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여기, 우리 삶을 빛나게 하는 것들 -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공연]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
글 입력 2022.04.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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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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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연극이 1인 극이라니.

 

이런저런 공연들을 꽤 많이 보러 다녔지만 연극은 처음이었다. 공연장에 입장해서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거리를 보고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을 마주하고 연기해야 한다니,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라도 관객석 쪽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다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배우의 몰입이 깨져 실수를 하게 되면 어쩌나 마음 졸이기도 했다.

 

괜한 걱정과 함께 극이 시작되었고,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배우는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차분하고 명랑하게 극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단출한 무대 세트만 가지고도 그녀는 장례식 후 삭막한 로리의 집을, 탐험가로서의 평생 품어온 꿈이 담긴 로리 아빠의 서재를, 심지어는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배우도 가보지 못했을 북극의 풍경마저 내가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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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교사였던 로리의 아빠는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십 대 소녀인 로리는 아빠가 오래 품어왔지만 생전 이루지 못한 북극여행이라는 꿈을 이루어 주고자 무작정 아빠의 유골함을 들고 북극으로 떠난다.

 

북극으로 가는 여정에서 많은 우연한 일들이 로리 앞에 펼쳐진다. 무모하게 혼자 떠났던 북극 여행이었지만, 끝엔 엄마와 함께였고, 엄마와 로리는 아빠를 북극에서 잘 보내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이라는 소재를 로리라는 명랑한 캐릭터로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낸 연극이었다. 죽음을 알아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필연적이기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여전히 피하고 싶은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나의 죽음보다 더 피하고 싶은 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빈자리를 느끼며 원래의 일상을 다시 살아가는 고통은 상상하는 것도 힘들다. 떠난 사람을 충분히 애도하고 남은 사람들은 남은 시간들을 잘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잘 끝맺는다는 것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빠에게 북극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배낭 하나 메고 떠난 로리의 그 순수하고 무모한 용기 덕분에 그 과정이 무겁지만은 않게 느껴지고, 오히려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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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말도 없이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로리의 여행에는 수많은 우연과 인연들이 함께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더라면. 로리는 아마 아빠 유골함을 가지고 북극 상공을 날지 못했을 수도 있다. 수많은 이야기와 모험들이 모여 로리는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따뜻한 연대와 사랑으로 가득 찬 우리의 삶. 각자의 북극, 각자의 의미로 반짝거리는 삶!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 나를 지지하고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확인하며 나의 첫 번째 연극은 그렇게 끝이 났다.

 

뒷부분의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다시 제자리로 잘 돌아가 일상을 잘 살아갈 로리의 모습이 상상되어서 연극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이 좋았다.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로리의 앞으로의 나날에도 많은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아주 머나먼 곳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을 로리에게 연대를 보낸다.

 


[정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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