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픔 대신 고통이었던, 책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가슴께를 무엇인가 누른 듯 답답한 고통의 슬픈 이야기
글 입력 2022.05.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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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으로 가득 찬 새벽안개가 조금씩 밝아 오는 등불에 흐릿한 덩어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새벽, 차갑게 푸른 하늘 위로 여전히 남아 있는 별빛이 보였다. 며칠 사이 기온이 빠르게 떨어졌다.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곳곳에 두꺼운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억 속에 멈춰 있는 곳은 멀고 먼 햇살 아래 밝은 세상이었다. - p.10

 

 

책은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첫 도입을 읽고 있자면, 묘하게 가라앉은 차가운 푸른 잿빛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리고 이 느낌은 책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 어느 여름, 따사로운 햇볕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도 마냥 밝지 않고, 한 톤의 잿빛이 깔려 있는 느낌의 책이었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라는 책 제목과 걸맞은 분위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는 우울감을 줘서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읽기 전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걱정이 됐었는데 읽다 보니 요 근래 읽었던 책 중 가장 수월하게 읽히면서 몰입도가 높은 책이었다. 그것은 아마 한 편의 시집 같은 책이자 장편의 드라마 같은 책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시집 같은 책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감탄하면서 봤던 것은, 작가의 유려하면서 간결한 문체였다. 비유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이 전반에 깔려 있어 마치 한 편의 긴 시집을 읽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함축적인 문장이 아니라,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듯 쉽게 읽히는 문장이어서 흡입력 있게 보게 됐던 것 같다.

 

 

그 눈빛이 마치 창밖의 적막한 겨울 같았다. 차가운 바람 소리가 섞인 하얀 빛. 한기 속에서도 조금은 따뜻한 느낌이 새어 나와 한 겹 한 겹 몸을 덮어 주었다. – p.86

 

 

어둠 속으로 슬픔에 잠긴 강이 천천히 흘렀다.

미처 피하지 못한 청춘과 시간을 삼키며,

너희는 멀리 도망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줄곧 여기에 머물렀지.

강물이 일렁이며 치솟아 머리끝까지 잠길 지경이 되도록. – p.306

 

 

어렵지 않은 단어의 나열로 문장은 아름다웠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무거웠다. 우울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했지만 유려한 문체가 덜 무겁게 다가오게 했고, 그나마 희망을 기대하게 되는 문장이었지만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어둠이 마냥 안심하며 읽지 못하게 했다. 이렇듯 역설적인 문장은 꽤나 매력 있게 느껴졌고, 책을 읽는 내내 표현법에 감탄을 하며 읽었다.

 

 

 

장편의 드라마 같은 책


 

앞서 언급했던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작가의 흡입력 있는 문체’로 인해 이 책은 ‘장편의 드라마 같은 책’ 같기도 했다. 책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외전까지 모든 이야기 속 장면이 머릿속에 영상을 튼 것처럼 상상이 됐다. 각 장면마다의 날씨, 하늘색, 분위기, 장소 등 디테일한 설정이 은연중 혹은 의도적으로 드러나 있다 보니, 작가가 의도한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서 상상할 수 있었다.

 

 

한때 너와 나는 매일 아침 함께 저 빛이 들어오는 출구를 향해 걸었다. 이제는 그가 나를 태우고 나에게 버려진, 어둠 속의 너를 떠나고 있다. 자전거 바퀴가 한 바퀴 두 바퀴 굴러가며 천천히 너에게서 멀어져 갈 때, 나는 내가 아는 세계에서 조금씩 조금씩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세계가 나를 버릴 때 나 역시 천천히 손을 놓았다. 이제 다시는 그런 아침은 없을 것이다. – p.353

 

 

예를 들어, 위와 같은 문단이 그러했다. (이 문단만 똑 떼놓고 본다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으나) 위 내용을 읽고 있자면 머릿속에서 영사를 튼 것처럼 자동적으로 상상이 됐다.

 

위의 내용은 주인공 ‘이야오’가 본인이 처한 상황과 그동안의 관계 변화로 인해 소꿉친구이자 의지의 대상인 ‘치밍’을 두고 점점 멀어져 가며, 더 이상 둘은 같은 세계에 함께하지 못할 거라는 짐작을 하는 장면인데, 여기서는 이렇게 상상이 됐다.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과, 초여름의 시원하지만 묘하게 습하고 답답한 공기. ‘이야오’는 자전거 뒤에 앉아 멀어지는 학교를 바라보며 정확한 감정을 가늠할 수없이 많은 감정이 스치는 얼굴에 슬픈 표정이 떠오르며 골목의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땐 적막함 속에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들린다.’

 

위의 장면을 비롯하여 책 전반에 걸쳐 모든 장면을 디테일하게 그려지다 보니, 책을 놓지 않고 계속 읽게 됐는데, 이것이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책의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슬픔’ 대신 ‘고통’이었던 책


 

책 뒤편에 실린 서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친구가 또 독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으려고 하는구나.” 제목에서부터 느껴졌겠지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슬픔과 우울한 분위기로 꽉 차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서평처럼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통’이었다.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녀의 인생이 이처럼 기구할 수가 있는지, 괴롭고 충격이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깊게 빠지는 수렁 같은 인생이었다. 가정불화, 가정폭력, 학교폭력, 따돌림, 유산. 각각으로 떼놓고 봐도 무거운 키워드가 한 사람의 인생에 해당되는 말이라면, 그 무게감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슬픔’보단 ‘고통’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가슴께를 무엇인가 누르고 있는 듯 묘한 답답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들 사이 찾게 되는 희망의 끈들을 엮어 삶을 이겨내길 바랐는데, 그마저도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음에 더욱 우울해지게 됐던 것 같다.

 

기구한 삶의 한 소녀와, 그 소녀와 연결된 이들은 어떨 때는 따스했으나 따스함이 따가움이 되어 그녀를 찌르기도 했다. 다친 소녀가 세우는 날에 주변의 사람들이 베이기도 했던, 그 날카롭던 관계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이었을까. 독이 든 성배였을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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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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