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설인 듯, 현실 같은 이야기. - 헬프 미 시스터

글 입력 2022.03.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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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의문점이 생겼다.


‘그럼, 그런가 보지.’는 ‘왜?’로 바뀌었다. 세상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데, 안일하게 흘러갔다. 이를 명쾌하게 정리한 것은 안서현 문학평론가의 ‘이 곳은 무해한 척 유해한 세상이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한여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의 쾌감이 느껴졌다. 그 문장의 영향으로 도서 「헬프 미 시스터」에 관심이 생겼고, 이서수 작가가 그린 무해한 척하는 유해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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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작가의 「헬프 미 시스터」는 ‘수경’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점도 그려내서 각 인물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성별, 나이, 성격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경은 동료가 준 음료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동료는 잠든 수경을 모텔로 데려갔고, 이를 수상히 여긴 여사장의 신고로 더 큰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졸피뎀이 들어간 음료를 준 동료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사건은 미수에 그쳐서 다행이었지만, 당할 ‘뻔’한 일을 겪은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충격이다. 수경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네 달 동안 쉬었다.

 

하지만 돈은 벌어야 하고, 사람을 대면하는 건 어려우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긱’이라는 배송 플랫폼을 알게 된다. 배송은 목적지에만 잘 배달해주면 되고, 요즘은 거의 문 앞에 배송해달라고 하니 고객을 마주칠 일도 없다. 문 앞 배송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물건만 받고 문 뒤로 사라진다. 고객들은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니 괜찮을 거라며 배송 일을 하게 된다.


아파트 경비원과 마주해야 할 일이 생기자 수경은 배송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헬프 미 시스터’라는 플랫폼을 알게 된다. 업무는 무엇을 해주거나, 물건을 옮겨주는 등 의뢰인의 심부름을 해주는 것이다. 여성만 일할 수 있으며, 의뢰인도 여성이다. 모두 여성이라면,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다시 품은 수경은 ‘헬프 미 시스터’라는 플랫폼을 통해 일을 하게 된다.


수경뿐만 아니라 수경의 가족들은 플랫폼을 통해 돈을 번다. 그들이 플랫폼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는 일들을 조미료 없이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플랫폼 노동자.



실시간 라이브를 돌려보다가 배송, 배달기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방송을 보게 됐다. 연봉이 높은 직업으로 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요즘 같은 상황에 더 중요한 존재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부터 힘들었던 순간, 억울하거나 화가 났던 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열악했던 과거부터 조금 나아진 현재, 시스템 등 배송과 배달 업무에 대해 자세히 말해줬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들은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에 필요한 것도 본인이 알아서 준비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가 된다는 것은 멀리서 보면 좋은 조건일 수 있으나,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다. 사업자이기에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있다. 노동자는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비품을 회사에서 제공해주지만, 사업자는 본인이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 결국 일을 하기 전부터 많은 지출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자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헬프 미 시스터」에서 나온 것처럼 무늬만 사업자일 뿐, 근로자나 다름없는 노동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플랫폼 노동자의 실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플랫폼 노동자는 트렌디한 직업이 되었다. 하지만 대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플랫폼은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요즘 돈 많이 버는 직업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겉 보다는 속을 보려는 시선이 필요하다.

 

 


디지털 문화.



디지털 기술이 발달되면서 어느새 우리의 일상과 디지털은 하나가 되었다.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그 이면에는 소외되거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세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헬프 미 시스터」에서 양천식과 여숙은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웠는데도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어쩌지 못했다. 얼떨결에 주문은 성공했지만 원하는 메뉴 대신 엉뚱한 메뉴를 주문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됐다.


키오스크는 비대면이고, 편리해서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매장에서 내 앞의 앞줄에 있었던 중년부부를 보고 누군가에겐 불편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부부는 한참동안 메인화면을 바라봤다. 중년남성은 용기를 내서 이것저것 눌러보더니, 아내에게 그냥 다른 거 먹자고 말했다. 원하는 메뉴를 찾지 못한 듯 보였다. 그 아내도 눈치 챘는지, “그러지 뭐,”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친절하지 않다. 키오스크는 대중화가 되었고, 무인카페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안내해줄 사람이 없다. 디지털 문화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함께 어울리고,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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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인권.


 

「헬프 미 시스터」에는 여성이 느끼는 부당함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수경은 범죄를 당할 뻔했고, 억울하고 분하지만 묻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성과 대면하지 않는 일을 했다. 피해자지만, 피하고 숨었던 수경은 이야기 마지막쯤에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왔다. 그 사건을 들춰내서 맞서 싸우는 극적인 전개는 없었지만, 그녀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여숙은 ‘여자는 ~해야 한다.’ 라는 말을 따라야 했던 시대를 살았다. 순종적인 자세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했다. 한 번도 저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숙은 운전을 배우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면서 자신감을 가진다. 소위 말하는 옛날 여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기 내어 한 발짝 내딛는다.


보라와 은지는 수경과 여숙에 비해 당차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숨지 않고, 맞서 싸운다. 네 사람 모두 살아온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의 인권을 찾고 자신을 지킨다. 그 모습을 보니 같은 여자로서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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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드러난 현 시대의 유해함은 꽤 많았다. 그에 의해 피해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하지만 양천식과 여숙은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에 다시 도전하고, 성공했다. 디지털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었던 은지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수경은 피하거나 숨지 않았고, 보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여숙은 부러워했던 요즘 여자로 거듭난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소설이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현실에서 능숙하게 키오스크로 메뉴 주문을 하는 중년도 봤다. 인권을 지키고, 목소리를 내는 여성도 봤다.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환경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를 바로 보고 개선하고자 한다면, 현실에서도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희망을 「헬프 미 시스터」를 통해 다시 품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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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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