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차갑고 텅 빈 장소 그 너머 -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그럼에도 삶, 그럼에도 사랑
글 입력 2022.03.2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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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런 식이다. ‘1인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정말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지리 교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따분한 이미지는 너무나 강렬하다. 그런 연극 속에서 북극이 나올 줄, 북극곰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작품은 그렇게 좁은 무대 위에서 끝없는 세계를 펼쳐나간다. 관객들은 줄곧 기다린다. 정말로 북극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주인공 로리의 아빠는 지리 교사였다. 그러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로리는 생전에 아빠가 자기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북극으로 아빠의 유골함을 들고 떠난다. 북극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후, 로리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말한다. 집은 그대로인데, 집에 다시 돌아온 나는 너무 달라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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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관람한 후 혜화역 광고판에서 발견한 공연 포스터. 

 

 

 

1. 로리가 떠난 이유 – 충분한 애도의 필요



로리가 북극에서 아빠의 유골을 들고 뛰쳐나가는 장면을 아마 작품의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밝고 힘차 보였던 로리는 북극곰이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에 차가운 얼음 위에서 처음으로 괴로움을 드러내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본인이 지금 북극에 있는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장례식 날 엄마가 혼자 슬픔에 잠겨있던 정원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아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서재가 딸린 그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즐거운 장례식장이라 말하는 지인들, 슬퍼하면서도 정작 부엌에 방치된 아빠의 유골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로리에게는 커다란 상처였다. 화장하기 전 아빠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할 만큼 모든 일은 로리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아빠는 로리의 아빠였는데도. 로리는 상처 때문에 떠나야만 했고,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로리의 여행은 이런 상처로부터의 ‘도피’인 동시에 자신만의 ‘치유’이기도 하다. 엄마는 정원에서 너무나 슬퍼하지만 로리가 그 슬픔에 공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로리는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에 오히려 상처를 받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엄마와 로리가 그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과 호흡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한 로리에게, 엄마의 커다란 감정은 위로가 아닌 부담 혹은 강요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함께 슬퍼할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프리다의 말에 로리는 애매한 웃음밖에 지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사람은 본인의 방식으로 본인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사람과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준다. 로리가 죽음을 애도하고 치유하는 방식은 엄마의 것과는 또 다르다. 그녀는 북극 여행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북극 여행이 바로 로리의 애도 방식이었으니까.

 

아빠를 잃고 난 상처를 애도하고, 표현하고 난 뒤에야 그녀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가족과 화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로리가 북극 여행을 간 진정한 이유는 사실, 상처로 인한 도피 내지는 충동보다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죽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치유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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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극이라는 장소



그렇다면 왜 하필 북극이었을까. 왜 로리의 아빠는 북극으로 떠나고 싶어 했으며, 왜 연극은 북극이라는 장소를 택한 것일까. 작품 초중반에는 로리가 북극에 가기 전 이야기하는 북극의 모습이 나온다. 로리는 북극이 온통 하나의 색, 하얀색으로만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북극의 또 다른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얼음의 수많은 구멍 속에는 온갖 사연이 들어있고, 탐험가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죽어 나갔다. 로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북극이 등장할 때 무대는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나 막상 북극에 간 순간을 보자. 로리는 엄마와 헬리콥터를 탄 후 마침내 북극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진짜 북극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흰색 얼음만 가득할 뿐. 로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는 한 일화를 말한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있었는데, 망망대해에서 ‘이곳이 타이타닉이 묻힌 곳이에요!’라는 말 한마디에 별다를 것 없는 바다를 보려 우르르 달려나갔다고. 북극이 바로 그와 같은 공간이다. 사람들은 북극을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곳이라 생각하며 신비롭게 여겼지만, 사실 그곳은 그냥 얼음의 망망대해였을 뿐인 것이다.

 

결국, 북극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 같은 곳이다. 실은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애꿎은 사람들만 그곳에 가 목숨을 잃은 어찌 보면 허무하고 삭막한 공간이다. 그러면 작품의 의도는 ‘그래, 북극이고 죽음이고 다 허무한 거야’라는 결론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비롭고 다채로운 북극 뒤에 숨겨진 진짜 북극의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어 작품이 유치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꾸미기][크기변환](22)눈을-뜻하는-수백-가지-단어들_공연사진_유주혜.jpg

 

 

북극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로리는 아마 어떤 환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북극에 도달하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거라는, 굉장히 특별한 공간일 것이라는 환상. 그러나 그 환상은 너무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로리는 북극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북극의 실체를 인식한다. 이때 북극은 북극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아마 죽음, 삶의 진실, 끝, 현실 등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못하는 막막한 곳이라는 사실을. 바로 그 환상을 현실로 마주했을 때, 그 모든 허무와 망망대해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로리는 아빠의 죽음을 온전히 그 자체로 인식하고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죽음에 특별함을 덧입히지 않고서도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제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모든 북극에서 비롯된 설화와 그곳에서 잠든 사람들과 로리와 아빠의 꿈은 본래의 의미를 갖는다. 그 모든 허무를 알고도 계속해서 북극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탐험가들을 기억할 때, 그 모든 조각들이 아름답게 세상 속에, 로리의 기억 속에 흩뿌려진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 모든 것이 끝을 맺지만 영원히 박제되는 곳에 로리는 아빠를 자유롭게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로리 아빠의 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로리의 마음속을 환하게 밝힌다. 가장 현실답지 않은 제5의 북극, 천구의 북극으로 흩어짐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삶 혹은 죽음의 민낯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북극이라는 곳에서 일상은 더욱 특별해지기도 한다. 평범해 보이던 감자칩 한 조각, 따뜻한 코코아 한 잔에 세상 전부를 얻은 것처럼 행복해진다. 죽음의 허무함을 인식하고 나서야 삶에 진정으로 열정을 쏟는다는 어느 과거의 철학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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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재미있는 점은 로리가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그녀는 이러한 말이 사실 그냥 사람들이 지어내고 부풀린 것이라 한다. 작품의 제목에 쓸 만큼 중요한 말이 사실은 그저 헛소문에 불과했다니 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위에서 말한 ‘북극’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허무함과 죽음의 장소를 인식하고 난 후에 오히려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폭넓게 받아들이게 되었듯,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이 아무리 텅 빈 실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연극을 보고 난 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저마다 눈을 뜻하는 여러 단어가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았을 것이다.

 

꿈, 희망, 치유, 애도, 아픔, 죽음, 자유, 허무 등등 수많은 말이 필자의 가슴속에도 피어났지만 역시 마음속에 남은 가장 큰 단어는 사랑이다. 마지막 로리가 읊는 명언에서 등장하듯, 사랑은 상처 위를 소복이 덮어 치유하는 눈과도 같다. 매섭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결국 사랑으로 사람은 또 살아가게 되기에, 사랑은 눈을 뜻하는 한 단어다. 그렇게 그 모든 아픔과 쓸쓸함에도 당신을, 당신의 삶을, 당신의 꿈을, 당신의 가족을, 혹은 다른 그 무엇을 사랑하며 살자고 로리는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연극을 감상한 후 당신에게 남은 ‘눈을 뜻하는 단어’는 무엇이었는지 찬찬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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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감상하기 전 찍은 포스터 사진.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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