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연과 다시 친해지는 중입니다 [문화 전반]

비완벽한 비건 지향인이자 반려 식물 집사의 삶
글 입력 2022.03.2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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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비건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반려 식물을 키우는 시골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혹시나 비슷한 생활을 지향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제게 이로웠던 영상, 책, 유튜브 채널 등의 매체를 소개합니다. 글의 가장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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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동네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나에게 자연은 당연한 풍경이다.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산이 보이고, 그 색이 흐려지는 멀리까지 산줄기가 이어진다. 5분만 걸어 나가면 작은 강도 있고 10분 정도면 논과 밭, 산의 입구까지 갈 수 있다. 하나뿐인 고등학교에서도 10분 정도 걸으면 자연공원과 산이 바로 나왔다. 아, 그렇다고 가마솥에 밥해 먹는 미디어 속 시골을 떠올리지는 말아주시라. 나는 한 번도 가마솥을 써본 적이 없다. 가스레인지 쓰고, 마트에서 장보고, 카페 가고, 기본적인 건 다 한다. 너무 기본적이라 불만이 많지만.

 

어쨌든 이런 환경에 속해 있다 보니 마음이 복잡했던 고삼 시절에 저녁 시간마다 근처 공원을 걷곤 했다. 그 당시 회복의 기억은 강렬히 남아 지금까지도 그곳은 가장 애정 어린 공간이며, 산책은 취미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의식이 되었다.


뚜렷하게 무엇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연만큼은 당당히 손에 꼽을 정도로 애호가이다. 난 당연히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단 한 권의 책으로 나의 환상은 무너졌다.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읽고 난 후였다. 이토록 나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책은 없었다. 이 책이 소개한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지금까지 먹고 바르고 입었던 사소한 일상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착취당한 동물들이 있었다.

 

단 한 달 만에 항생제와 촉진제를 통해 자라나 부위별로 절단되는 닭, 비슷한 과정 속 돼지, 소, 오리 등의 생명들.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뱉어내는 압도적인 양의 온실가스, 그들을 먹일 식량을 위해 없어지는 어마어마한 숲과 땅, 현지의 수많은 식물과 동물. 그 구조는 굉장히 비대하고 착취적이라 ‘비인간 동물’(이슬아 작가의 표현을 빌렸다)뿐 아니라 권력의 아래 놓여 있는 ‘인간 동물’의 희생까지 요구한다. 그들의 삶을 빨아먹고 벌어들이는 이익 대부분은 대기업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착취는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그 수치와 영향력 또한 가시적이고 치명적이다.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착취적인 구조를 공고히 한 주체는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삶을 살기만 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해 결국 나는 이 구조의 소비자였다. 생활을 바꾸고 개선할 여지 또한 분명했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규제하고 조정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개인으로서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떳떳한 자칭 자연 애호가가 되기 위해 자연을 '어렵게'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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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변화는 채식이었다. 채식에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 사실 단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채식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어떤 층위를 선택할지 참고하는 정도로 사용하면 될 것 같다. 각자의 속도가 존재하며 모든 단계가 존중받아 마땅하다. 나는 비건 지향에 관한 칼럼과 책, 다큐멘터리를 본 후 완전한 채식만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비건’을 다짐했다.


당연히 육류 자체는 소비하지 않고, 물건을 살 때 제품 뒷면의 알레르기 성분을 보고 동물성 식품을 구별한다. 생각지도 못한 제품에서도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꼭 습관처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다, 굴 소스, 새우젓과 같은 조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채식 레시피를 보고 웬만하면 직접 해 먹는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들에 놀랐다. 비건을 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음식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재료만 달리해서 먹을 수 있거나 예상외로 비건이었던 음식도 많았다.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 것이 정 어렵다면 대체육 시장도 높은 질로 활성화돼있으므로 이를 활용하면 된다. 제육볶음, 갈비, 만두, 버터, 빵, 달걀, 마요네즈, 치즈 등 모든 걸 식물성으로 대체하여 즐길 수 있다. ‘진짜 동물’을 제외하고 먹지 못할 것이 거의 없다.


물론 항상 성공은 아니다. 아직은 가족을 제외하고 ‘비건 지향’임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깥 약속이 있을 땐 채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가능한 닭, 돼지, 소는 선택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또 가족과 같이 살기 때문에 육수나 육류 조미료, 작게 다진 고기를 사용하는 음식을 먹게 되기도 한다. 다만 온전히 내 의지만 반영이 될 때는 항상 채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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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슨 비건이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변명하자면 아직 비건 친화적인 문화와 구조가 잘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양육자에게 종속되어 있어서 나의 의견을 온전히 관철하기 어렵다.

 

하지만 절대 나의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0명의 덜 완벽한 비건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비건에게 철저한 완벽함을 바라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계속되는 자기 검열, 타인의 비난 때문에 마음이 망가지는 경우가 여럿 있다. 하지만 이상을 향한 마음을 품는 것, 자신의 속도대로 꾸준히 실천해보는 것, 그 과정에서 나를 해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기준이다. 선을 향한 마음에 완벽함을 바라기보다 느슨한 지지를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처럼 비건을 지향하다 보면 힘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금은 협조적인 양육자도 굉장히 염려하며 ‘그래도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 ‘채식은 부족한 식단이다.’ 같은 말로 의지를 무너뜨렸다. ‘그건 객기야’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 평소 영양을 고려하면서 식단을 하지 않는 이들이 어느새 전담 영양사를 자처한다. 살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모든 이유는 채식이었다. 내 인생 최저의 몸무게는 매끼 국과 반찬에 육류가 잔뜩 들어있던 군대에서 달성했는데도 말이다. 쉽게 타자화되는 상황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분명 발화 이전에 상대방의 의지를 존중하며 더 관심을 두고 공부해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건을 지향한다고 그렇지 않은 타인을 무조건 비방할 수는 없다. 자신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채식마저도 누군가의 희생과 착취가 동반되는 구조 아래에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는 하나의 생활 습관이지, 삶의 모든 요소가 아니기에 그 자체가 도덕의 판단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비건 지향인도 쓰레기를 남용하는 등 반환경적인 행동과 여러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이렇듯 최대한 부담을 느끼려 하지 않고, 생활 방식으로서 비건을 받아들이고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타투에 관심이 생겨 알아보다가 동물의 뼛가루를 이용하는 염료가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동물들은 계속 착취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젠 화장품, 옷 등을 살 때도 더 꼼꼼히 따져보기로 다짐한다. 그래야 조금은 당당하게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은 실천하지 않는 이들의 내면에도 비건을 지향하는 마음이 존재할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아직 꺼내놓지 못할 뿐이다. 이를 자신의 속도대로 차근차근히 드러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할 뿐이다.

 

*


비건을 지향하면서 변화된 것이 또 있다면 자연을 생명력 있는 주체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꽃집 사장이기도 해서 식물은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존재였다. 그들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저마다의 얼굴과 선과 성격을 가진 개체로서 말이다. 마침 식물 기르기가 유행했기에, 가족찬스를 사용해 새 식구를 무려 네 명이나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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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투키, 천국의 계단, 블루스타, 달개비다.

 

 

스투키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와 같이 사는 터줏대감이다. 천국의 계단은 분갈이 후 몸살을 앓아 계단(잎)이 전부 떨어져 버렸는데, 글을 쓰는 시점에 작은 꽃을 피워냈다. 장하다. 블루스타는 멋스럽게 뻗는 매력이 넘치는 고사릿과 식물이다. 달개비는 초록색과 보라색이 훌륭한 그러데이션을 이루는 신비롭고 귀여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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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테라다.

 

 

크기도 크고 방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친구다. 멀리서도 존재감을 보이는 몬스는 방 일부를 갤러리처럼 보게 하는 환각을 일으키곤 한다. 침대 옆에 자리 잡은 몬스의 잎을 아침에 비몽사몽 한 채로 만져보는 건 최고의 기상 루틴 중 하나이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같은 종류라 할지라도 생김새와 적응력, 관리 방법이 다 다르다. 반려동물과 살면 산책하러 나가거나, 아프면 병원에 간다거나, 맛있는 간식을 사주게 된다고 들었다. 혼자일 땐 나에게 쉽사리 해주지 않는 것들을 앞뒤 안 가리고 베풀어주게 되는 그 마음을 하루 만에 이해했다.


반려 식물과 함께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귀찮으면 100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커튼을 쳐놓는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 햇빛을 비춰주기 위해 창문을 열어 옮겨주고, 흙의 상태를 점검하여 말라 있으면 물을 푹 줘야 한다. 매일의 상태가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게을러질 수 없다. 덕분에 나도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아직 겨울의 찬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날도 있지만 내 자식을 위해 이 정도쯤이야. 덕분에 이른 봄을 맞이한다.

 

이들과 살아가며 함께한다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상대에 대한 안온한 고려가 곧 나에게로 돌아온다. 혼자의 삶은 분명 편안하다. 하지만 결국엔 게으른 천성이 앞선 나 같은 사람은 어느 순간 편안함이 나태함과 권태감으로 돌변하여 자신을 방치하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를 잘 조절해나가면서 혼자임을 돌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것과 같이 역시 중요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혼자이지만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그들에게 애정의 노력을 쏟는 일 같다. 나를 아끼고 타인을 아껴야 할 필요성과 방법을 새로운 네 식구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젠 길가에 핀, 다른 집 화분에 놓인, 산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을 여전히 무심하지만 조금은 애정 어린 마음으로 보게 된다. 여러분들도 여건이 된다면 꼭 새 식구를 맞이해보시라. 또 다른 삶의 면모를 마주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단백질과 영양소에 관한 의구심이 든다면 넷플릭스의 <더 게임 체인저스>를 시청해보십시오. <씨스피라시>, <카우스피라시>의 영상도 함께 시청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동물 착취를 주제로 한 앞선 영상과 달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와 인간의 놀라운 유대를 보여줍니다.

 

책으로는 <아무튼, 비건>, <비건 세상 만들기>를 추천합니다. 기본적인 정보 외에도 비건을 지속하는 데 편안함을 주는 말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한국채식연합>에서는 다양한 채식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채식한끼>라는 앱을 통해서도 채식 식당과 레시피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채식한끼몰>에서는 대체육을 비롯하여 다양한 동물성 음식을 비건 형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나의비거니즘일기'를 검색하면 다양한 이들의 레시피와 생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비건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혜윰 제작소>, <베지곰>, <베지이즈> 등은 훌륭하게 제 식단을 책임지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하자면, 채식이 맛이 없을 거라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물로만 채식이 진행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합니다. 육류를 먹었을 때의 맛을 기본으로 여기고 채식이 그 맛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하지 말고, 독립된 하나의 맛으로서 채식한다면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채식을 수용하고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고기 없이는 먹은 것 같지 않다고 말한 저도 불과 보름 만에 변화했습니다. 느슨하고도 긴밀히 연결될 우리를 아낍니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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