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섬세하게 뛰어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피아노 리사이틀 '하모니, 리듬 그리고 컬러'

글 입력 2022.05.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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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사이틀.jpg

 

 

5월 2일부터 방역조치가 대폭 변화됨에 따라 길거리 풍경이 달라졌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야외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늦은 시간까지 가게들이 영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시기에 비하면 확실히 사람들이 밖으로 많이 나오는 양상이다. 그래서일까, 5월 10일 예술의전당에 가는 길도 평소보다 붐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예술의전당 음악분수가 있는 광장은 근래에 봤던 모습 중에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이었다. 야외 벤치에 사람들이 한가득 앉아 있었고, 서서 분수와 건물들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이전에 비하면 여러모로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런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을 안고 예술의전당 음악당을 들어갔다. 5월 10일에 예술의전당을 찾은 것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리사이틀 '하모니, 리듬 그리고 컬러'를 감상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의 무대를 기다린 관객들이 정말로 무수히 많다는 것을, 로비에서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티켓박스, 프로그램 북 구매 데스크 어디 하나 사람들이 가득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방역지침이 완화된 이 순간, 독특한 매력이 가득한 프로그램으로 무대를 꾸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이었다.


바르톡, 에네스쿠 그리고 드뷔시로 구성한 이 매력적인 조합을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홀에서 만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무대는 황홀 그 자체였다. 그의 기교와 표현력, 전달력 그리고 이 모든것을 아우르는 섬세하고 밀도 높은 뉘앙스까지 무엇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PROGRAM


벨라 바르톡 피아노를 위한 연습곡 B.Bartok Studies for Piano

I. Allegro molto

II. Andante sostenuto

III. Rubato-Tempo giusto


게오르그 에네스쿠 피아노 소나타 1번 G.Enescu Piano Sonata No. 1

I. Allegro molto moderato e grave

II. Presto vivace

III. Andante molto espressivo


INTERMISSION


클로드 드뷔시 전주곡 제2권 C.Debussy 12 Preludes (book 2)

I. Brouillards(안개)

II. Feuilles morte(고엽)

III. La puerta del Vino(와인 게이트)

IV. Les fées sont d'exquises danseuses(예쁜 요정의 춤)

V.Bruyères(헤더가 무성한 땅)

VI. Général Lavine-eccentric(괴짜 라비느 장군)

VII. La terrasse des audiences du clair de lune(달빛 쏟아지는 테라스)

VIII. Ondine(물의 요정)

IX. Hommage à S.Pickwick Esq. P.P.M.P.C.(피크윅 경을 예찬하며)

X. Canope(카노프)

XI. Les tierces alternées(3도의 변화)

XII. Feux d'artifice(불꽃놀이)

 




첫번째 작품, 바르톡의 피아노를 위한 연습곡은 프로그램 북에 아주 자세한 해설이 나와 있었다. 바르톡의 작품은 국내 무대에서 자주 연주되지도 않을 뿐더러 국내 해설을 보기도 정말 어려워서, 공연 전에 프로그램 북에 쓰인 해설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프로그램 북은 분명 작품에 대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읽는 나 자신이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해설에 쓰인 모든 내용을 생생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 작품이 굉장히 논리적인 음악인 것은 알겠는데, 이것이 어떻게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음악을 들으며 생생히 느끼기에는 아무래도 절대적인 한계가 컸던 것이다.


예컨대 1곡에서 12음 기법을 사용하지만 9개 음들을 사용하고 있어 조성의 중심이 확고하면서도 모순인 듯 보이는, 하지만 모순은 결코 아닌 절묘한 점이 있다는 점, 2곡이 논리적인 대칭에 기반하여 A-B-A'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부분의 아르페지오가 드뷔시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 3곡이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박자표를 담고 있다는 점 같은 것은 해설 없이 작품을 듣기만 해서는 알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복잡다단한 곡도 듣다 보면 뭔가의 서사가 그려지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음과 박자로 인해 시종일관 질주하는 것 같은 진행이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빅뱅과도 같은 폭발과 잔잔한 불꽃놀이 같은 작은 폭발이 대비되는 듯했다. 아주 톡톡 튀고 비범해서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연주로 훨씬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00_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프로필 _1.jpg



이번 연주회를 기다리면서 프로그램을 미리 들어보던 와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빠져든 작품은 1부의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었다. 바로 에네스쿠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이었다. 일견 바르톡처럼 음의 사용이 매우 오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에네스쿠의 소나타 1번은 반음계적인 면은 있어도 난해한 현대음악의 전개와는 또 다른 면이 있는 듯했다. 1악장과 2악장에서 모두 루마니아 민속선율과 토속적 음악 요소들을 모티브로 포함시키긴 했지만, 에네스쿠가 민속음악을 활용한다는 배경을 모르고 듣는다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1악장의 경우 잔잔한 1주제와 민속 선율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2주제의 대비가 아름답다. 반음계적인 요소가 명확한데도 난해하게 들리기보다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터치를 통해 아련하게,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2악장은 루마니아적인 색채가 훨씬 강하다. 여기서는 변화무쌍한 박자의 변화도 볼 수 있었다. 민속 춤곡적인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더욱 박자감이 증폭되는데, 바르톡의 3곡에서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생생한 프레스토를 전달해 주었다.


에네스쿠의 소나타가 아주 인상깊게 남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3악장 때문이다. 이번 리사이틀의 1부 무대에서는 바르톡 그리고 에네스쿠의 2악장까지 모두 템포가 비교적 빠르고 마디 마디마다 음이 꽉 차 있어 라쉬코프스키가 전달해주는 음을 듣고 있기만 해도 굉장히 빠듯하다. 그러나 에네스쿠의 피아노 소나타 1번 3악장은 상당히, 여백의 미가 있다. 음과 음 사이의 그 여백 속에는 밀도 있는 뉘앙스가 가득 담겨 있고, 그 뉘앙스의 완성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터치와 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의식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섬세하고도 밀도 있는 표현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 속에서, 이 3악장은 그야말로 완벽해졌다.


이 3악장을 두고, 에네스쿠 본인은 루마니아 평원의 밤을 그렸다고 표현했지만 내가 느낀 바는 달랐다. 루마니아를 가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에게 이 놀라운 3악장은 마치 광활한 우주를 목도하는 것 같은 악장이었다. 마치 별이 깜빡이며 점멸하다가 끝나는 것 같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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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선곡된 작품은 드뷔시의 프렐류드 2권이었다. 인상주의의 대가인 드뷔시의 색채가 온전히 녹아든 작품이어서 선명하고 뉘앙스가 가득한 만큼, 에네스쿠 피아노 소나타 1번 3악장의 분위기에 잇대어 그 뉘앙스로 가득한 무드가 지속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의도해서 프로그램을 배치한 거라면 정말, 뜨겁게 박수쳐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드뷔시 연주는 그야말로 표제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연주였다. 예컨대 4번 예쁜 요정의 춤에서는 요정의 날개가 쉴 새 없이 팔랑거리는 것이 그려졌고, 5번 헤더가 무성한 땅에서는 야트막한 언덕에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그 향기가 끝없이 밀려오는 인상을 받았다. 8번 물의 요정에서도 물의 투명한 색채감과 요정 특유의 가벼운 움직임을 음과 음 사이의 간극으로 살려주었다. 특히나 이렇게 표제의 이미지를 가장 극대화시킨 곡은 아무래도 7번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를 연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 유명한 드뷔시 본인의 달빛보다도 더 섬약하고 신비롭게 아름다운, 뉘앙스가 가득한 밤을 그려내고 있는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마치 그 밤이 연주일 당일인 오늘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가 하면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이미지적인 요소가 아니라, 곡의 구성적인 요소를 통해 표제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연주 역시 선보였다. 3번 와인 게이트에서 느껴지는 하바네라 리듬, 6번 괴짜 라비느 장군에서 느껴지는 익살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군대를 연상시키는 선율들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이렇듯 특유의 리듬, 분위기를 조성하는 선율의 특징들을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섬세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살려냈다.


그뿐만 아니라 프렐류드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기교적인 면모까지 원없이 선보였다. 11번 3도의 변화의 경우, 드뷔시 프렐류드 2권 중에서 가장 뉘앙스를 배제하고 온전히 기교적인 면을 부각시킨 작품이었다. 마지막 12번 불꽃놀이는 뉘앙스와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고루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대미를 장식하는 11번과 12번에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기교와 표현력을 넘나들며 드뷔시를 확장시켰다.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인상적인 피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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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도 뚜렷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에 화답하여, 그는 앵콜곡을 관객들에게 연주해 주었다.


첫 번째로는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Barcarolle 'Auf dem Wasser zu singen')'이었고 두 번째 곡은 쇼팽의 녹턴 op.27-2였다. 두 곡 모두 유명하고 관객들에게 익숙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어서, 마지막을 낭만적으로 마무리 짓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선곡 센스에 감탄했다. 그런데 그는 두 곡에서 끝내지 않고, 한 곡을 더 연주해주었다.


세 번째 곡이 연주되는 순간, 이 곡은 두 곡과 다르게 어떤 작품인지를 바로 캐치하기가 어려웠다.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차 듣다보니, 이 작품이 바흐의 작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라쉬코프스키의 깊고 부드러운 페달링으로 소리가 부드럽게 귀를 감쌌지만, 그 속의 바로크적인 요소는 뚜렷하게 살아있었다. 잔잔하게 바로크미를 남기면서 여운까지 전해 준 이 아름다운 작품은, 바흐의 파르티타 1번 중 사라방드였다. 이 연주를 듣고 나니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연주하는 바로크 작품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


리듬과 하모니 그리고 색채. 이 모든 것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전달하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기교와 뉘앙스가 어우러져 흐드러질 듯이 피어난 무대였다. 인상주의와 신고전주의 그리고 현대음악에 가까운 작품들로 구성했던 이번 리사이틀에 이어, 다음에는 그가 어떤 테마로 어떤 선곡을 보여줄까. 앵콜에서 본 그의 낭만과 바로크도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어떤 선곡이어도 좋을 것 같다. 그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다음 리사이틀을 지금부터 기다리게 되는, 그런 아름다운 무대였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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