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사랑을 감당하는 방식,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시몽, 로제, 폴을 통해 보는 우리가 사랑을 감당하는 방법
글 입력 2022.05.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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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정확한 선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완전한 종류의 사랑 또는 완전한 우정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시절 ㅡ 관계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그 속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지금에 와서는 그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람이 하는 사랑이라는 관통하는 넘치도록 많은 감정들을 말하는 책이다. 칵테일 한 잔에 이 책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이야기해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늙는다는 말의 동의어는 겁이 많아진다는 것 아닐까. 삶도 관계도 알면 알수록 두려운 것이 많아진다. 끝을 겪어본 이는 눈에는 불타올랐다가 식어가는,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들 권태와 고루함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들이 먼저 보인다. 사랑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가 인생에서 겁내는 것의 양이 비슷할 때 만나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두려운 게 적은 시몽과 너무 많은 끝을 알기에 두려운 것이 많아진 로제는, 그래서 서로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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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나와 가장 닮아 있는 캐릭터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는 실연당한 엘리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가는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것이 없다고. 그러면 새로운 인연에게 내어줄 것이 없다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지기에 우리는 슬픔과 괴로움을 기쁨과 함께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말이다.


시몽은 아직 마음을 아끼는 법을 배우지 못한 청년이다. 시몽은 내키는 대로 마음을 떼어 내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준다. 시몽은 아직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시몽은 온 몸을 던져 로제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을 해 보지 않은 이만이 재지 않고 사랑을 줄 수 있다.


사랑에 처음 빠진 이가 하는 가장 흔하고도 큰 착각은 감정과 사람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사람도 변하지만, 사람에 대한 우리의 환상도 변한다. 사랑은 어느 정도 환상에 기인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우상화한다. 이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우리의 환상도 변한다는 것이다. 로제는 환상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몽의 시선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는 시몽의 순수함과 열정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럴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을 덮으며 자신은 이미 늙어버린 것 같다 말하는 로제를 떠나는 시몽의 뒷모습에서 ‘늙는다’ 라는 게 무엇인지 점차 알아가게 될 앞으로의 시몽이 보여 씁쓸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를 던지게 된다. 그 후에는 필연적으로 상실감과 회의감, 외로움이 뒤따른다. 어쩌면 삶은 사랑 후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기억해야 하는 감정들이 아파서 겁내는 것은 늘어가고. 중요한 것은 그 감정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살아간다는 거다. 한때 우리는 시몽이었다가 로제가 된다.

 

 

 

로제와 폴


 

로제가 폴에게 돌아간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아마 모든 사람이 로제의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만 하려 한다. 시몽의 사랑을 로제는 감당할 수 없다. 시몽의 사랑을 감당하기에 로제는 너무 늙어버렸고, 너무 많은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로제가 시몽에게 곁을 내어줬던 것은 한 때는 시몽과 같았을 자신에 대한 향수와, 겁내는 게 많아져 버린 현재에 대한 작은 도피처를 만들고 싶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알아가고 기대하고 관계를 쌓는 일들은 버겁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익숙한 것에 머물려 한다.


하지만 가끔은 삶에 새로운 것들이 필요하다. 내가 감당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것을 삶에 들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막상 삶에 새로운 것을 들이면 우리는 느낀다 – 감당 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너무 큰 마음의 여유와 열정을 감당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로제는 돌아간다.


폴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와 자기도 하는 폴이지만 폴은 결국 항상 로제에게 되돌아간다. 언제고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가 삶에 하나 있다면, 안정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은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해 보면 사랑은 딜레마다. 안정감이 있으면 자극이 없고 자극이 있으면 안정감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종점에 우리는 항상 안정감을 선택한다.

 

*

 

돌고 돌아 가장 익숙한 방법을 찾게 되기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 종착역이 같을 것이라는 점은 씁쓸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이다.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을 감당하는 방식이나 크기는 모두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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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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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광배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폴과 로제가 뒤바뀐 채로 글이 쓰인 것 같네요.. 좋은 글인데 아쉬운 마음에 댓글이라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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