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탈출 혹은 타협 [도서/문학]

아무도 없는 바다(Nobody in the sea) 中
글 입력 2022.05.1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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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현실 속으로 몰아 붙이는

정체 모를 구속으로부터 탈출하기를 언제나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은 한 치의 아량도 없이 우리를 외면한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내가 지닌 모순 그 자체이며,

그 모순은 다시 모순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완성한다.

  

- 탈출, 아무도 없는 바다 中

 

***

 

안국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최유수 작가님의 ‘아무도 없는 바다’를 봤다. 독립서점은 처음이었고 당연히 사람 냄새가 나는 책도 처음이었다. 짧은 글로 이루어진 이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탈출’이다. ‘탈출’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는 위험한 곳에서 긴급하게 빠져나오는 것이다.

 

‘탈출’의 영어 단어인 ‘엑시트(exit)’를 생각했을 때도 화재 긴급 대피로가 떠오른다. 영화 ‘엑시트’와 예능 ‘대탈출’도 비슷하다. 이런 콘텐츠들이 위험에서 긴급하고 신속하게 빠져나오는 이미지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위험의 원인은 대게 외부적인 요인이다. 미디어 콘텐츠에서 연출로 사용되던 ‘탈출’이 독립서점, 그리고 기존 책과 다른 얇은 수첩같이 생긴 책에 적혀 있으니 묘했다. 새로운 탈출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책에서 말하는 탈출의 위험은 내제적이다. 내가 자초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 한 마디로 나에게로의 탈출이다. 몰아붙이는 건 담배꽁초로부터 시작된 화재와 외부세력의 감금이 아닌 바로 나다. 몰아붙이는 주체가 내가 되고 그 상황으로 탈출해야만 하는 객체도 내가 된다.

 

하긴, 맞는 말이다. 나는 나를 몰아붙인다. 나름 유하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 같지만, 여유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불안감으로 나를 현실로 밀어낸다. 그리고 다그친다. 가끔은 놀아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고 나에게 모자란 점만 찾는다. 빈틈만 계속 찾으니 보이고 느껴지는 빈틈은 많아지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일들을 가져다 채운다.

 

그래서 바다 앞에서 여유롭게 지내는 나를 끊임없이 상상한다. 언젠가 이 서울을 뜨고 제주도로 돌아가리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촬영지인 이탈리아 크레마로 떠나리라, 하고 이상향을 만든다. 최소한으로 살아가는 삶, 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쉬지 않고 치는 파도가 있는 바다. 그 공간에서 지내는 나의 미래를 생각한다.

 

내 이상향에는 조건이 붙는다. 그게 바로 모순이다. 바로 성공하면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하기 위해 현실 속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결국 모순이 성공을 만들고 이상향을 실현시키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옥쇄처럼 차고 있을지, 즐길지는 오로지 나의 몫이다. 나를 몰아붙이는 행동이 동기가 되고 이상향이 우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닌 이상향이 목표가 된다면 그 과정은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적당한 타협도 필요하다. 현실과의 타협, 이상향과의 타협. 현실이 너무 힘들다면 잠깐 쉬다 가는 것이고 너무 여유로웠으면 잠깐 몰아붙이는 것이다. 이상향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면 시간을 늦추거나 조금 내려놓는 것이다.

 

결국 탈출은 내가 나를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하는 것이 아닌 모순이라는 인식에서 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자기합리화와 정신승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타협으로 내가 주체적으로 조절해서 그 상황과 같이 살아간다면 나름 괜찮을 거 같다. 그 상황을 완전히 탈출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고 조절하며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를 완성해 나간다.

 

이상향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박성준 태그.jpg

 

 

[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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