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버랩 절망, 절망2 [도서/문학]

<<칵테일, 러브, 좀비>> 中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글 입력 2022.04.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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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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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이것은 흔하고 흔한 이야기이다.(p.111)”


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사실 얼마나 누군가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뻔한 가정폭력의 비극’과 ‘뻔한 여대생 스토킹’이 얼마나 뻔하지 않은 이야기였는지 복잡한 시간 구성과 기구하고 절묘한 운명을 통해 이야기한다.

 

 


1. 서로 죽이게 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그러니까,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해 준 것이 미래에서 온 나였다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지켜 준답시고 따라다닌 것이 결국 그녀를 괴롭히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p.148
 


이 소설은 엄청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서로 어떤 의도를 갖고 한 행위가 결국은 정 반대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상황적 아이러니(situational irony)가 깔려있다. 또한, 독자들이 마침내 세호가 영희의 아들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에도 세호는 이를 전혀 모른 채 기어코 어머니를 막기 위해 1990년 1월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가 느껴진다. 이는 독자들에게 무거운 충격을 안겨주며 소설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든다.


1) ‘흔한’ 감정


왜 이 소설의 제목은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일까. 결국 누군가는 누군가를 찌르고 죽이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가족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럴수록 다른 가족을 서로 더 많이 찔러야만 하는 이들의 운명은 아프다.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그들은 다만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서로가 바라는 행복은 자꾸만 이상하게 엇나가고 서로를 방해해야만 했을까.

 

사실 시간을 돌리는 마법에 상관없이 필자는 이들이 서로를 찔러댔던 사실에 변함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기 전까지 폭력을 행사했던 수많은 시간 동안, 아들은 얼마나 많이, 무수히, 아버지를 찌르는 상상을 했을까.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아들은 어머니의 칼날에,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뒤틀린 칼날에 얼마나 많이 베이고 다치고 아파했을까. 그러니까, 이들은 사실 보이지 않는 칼날로 서로를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찌르고 있었을 것이다.

 

균열이 생긴 가족은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까. 그런데, 세상에 균열이 전혀 없는 가족이 과연 존재할까. 인물들이 서로를 찌를 수 없게 되기까지 겪는 감정과 상처는 누구나 비슷하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흔한’ 상처일 수 있다. ‘그 흔한 이야기’가 소설에서는 실제로 잔인하게 찌르는 행위로 치닫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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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흔하지 않은’ 전개, 아이러니


(1) 양상


하지만 소설은 그 감정이 흔하게 치부되지 않게 모든 이야기를 섞어버린다. 인물들은 시간을 뛰어넘어서까지 비극을 막으려 노력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각자의 관점에서 전개되던 이야기가 사실은 한 가족의 이야기였음이 밝혀졌을 때, 독자들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스토커도, 가정 폭력을 묵인하는 어머니도 모두 비난할 수 없는 상대임이 밝혀지자 이들의 비극은 더욱 깊어진다.


세호가 세 번째 기회를 얻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를 스토킹하기 시작할 때 독자들의 충격은 그들을 다시 소설 맨 처음으로 이끈다. 영희와 찬석의 만남의 계기가 된 스토커의 존재가 사실은 영희와 찬석의 만남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한 아들이었다니. 단순히 스토킹 당하는 여대생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이야기의 시작점이 완전히 뒤집힌다. 아버지의 회사(p.118)와 사업을 물려받을 남자친구(p.131), 골목을 거닐며 어머니가 부르던 <작은 별>(p.126)과 영희와 찬석이 부르던 작은별(p.131), 그 모든 퍼즐이 단번에 맞춰진다.

 

스토커가 아들인 사실도 놀라운데, 그가 현재를 바꾸기 위해 택한 선택이 바로 그 벗어나고 싶은 현재를 만들어내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그 벗어날 수 없는 시공간을 뛰어넘은 아이러니가 예상치 못한 순간 밝혀지자, 이때까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쌓아왔던 독자들의 모든 긴장감과 짐작이 무너지며 충격이 전해진다. 그 충격은 가정의 비극에 담긴 고통과 슬픔과 무력감, 그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함께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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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가 세 번째 시간을 되돌릴 때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또다시 새로운 파국을 맞이한다. 마침내 영희가 되돌린 시간과 세호가 되돌린 시간이 만나는 순간, 영희는 자신이 낳을 아들을 죽인다. 안 그래도 스토커가 세호여서 놀란 독자들은 또 한 번 충격과 안타까움에 휩싸인다. 현재에서 “어머니가 나를 모른 척 한(p.119)” 이유가 다름 아닌 과거 어머니가 보았던 스토커의 얼굴, 바로 아들의 얼굴 때문이었다니. 세호가 현재를 바꾸기 위해 현재에서 되돌렸던 시간들뿐만 아니라, 영희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과거에서 되돌렸던 시간들 역시 결국 비극의 피바다가 된 현재를 만들어버린 원인이 되어버렸다.

 

운명을 바꾸기 위한 이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이렇게 운명적인 장난처럼 맞물려 오히려 피하고 싶었던 운명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희는 찬석의 목숨을, 세호는 영희의 행복을 바랐다. 그러나 세호가 영희의 행복을 바라고 마지막 카드로 선택한 스토킹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운명으로 이끌었다. 영희가 찬석의 목숨을 바라며 선택한 마지막 노력은 그녀가 평생 자기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악마는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아무것도 모른 채 대결을 펼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겼다. 그는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지켰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녀가 필사적으로 막아냈던, 남자친구를 베려 했던 바로 그 과도는 먼 훗날 남자친구의 손에 들려 결국 그녀 자신의 목을 베어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든, 어디서부터 막으려 노력했든 그들의 운명은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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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효과


이렇게까지 아이러니하고 기구한 운명적인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속에서 복잡하게 얽히며,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 자신들을 단단히 가두고야 만다. 앞으로의 선택은 전해 들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된다. 끔찍한 비극은 누구 하나 비난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고착화되어버린다. 차라리 과거에서부터 시간순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모를까, 시간을 뛰어넘어가면서까지 과거를 바꾸어보려 애썼던 그 절실함이 오히려 비극의 원인이었다는 점이 더욱 절망을 단정해버린다.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철저하게 차단당한 이 가족들은 그렇게 각자 스스로의 손으로 함께 파멸을 만들어가며 돌이킬 수 없이 곪아간다.

 

이 절망적이고 복잡한 이야기 자체가 가정의 불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아닐까. 처음부터 서로를 죽이려고 만난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어느 새부터인가 영희와 세호의 이야기처럼 끔찍하게 얽혀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행한 운명을 확정 지어 버리는 운명의 장난 같은 아이러니가 바로 가족의 불행 아닐까. 우리는 쉽게 남의 깊은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가까워서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일 수 있고, 서로를 더 위하는 마음이 오히려 서로를 찔러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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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켜버린 상태로 남들보다 단단하게 묶여버린 실타래를 감히 풀 수 있을까? 누가 가정의 불화는 노력만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은 시간을 뛰어넘고 교차되는 인물의 관점을 통해 전개되며 결코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한다. 필자는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덕분에 이 가족들의 문제에 더욱 이입하고, 그들의 감정에 대해 훨씬 더 면밀히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잔인한 소설의 구성 덕분에(?!) 독자들이 쉽게 단정짓지 못한 채 더욱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영희의 기억을 통해, 남편을 현재의 괴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 사실은 이 이야기를 가볍지 않게 만든다. 우리는 영희의 노력을 보며 가족 중 누구 하나 편하게 비판할 대상을 찾아 안주하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을 오롯이 지켜보며 그 가족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차라리 ‘곧 괜찮아질 거야’ 라든가, 아니면 ‘이럴 팔자야’라고 체념하는 편이 쉬울 만큼 사랑했던 기억, 소중했던 기억, 힘들게 지켜냈던 기억은 영희를 쉽게 비난할 수 없게 만든다. 바로 영희의 그 기억은 결국 세호가 지우려 애쓰려는 기억이자 애쓰는 세호로 인해 만들어지는 기억이다.

 

그 모든 과거와 현재의 세호와 영희의 감정과 기억과 선택들이 교차되는 과정을 온전히 함께할 때, 독자들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 가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 가족의 운명은 함부로 단번에 재단할 수 없다고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안에 어떤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있는지, 정말로 아무도 해결할 수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나머지 이야기는 3탄에서 계속됩니다. 마지막 3탄까지 기대해 주세요.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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