크리스마스 테마, 거대한 오르골 등 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도 조금 조악해 보일 수 있긴 했지만, 전시에 한층 더 활기를 부여한 요소하고 생각된다.

 

 

전시전경6.jpg

 

 

이미 가본 분들은 모두 공감하겠고, 아마 갈 예정인 분들을 위해 아쉬운 점을 공유하자면, 주말엔 대기 시간이 엄청나게 길다는 것이다. 거의 입장 티켓을 사는 데만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전시장 안쪽도 인파가 꽉 차 있다. 이런 것은 전시장 측에서 미리 확인하고 관람인원을 조금 제한하던가, 예약제를 도입한다던지 등의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

 

특히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는 첫 섹션은 팀 버튼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수준의 인파로 전시 관람이 매우 힘들었다. 미리 날씨를 확인하고 여분의 옷이나, 주변의 놀거리를 확인하고 가거나, 평일 일찍 시간이 난다면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린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에서 꼭 전시하고 싶었다며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고,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한 이번 전시는 작품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모두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작가로서의 고집과 꾸준함에 찬사를 보내며 버트네스크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팀 버튼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전시였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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