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 [도서]

배우 손수현 X 뮤지션 신승은 두 여성 창작자의 비건 밥상 일기
글 입력 2022.04.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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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는 배우 손수현과 뮤지션 신승은이 번갈아 나누어 쓴 비거니즘 에세이로, 단계적 채식을 시작으로 비건을 지향하기까지 6년에 걸쳐 이어진 두 사람의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 담겨있다.

 

 

애초의 계획은 친근한 비건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봄나물, 두부구이, 일상적이고 친근한 비건 음식을 번갈아 소개하며, 비건으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고찰이 여성이자 인간 동물, 프리랜서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일로 넓어지고 깊어졌다.

 

- 보도자료 中

 

 

책 이름을 잘 지었다 생각한 지점은 책의 ‘구성’ 때문이었다. 책은 크게 A side와 B side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책 제목 '밥을 먹다가/생각이 났어' 그대로  A side(밥을 먹다가)에서는 <먹는 일>에, B side(생각이 났어)에서는 <사는 일>에 집중하여 내용을 전개한다.

 

전반부 이야기(A side)에서는 ‘어떻게 하면 비건으로서 잘 먹고 살 수 있을지’를 보여 준다. 봄나물, 두부구이, 김밥, 감자볶음, 잡채, 수제비, 겉절이 등의 비건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이때 두드러지는 두 사람의 개성 강한 문체가 특징적이다. 이때 에피소드의 끝자락마다 소재가 되었던 비건 음식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레시피 다이어리>와 함께 바로 아래 짧게 덧붙여지는 <메모>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앞서 몽글하면서도 유쾌한 농담이 담긴 에피소드로 가볍게 오감과 감성을 자극했다면, 이어지는 후반부 이야기(B side)에서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며 많아진 생각들을 바탕으로 짙어진 삶의 방식과 철학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직설적으로 담아낸다. 어느 날 느닷없이 생겨 버린 알레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식을 시작하게 된 사연부터 오랜 정체기 끝에 비건 지향으로 나아간 계기, 비건 메뉴가 부재하는 촬영 현장과 동물 학대를 방관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구체적인 경험담을 담아냈다.

 

 

 

A side - ‘밥을 먹다가’ <먹는 일>



책에 담긴 모든 비건 음식과 식자재들은 그것대로 두 사람의 일상과 아주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특히 이 책의 매력은 오감을 섬세하게 자극하는 두 사람의 개성 강한 문체에 있다.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그려지는 봄나물, 두부구이, 김밥, 감자볶음, 수제비, 겉절이에는 재료가 가진 긍정적인 면모가 있다. 식재료 하나하나가 하나의 인격을 가진 것 마냥 살아 숨 쉬고 나도 모르게 그것들의 순수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모든 식자재는 아이 같다. 뭐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본연의 질감을 가득 지녔기에 가질 수 있는 순진무구함이 그러하다. 본질이 세상과 만나 멋지게 상호 작용을 할 때 그 시너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깻잎과 한 몸인 들깨를 빻고 짜서 만든 들기름과 콩을 갈고 짜내 탄생한 두부의 조합은 고소하다. (p.36)

 

김밥은 알고 보면 조화롭다. 무엇보다 저렴하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데 게다가 무려 밥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든든한 서른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이다. 흰쌀밥에 배어든 소금의 짭짤한 맛과 나물 본연의 웅숭깊은 맛이 조그맣게 씹힌다. 소스를 곁들여 먹을 때도 있으나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충분히 맛이 좋다. 김밥 속 재료 한 가지가 두드러지면 그 김밥의 정체성이 된다. 그래서 참나물 김밥, 우엉 김밥, 유부 김밥, 당근 김밥…… 무궁무진하다. 원한다면 누구든지 주인공이 되어 이름을 꿰찰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김밥이 되고 싶다). (p.49)

 

 

들기름 두부구이에서는 들깨의 잎사귀인 깻잎과 두부의 원재료인 콩을 생각한다. 김밥에서는 다채로운 맛을 뽐내는 서른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고, 맛을 좌우하는 다양한 속 재료를 하나씩 상상하게 한다. ‘괜히’ 그것들의 맛이 연상되고, ‘괜히’ 따라 먹고 싶어진다. 내가 만든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며 나의 인생도 곱씹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재료가 가진 긍정적인 면모를 나의 인생에도 적용해 보기를, 나도 그런 나물이 되기를 꿈꿔 본다.


 

김밥을 한입 베어 문다. 오물오물 씹으며 생각한다. 그냥 반찬이 되는 건 영 재미없고 비벼지는 건 또 싫으니까 꼼꼼하게 말린 김과 밥 속의 조화로운 나물이 되어 볼까 보다. (p.50)

 

 

 

B side - ‘생각이 났어’ <사는 일>


 

<비거니즘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두 사람의 진솔한 생각이 묻어나는 몇 문장들을 담아본다.


 

트러플은 멧돼지를 착취해서 얻는구나. 그래, 꿀은 벌을 착취하지. 팜유를 얻기 위해 숲을 제거해서 멸종 위기 동물들이 사라졌구나.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마음속에서 반사적으로 <그럼 뭐 먹고 살아>가 튀어나왔다. 사람답지, 참 사람답고도 인간적이다. (p.130)

 

아무런 조건 없이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은 없다. 나의 편안함은 동물의 목숨이었다. (p.151)

 

에이, 맥주나 와인은 다 비건 아닌가요? 나도 처음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근데 부유물을 거르는 과정에 생선 부레가 사용될 줄이야. 부레라면 공기 주머니? 단지 침전물을 거르기 위하여 바닷물이 아닌 술 위에 둥둥 떠있게 된 누군가의 공기 주머니를 떠올리면 내 숨이 차오른다. (p.168)

 

누군가 고양이를 <마리>라는 단위 명사로 세는 것이 이상하다 했다. (중략) 고양이, 강아지, 돼지, 소 가릴 것 없이 동물이라는 대명사에 묶이고 인간만이 분류된다. 나랑 네가 있으면 우리는 두 명이 되고, 너랑 내가 있으면 인간 한 명과 고양이 한 마리가 된다. 그러니까 의미 없는 종이 쪼가리 위에 너랑 내 이름이 나란히 놓일 일 따위는 없을 거라는 절망이다. (p.190)

 

편리함을 위한 구분은 다르게 인식되고, 다른 것은 종종(거의 대부분)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난다. 개를 발로 차는 인간은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끝나지만, 인간을 물어 버린 개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 것처럼……. 운이 좋았다. 내가 쉽게 죽지 않는 건 운 좋게도 인간이어서, 그뿐이다. (p.191)

 

 
 
두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 - <믿음> 그리고 <계속 이어짐>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지지하는 운동에 늘 뒤따르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어쩌다 그 가치를 지향하게 되었는지> 출발점에 대한 호기심과 <어떻게 계속 그 가치를 실천하는지>지속성에 관한 의문이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의 비거니즘 체험기로 답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생겨 버린 알레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채식을 시작한 손수현은 먹을 것이 바뀌면서 생각이 바뀌고,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 말한다. 동물이 생명임을 감각하자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동물권 단체 <카라>에서 일하며 학대당하는 동물들의 실태를 알게 된 신승은은 '페스코(생선과 우유, 달걀 허용)를 지향하는 삶은 육류를 지양하는 삶이 아니라 어패류를 많이 섭취하는 삶으로 변질되었음'을 깨닫고서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비거니즘을 지향하면서 공통적으로 체득한 사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점점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여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의심할 수 있게 되었고 뿌옇던 시야가 또렷해졌으며, 단지 먹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일, 게으른 언어의 혐오를 털어 내는 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비건 지향'이라는 가치를 지켜가며 체득한 감각과 진득한 생각이 담긴 두 사람의 생생한 체험기는 누군가에게는 비건을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더 나아가서는 계속 비건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연대의 의지를 북돋아 줄 것이다. 특히 어떻게 비건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래서 비건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이다. 일단은 이 책에서 두 사람의 문장이 던지는 대화를 이어가보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호기심이 아니라 무심함이 무언가를 죽인다. 인식의 채가 있어서 내 생각과 언어의 혐오를 탈탈 걸러 주면 좋겠지만 이 또한 게으른 생각이다. 게으름이 무언가를 해할 것이다. 이 생각의 과정에 우울한 죄책감만 꾹꾹 찬 것은 아니다. 어떤 표현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걸 아는 순간 갑자기 상상력이 생기는 기분이다. 그렇네, 항상 상상력과 죄책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밖에. 그리고 뚫리지 않았나 틈틈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는 수밖에. (p.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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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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