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 물음표를 늘렸다 줄였다하는 인생근력 운동 - 문학줍줍의 고전문학 플레이리스트 41

고전... 어쩌면 읽을 만 할지도?
글 입력 2022.04.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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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지금 책 편식을 하고 있다. 에세이에 푹 빠진 것이다. 누군가를 비교적 솔직히 표현하는 장르라고 생각했고, 저자를 향한 애정을 키우는 데도 효과적이다. 다만 너무 편식했는지 글을 섭취하는 속도와 흥미가 떨어져 간다. 에세이는 유익하고 재밌지만, 내가 끼어들 자리는 적어 보였다. 어느 정도는 확신한 자아를 내세워 책을 썼을 것이기에 내가 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문학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됐다.

 

 

‘문학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잖아.’

 


실용주의의 극을 달린 사람에게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정보를 얻으려면 다른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무의미한 뒷북 변론을 보태고 싶다. 문학은 하나의 갈래이자 동시에 모든 분야의 철학과 지식이 하나로 집대성한 최종 단계의 예술이라고. 명확하게 정보를 제시하지 않지만, 배경에 등장인물에 그들의 말에 말과 말 사이의 문장에 작가가 살면서 접촉하고 받아들여 해석한 모든 것들이 묻어있다. 다만 이를 충만히 받아들이기 위해 제멋대로 해석하는 독자의 노력이 꼭 필요할 뿐이다.


이 부분에서 문학이 갖는 초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물음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문학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독서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면을 상상해야 하고, 글자 사이에 표현되지 않은 맥락과 생각을 궁금해하고, 왜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됐고 왜 난 이렇게 받아들이는지 따져볼수록 풍부한 독서가 된다. 독자가 끼어들 수 있고 끼어들어야 할 여유 공간을 전제로 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 수많은 해석까지도 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물론 자신의 의견을 적절한 방향과 거리에 있도록 조절하는 책임감도 그러하다.)


특히나 서로를 향한 물음표가 사라지고 수많은 마침표만 존재하는 현대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현대는 또한 빠르게 급변하는 특성이 있다. 불과 10년도 안 된 개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하필 문학과 고전의 만남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개념과는 점점 멀어지는 흐름 속에 여전히 '고전문학'이라며 칭송받는 작품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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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쉽게도 고전문학이라 하면 왠지 거리감이 든다. 어려운 어휘가 잔뜩 있을 것 같고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로 가득할 것 같다. 그 간극을 줄여주는 역할을 <문학줍줍의 고전문학 플레이리스트 41>이 할 수 있겠다. 플레이리스트는 40여 개의 고전을 요약하고,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점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이 흐름을 따라가 보면 고전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사실 별다른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사람을 담고 있고, 현대에도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한다. 그 자체만으로 고전을 시도할 용기를 갖게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여러 의미로 가이드라인이 된다. 직접적으로 문학을 읽는 큰 두 가지 기준과 이야기 요약을 제시하는 부분도 그러하고 그 자체가 작가의 시선을 보여주는 해석집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연 인간의 어떤 모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요약했고, 어떤 사회상을 도출했는가를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가이드가 된다. 작가의 말을 보고 의문과 호기심과 다른 생각이 드는 지점을 기록해보고  관점의 차이를 느끼는 것도 하나의 독서법이 될 것이다.

 

책은 주제별로 9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다. 플레이리스트처럼 순간에 끌리는 주제와 이야기를 뽑아 쓰는 형식으로 책을 사용하면 좋겠다. 아래는 내가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메모한 것이다. 나의 의견 역시 타인의 간섭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계속 자신만의 생각을 던지면서 읽어보길 바란다. 그 가득한 물음을 안고 고전으로, 삶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나의 메모


 

<안나 카레니나> - 안나가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데에는 어떤 맥락이 있었을까? 결혼 여부를 알고도 안나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브론스키는 어떤 방법으로 안나에게 표현했고, 그를 향한 평판은 어땠을까? 안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을 전개하는 것과 별개로 여러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핵심 인물로서 안나가 묘사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맥락은 어떻게 전개될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가족이 주는 영향이 거대할 수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과 분리될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 경제적 독립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는 원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이유로 부모와 자녀가 같이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족이 적절한 책임감과 관계를 위한 노력을 한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반강제적인 동거가 강요되는 이 시기는 비극으로 느껴진다. 사회적 흐름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그 밀접한 관계가 왠지 조금은 두렵다.

 

<정체성> - 최근 미디어에선 부캐, 닉네임, 예명을 통해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이름을 중심으로 단일하게 형성된 정체성에서 탈피하여 또 다른 자아를 표출하는 것이다. 한 개인은 일과 일이 아닌 삶으로, 다시 그 안에서 수많은 결로 파생되지만, 그 모두를 수식하는 명함은 이름 하나다. 당연히 각 정체성 마다 나타나고 수행하는 자아는 다른데, 그 모든 활동이 단일한 자아로 명시되면서 충돌이 생긴다. 한 부분에서의 자아가 다른 곳으로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 이를 인식하고 적절히 자아를 분리하는 연습도 필요하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타인을 바라볼 때 섣부른 이해와 판단을 금하는 것이겠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자아는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 중 하나일 테니.

 

<변신> - 나도 내면에 추악한 면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 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신경쓰는데, 그로 인한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젠 내가 가진 추함이 어느 정도인지, 무엇인지 가늠하지도 못하고 그저 숨겨진 내면은 추하겠거니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 그런 ‘구림’을 갖고 있을 텐데, 그건 무조건 감춰야만 하는 것일까. 그 부족한 면을 조금이라도 다듬어서 내세울 순 없을까. 나 사실 이런 면을 갖고 있다고. 그 해방감을 평생 느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변신한 주인공에게 드리워진 비참한 결말을 보면서 조금은 씁쓸해진다.

 

 

 

고전의 주제, '지금'의 주제


 

사랑과 결혼, 가족, '나', 삶과 죽음, 국가와 사회, 삶과 전쟁, 평범하고도 치열한 일상, 방황하는 마음, 미지의 세계


9개의 주제를 살펴보면 고전이 다루고 있는 문제와 주제는 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많은 이론과 기술을 발달시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음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같은 고민과 상황에 놓여있는 인간을 보면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이자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처한 상황을 막론하고 인간이란 애초에 범위가 정해진 생각 안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종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삶의 정답과 의미를 좇는 건 왠지 중요하지 않은 공허한 행위 같다. 삶이란 정말 의미가 부재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것에 가닿는 능력이 인간에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삶이 살아갈 수 있기도 하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삶에서 부여하는 의미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전쟁에 관한 챕터를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것 같다. 비록 소개된 고전은 전부 실제 전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지만, 이젠 정말 문학 안에만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때론 실재하는 것보다 문학으로만 존재하기를 바라는 순간이 있는데, 전쟁과 같이 생명이 사라지는 때도 그렇다. 이 커다란 폭력 앞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실제 상황을 허구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자기 모습이 무섭기도 하다. 이렇게 겁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억 같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늘려나가는 게 최소한의 수행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당대를 살아가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짧은 몇 줄로 기억할 뿐이다. (중략) 우리가 짧은 몇 문장으로 기억하는 그 속에는 수많은 개인의 사연이 담겨있다.'

 

- 문학줍줍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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