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조금 다른 눈으로 보는 세상, 무수한 '2'의 이야기 - 2의 세계

글 입력 2022.05.1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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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표지.jpg

 

 

본가에 사는 동안, 어릴 적의 나는 집 뒤의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했다. 물론, 지도 상으로 보면 다른 이름의 면이 나오고, 고개 하나 혹은 수로를 두고 여러 마을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그 길을 걸어가보지는 않았기에 아빠께 종종 저 뒤의 마을들은 우리 동네와 어떻게 이어지냐며 묻고는 했다. 그러면 아빠는 옛날에는 길이 더 험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잘 되어있지 않았기에, 다듬어지 않은 산길을 통해 장날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직접 걸어다녔다고 말해주셨다. 우리 동네가 읍이라 물건들이 여기로 들어오니, 산길은 물류를 위한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그제야 산 너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고, 여기가 이 섬의 끝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었다.

 

2의 세계를 읽는 동안 왠지 옛날의 이런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1을 현재의 상태라 본다면 3도 4도 아닌 2는 주변의 가까운 무엇이지만 조금 다른 시선이라야만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세계. 나에게는 그것이 어떤 때는 뒷산의 마을이었고, 섬을 둘러싼 바다 너머의 땅이었고,  어떤 때에는 조금 더 큰 어른이 된 모습의 나였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 된 지 1년 즈음이 되어가는 지금,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이 달라졌으며 무엇을 좇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2'에 관한 문집을 천천히 읽어나가니 나는 완전히 다음 챕터로 넘어오지 못한 1.xx의 단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완전한 모습으로 어엿하게 내 일들을 멋지게 해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1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고 2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짙어지는 요즘 무언가 위로가 될 말을 찾아 고른 책이 '2의 세계'였다.


*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

 

고요한, 권여름, 김혜나, 류시은, 박생강, 서유미, 조수경

일곱 명의 작가가 열어 보인 신비로운 삶의 단면들


1의 문을 두드리면 ‘2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짐작은 가능하지만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내일을. 그런 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삶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끌어들이는 통로가 아닐까. 삶을 1이라 본다면, 그 문을 두드리면 또 다른 세계, 제2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삶 너머의 이야기 말이다.

 

《2의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출발한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숫자 ‘2’라는 테마로 일곱 명(고요한, 권여름, 김혜나, 류시은, 박생강, 서유미, 조수경)의 작가가 열어 보이는 세계는 현실적이면서도 비밀스럽고,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커튼을 열어젖히면 이내 보이는 바깥세상처럼,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한 겹의 막을 걷고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줄 것이다.


*

 

숫자 2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주제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연인, 문 너머 제2의 방, 퀴어, 아이돌 팬덤 문화 속 2차 창작의 세계, 도플갱어,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책을 덮고 나자 이 흥미로운 주제로 앤솔러지(문집)가 기획된 데에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결말만 본다면 씁쓸함과 충격을 주는 소설도 있었지만, 대체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새롭고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다. 2라는 명확한 숫자가 머리에 새겨진 상태에서 읽어나가다보니 장면의 전환이나 이동, 주제의식이 담긴 대상을 서술하는 대목에 특히 주의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함께 묶인 소설을 모두 관통하는 공통된 무언가가 느껴졌다. '2의 세계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왠지 안심이 되었다.

 

연락하면 바로 닿을 수 있었던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 몰랐던 문너머 방의 이야기, 과거에는 이반이라 불렸던 퀴어의 이야기, 하나의 문을 통해 연결되는 도플갱어들의 세계, 이따금씩 느껴지는 먼저 간 사람들의 흔적...

 

우리를 둘러싼 1의 세계는 지루함과 보편으로 차 있지만 눈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면 가까운 곳에 있었던 2의 이야기들에 마음이 끌렸다.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 한 번 해보는 것, 나의 세계를 둘러싼 문들을 상상하는 것, 다양한 성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과 지금 나의 삶에 함께해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는 것 등이 새로운 가능성 혹은 따뜻한 위로를 주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도.

 

이 글에서 함께 묶인 소설 모두의 줄거리를 풀 수는 없기에 여기서 할 수 있는 '2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할까 한다. 책의 소개말처럼 1의 문을 두드려 더 다양한 '2'를 많은 분들이 경험하길 바라며, 2의 이야기들에서 조금 용기를 얻은 나는 이따금씩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했던 2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가보려 한다. 익숙함에서 조금 벗어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것이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든, 무엇이든.

 


보이지 않아서 더 경이로운 2의 세계로

 

삶을 산다는 건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을 해도 그 끝은 예상할 수 없고,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며, 오늘은 괜찮아도 내일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기대감이 생기는 것일 테다. 눈에 보이는 삶 너머의 세상, ‘2의 세계’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다. 1(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래서 더욱 삶은 신비롭기만 하다.

 

우리는 오랜 시간 팬데믹을 겪으며 ‘내년엔 괜찮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2022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막상 2022년을 살면서도 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상황의 익숙함만이 삶에 자리해 있다고 느낀다. 그런 우리에게 《2의 세계》는 잠시나마 우리의 눈을 돌리고 이렇게 위로해줄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오늘이 또 다른 세계로 이끌 통로라고.

 

1의 뒤에 ‘2’가 있듯 그 후의 세계도 있을 것이다. 숫자 2의 형태처럼 구불구불하고 또 다른 고통과 아픔, 슬픔의 순간과 직면할 수 있지만, 분명 즐겁고 행복한 길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고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그래서 인생을 살 만하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미지의 세계에 발을 푹 담고 가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데에 위로를,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그 세계를 매일 경험하고 있는 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출판사 서평 중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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