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영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 2001)
글 입력 2022.03.25 18: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받는 선물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갖는 관심이다. 세상의 모든 좋은 뜻을 한데 모으려는 부단한 노력이며, 상대방이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 되뇌는 주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이름은 그 주인을 향한 타인의 마음들로 가득하며, 이름을 짓고, 부르고, 기억하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가장 작고도 커다란 '선의'다.

 

지브리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다. 센이 된 치히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이름, 즉 누군가가 자신에게 베푼 선의를 기억해 내고, 이로써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치히로가 베푼 선의는 다시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이들은 치히로가 또 다른 고난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요컨대, 선의는 그 자체로 욕망으로 가득한 신들의 세계를 헤쳐나갈 원동력이다.



치히로 1.jpg

 

 

영화는 시종일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과 선의를 강조하는데, 치히로의 친구가 그에게 준 꽃다발과 엽서를 클로즈업하는 첫 장면 역시 이를 잘 드러낸다. 치히로를 아끼는 친구가 준 이별의 선물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신들의 세계로 가게 된 치히로가 그곳에서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치히로와 그의 부모님이 우연히 발견한 신들의 세계는 지나치게 아름답다. 그러나 그 외적인 신비감과 달리 신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는 지극히 세속적이다. 이곳의 존재들은 쾌락이나 돈, 혹은 생존을 향한 욕망으로 움직이며, 교환이나 계약처럼 날것의 욕망을 세련되게 다듬은 자본주의적 규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이 세계에서 손님은 재화로, 인부는 노동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거나 존재가 소멸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질서를 모르고 무전취식을 한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했고, 치히로는 존재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는다. 하쿠가 치히로를 곧장 유바바의 온천으로 데려간 것 역시 이 세계에서는 노동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모든 인물이 욕망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하쿠는 치히로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온천으로 들여보냈고, 가마 할아범과 린은 치히로가 온천의 주인 유바바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에도 한 줌 선의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바바는 이들과 다르게 치히로에게 일자리를 주는 대신 그의 이름을 뺏고 센이라는 이름을 준다. 선의와 욕망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세계에서 선의를 베풀 힘이자 인간성의 근원인 이름을 빼앗긴 치히로는 질서를 따라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거의 잊어가던 치히로는 소지품에서 우연히 친구의 엽서를 발견하고, 그걸 읽으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자신을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을 통해 잃어버린 이름을,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인간성을 회복한 셈이다. 치히로는 모두가 피하는 손님인 강의 신에게 대가 이상의 선의를 베풀고, 은혜를 입은 신은 그 보답으로 치히로에게 신비한 힘을 지닌 경단을 주고 떠난다. 이는 이 세계의 일반적인 규칙인 '용역에 대한 합당한 대가의 지불'이 아니라 '대가 이상의 선의에 대한 보답'이자 선의의 순환이다. 치히로의 선의로 구원받은 강의 신은 치히로에게 또 다른 선의를 베풀고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하늘로 솟아오른다.

 

 

치히로 2.jpg

 

 

작품에서 물이 주로 수직적인 규율과 질서를 시각화(내리는 비, 떨어지는 온천수)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음을 생각하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물은 치히로의 선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는 장치로 읽힌다. 물은 세계의 질서와 치히로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집약하는데, 치히로가 강의 신에게 선의를 베풀자 아래로 쏟아지던 비가 아름다운 수평의 바다를 이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치히로가 사경을 헤매는 하쿠를 구하기 위해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를 찾아갈 때도 바다(와 열차)가 지니는 수평의 이미지가 강조되는데, 제니바가 유바바의 안티테제임을 생각하면 비와 바다가 의미하는 바는 한층 분명해진다.

 

치히로가 제니바에게 향한 사이 무사히 깨어난 하쿠는 치히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유바바와 담판을 짓는다. 이후 하쿠는 치히로를 찾아 제니바의 집으로 향하고, 둘은 제니바의 집 앞에서 다시 만난다. 결과만 놓고 보면 치히로의 모험은 큰 의미가 없었던 셈이 되지만, 이는 서로를 향한 선의가 욕망과 질서, 규칙으로 가득한 이 세계의 인과를 끊어냈음을 의미하는 장면이다. 모험을 마치고 함께 돌아가는 순간 치히로는 하쿠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내고, 치히로가 흘린 눈물은 하늘로 솟구친다. 두 사람의 마음이 이 세계의 견고한 질서를 극복했음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인상 깊은 하이라이트다.

 

무사히 온천으로 돌아온 치히로는 부모님을 되찾기 위해 유바바와 마지막 내기를 한다. 규칙과 계약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 세계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바바는 치히로를 얽매기 위해 보기에서 정답을 없애는 꼼수를 쓰지만, 이미 이 세계의 절대적인 규칙에서 벗어난 존재가 된 치히로는 한눈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내기에서 멋지게 승리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치히로가 겪은 모험의 성과이기도 하다. 하쿠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났지만 이미 저주에서 풀린 하쿠가 치히로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부모님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내기에서도 부모님은 이미 저주에서 풀린 채 치히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방을 향한 지고한 선의가 세계를 짓누르는 지독한 인과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 하쿠를 구하기 위한 치히로의 모험은 마지막 시험을 위한 가장 큰 힌트였던 셈이다. 훌륭하게 정답을 맞힌 치히로는 자신과 선의로 이어진 온천 직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부모님과 함께 신들의 세계를 떠난다.

 

 

치히로 3.jpg

 

 

이 글에서는 욕망과 선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살펴보았지만, 영화는 이외에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의 서사 구조가 차용한 영웅 신화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고, 물질만능주의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상징들을 살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때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작품을 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글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해석은 아니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풍부한 레이어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런 복잡다단함이야말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 아닐까. 흔히 특유의 동화적인 작화를 가리켜 지브리 감성이라고들 하지만, 신비롭고, 의뭉스럽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미묘함이야말로 진짜 지브리만의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브리의 영화가 확고한 컨셉을 바탕으로 주제 의식을 일관되게 전달하는 디즈니나 픽사의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며, 침체기에 빠진 지금의 지브리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다.

 

 

[박호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2782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