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19와 우리 사회 [사람]

글 입력 2022.04.0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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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의 정점이 지나갔다고들 한다. 만 2년 동안 우리는 수없이 여러 번 종식에 대한 희망을 품어왔지만, 아마 이번이 가장 크고도 확실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까지의 수많은 예측과 지금 번의 것이 다른 이유는 결국 경험과 수용 때문일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확진이 극히 드문 케이스였던 반면, 지금은 본인 혹은 주변인이 확진된 경우를 못 본 사람이 더 적다.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라는 질병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코로나19를 몸소 경험했고, 코로나19에 어느 정도 노출되는 것을 수용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약화된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변화한 것도 엔데믹에 가까워지는 데에 일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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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창궐한 후 2년은 우리를 단절시켰다. 회사 동료들부터, 친구들, 가족들까지 만나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처음에 이러한 단절은 우울감으로 찾아왔다. 그동안 맺고 있던 관계들이 당장 집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로 좁아지자 사람들은 헛헛해했고, 외로워했다. 남들과 만나는 사회적 경험과 외출의 단절로 일상의 특별한 경험은 제한됐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은 과도하게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것에 대한 우울함을 호소했으며, 심지어는 지금 지난 2년을 돌아봤을 때 집에서 매일 똑같은 나날들을 보냈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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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단절과 우울감이 익숙해져 이제는 코로나19 이전의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장 내 주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오래 외출을 하지 않다보니 약속이 잡히면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사람을 만나는 데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점은 단지 개인의 인맥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을 넘어, 각자가 모여 있는 공동체, 전체 사회에 변화를 불러왔다.

 

코로나 이후의 한국에서는 나와 다른 성별, 나이, 직업의 사람들을 접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성별 갈등, 장애인 대 비장애인 등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충돌은 여느 때보다 심하다. 이런 갈등은 어차피 커지는 수순을 밟고 있었으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 격화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서로를 잃어버릴 기회를 잃어버렸으며, 이제는 기회가 있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뎌져 가고 있다. 이해를 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명분이 있다면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적어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는 ‘N번 확진자’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초기, 질병관리청에서는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들의 동선을 공개하는 방침을 취했다. 언론에서는 그저 시민의 한 사람뿐일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적으로 보도했고, 심지어는 그들의 행적을 비난했다. 확진자가 극소수였을 때는 그들의 신원이 추적되어 전국적으로 매도를 당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질병의 위기 속에 빠뜨린 확진자들을 마구 헐뜯고 욕했으며 그들의 건강과 사정에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tv와 인터넷 너머에 있는 가상의 존재처럼, 같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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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막상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감염자가 더욱 가까운 사람이 되자 이렇게 확진자를 죄인시하던 분위기는 서서히 사라졌다. 지금은 너도나도 걸리며 빨리 걸리고 낫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초기 확진자들을 너무 쉽게 비난했고, 그 비난을 너무 쉽게 잊었다. 그리고 지금은 확진자가 아닌 다른 특정 집단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N번 확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실제와 상처를 굳이 상상하지 않는다. 나, 혹은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관계적 사고를 버리고 비난을 퍼붓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대상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정서적 공감은 사치인 듯하다.

 

가끔 코로나19 이전의 사회와 변한 지금을 비교해보면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결국 서로 만나고 대화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갈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때 이미 이제까지 개인이 겪었던 우울과 불안은 물론 비난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잊혔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질병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초기 정부 대응이 과잉이었다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도, 어떠한 정치적인 견해도 표출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사회적으로 코로나를 보는 시선이 마구 바뀌는 시간 동안 그 속에서 갈팡질팡하던, 이제는 다시 단단하게 설 방법을 찾아야하는 우리를 돌아보고 싶다. 엔데믹을 맞이하기 전 잠깐의 시간 동안이라도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행동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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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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