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려 기제로서의 바느질 [미술/전시]

루이스 부르주아와 바느질의 관계성 탐구
글 입력 2022.03.3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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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소개할 작가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루이스 부르주아이다.

 

그녀는 파리의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훗날 자신의 아버지를 전제군주라 일컬을 만큼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행복하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말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진로를 바꿔 에꼴 데 보자르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페르낭 레제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1938년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처음부터 조각을 작업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초기에는 드로잉과 판화 등 평면작업을 위주로 하였으며, 194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조각을 시작한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에는 수직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추상 경향을 선보였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는 석고, 라텍스, 수지, 고무로 만들어진 유기체적 추상 작품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신체와 성적 내용을 강하게 암시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한편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사실적인 묘사와 표면처리에 의한 초현실적인 대리석 조각을 제작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기성 오브제와 목조, 석조가 혼합된 대형 설치작업에 착수한다.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하고, 1993년 80세가 넘는 나이에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미국 대표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특징은 대립적인 여러 양식들이 중첩 및 확산되며 과거의 모티프들이 새 작품의 맥락에 계속 흡수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신체와 성적인 모티프 사이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이를 통한 삶의 기억에 의존한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안에 어린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불륜과 글로 인한 적개심, 어머니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통해 형성된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풀어내며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인간사에 대한 모순과 애틋함은 삶의 자전적인 파편들에서 기인한다.

 

노년에 들어 루이스 부르주아는 삶의 의미와 철학을 바늘이라는 형상으로 구체화한다. 어려서부터 바늘로 태피스트리를 복원하거나 스티치 기법을 활용하여 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바늘의 매력과 마술적 힘에 매료되어 있었다. 찢어지거나 낡아 손상된 부분을 치료하는 도구이자 파괴된 물건을 재생시키고 원래의 기능으로 회복시키는 바늘의 특성을 살려 그녀는 스티치 기법을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에 도입한다.


Ode à l’oubli(2002)는 그녀가 90세 되던 해에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옷과 생활용품을 자르고, 배열하고, 꿰메어 만든 32장의 페이지와 2장의 텍스트 페이지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그녀가 직접 사용하던 물품에 스며들어 있던 사적이고 내밀한 기억들은 직물이 해체되고 재배열되는 과정 중에 삭제되고,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사물적 기능을 획득한다. 그녀의 ‘망각’이 도리어 누군가에게는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할 수 있다. 이로써 그녀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망각과 기억의 역설적인 공존을 드러내는 한편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궤적에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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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Y

 

 

루이스 부르주아는 2000년대 이후 헝겊에 자신의 사유를 찍어내는 작업에 깊이 빠져든다. Spider(2007)는 그녀가 오래된 천에 자신의 주요 소재 중 하나인 거미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연대감 등 유년의 기억을 토대로 복합적 감정들을 거미의 이미지로 가시화하는데,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표상한다. 그녀에게 거미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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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uise Bourgeois Trust.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Christopher Burke

 

 

“나는 수선공 집안에서 태어났다. 거미는 수선공이다. 만약 당신이 거미줄을 뭉갠다고 해도, 그녀는 화내지 않는다. 그녀는 거미줄을 다시 짜고 수선한다.“ - 루이스 부르주아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거미란 자신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투영체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경험한 양육과 보호, 그리고 강인함은 그녀가 힘겨울지라도 계속해서 삶을 살아나가게 하는 소중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깊은 애정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대표작인 거대 거미 조각 시리즈의 연장선이라 불린다. 백색이 상당히 가미된 파스텔 색상의 사용은 그녀의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백색은 아무것도 없는 비워진 색이자 모든 것이 채워진 완성의 색이다. 그녀는 백색에 순수와 불안이 공존한 채 내재하듯 과거의 상처 또한 우리의 내면에 그러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에게 암시한다.

 

Self Portrait(2009)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자전적 기록물로, 일생동안 그녀의 신체적·정신적 발달 양상을 표상하는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24개의 숫자 하단에 놓여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임신한 실루엣의 여성,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손, 거미 형상 등을 포함하며 그녀가 트라우마를 평생 완벽히 극복할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부정적인 잔상을 지우려는 모든 부단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자신의 생에서 언제나 함께하였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중심을 견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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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aston Foundation Hauser & Wirth

 

 

바느질이 수반하기 마련인 치유적 속성에 기대어 지치는 순간마다 다시 힘을 얻던 루이스 부르주아. 그녀에게 바느질은 단순히 수선 기법의 차원을 넘어 삶에 무게에 휩쓸리지 않게끔 스스로를 지탱해 주는 나름의 기제였던 것 같다. 우리 모두 그녀처럼 마음속에 기꺼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하나쯤은 존재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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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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