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지구의 지구는 푸르렀다

최미교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2.03.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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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알게 된 것은 <자몽>이라는 짧은 제목의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내용적인 부분도 공감이 되기는 했으나 자몽의 쌉싸름한 맛이 혀끝을 맴도는 듯 자주 떠올리게 되는 글이었다. 다른 글들을 클릭해 읽자 지치지도 않는지 또다시 그에 대한 새로운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Project 당신’은 좋은 핑계거리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 같이 바다 보실래요?”

 

숙소에 짐을 풀고 있는 와중에 반가운 연락이 왔다. 그를 만나는 것. 그리고 바다를 보는 것. 내가 부산에 온 이유였다. 신이 나서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 몇 시쯤 뵐까요?”

 

그렇게 어느 평화로운 토요일 낮, 우리는 바다 근처 카페에서 만나 오래도록 대화를 나눴다. 프리다칼로의 자화상이 있던 방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배우자였던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고, 블룸즈버리 그룹에 대해 이야기했고, 지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안대교에 반짝이는 조명이 켜질 무렵, 우리는 밤바다를 걸었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다



2021년 2월에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처음 시작하셨어요. 그동안 변화하신 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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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마침 정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시점에 친한 친구의 소개로 아트인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원래는 메모장에 떠오르는 단상들을 간단하게 기입하거나 전공 과제를 위한 글쓰기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었고 글쓰기 습관도 일정한 궤도에 정착하게 된 것 같아요. 여전히 벼락치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기근에 시달리다가 쥐어짜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매번 글을 쓰게 돼요.

 

파편화 된 메모들이 구색을 갖춘 글로 변화할 시점에 아트인사이트를 만나게 되신 거군요. 그럼 평소 일기도 꼬박꼬박 쓰시나요?

 

꾸준히 밀려서 쓰더라고요. 불규칙하고 불성실한 것을 굉장히 성실하게 해냅니다. (웃음)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있어서 못 견디겠다 싶을 때는 적게 돼요. 평소 감정의 격랑이 큰 편이거든요. 누군가 제게 5를 줬는데 저는 500으로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대처가 서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방식에 대해 여러모로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어요. 스스로 독립자로 서기 위한 배출구로 글쓰기를 선택한 것 같기도 해요.

 

저도 무슨 일이든 간에 쉽게 그리고 크게 감동을 받는 편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미교님 글들에 공감을 한 부분들이 많았어요. 반면에 인터뷰를 준비할 때는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평소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실 때가 많은데, 혹시 제 질문이 어떤 영역을 침범하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아… 사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는 독자의 그림자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좀 의식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웃음) 그리고 우습게도 그리고 점점 더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날 것의 살덩어리를 꺼내서 거리에 두었을 때, 나도 여기 비슷한 것이 있다면서 옷을 열어서 자신의 살덩어리의 꺼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저한테 힘이 되더라고요. 오히려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해 주고, 진지하게 읽어준다고 느껴요. 왜, ‘나 요새 진짜 힘들어’, ‘삶이 왜 이렇게 팍팍하지?’ 이런 내용의 글들은 서사만 다를 뿐이지 기본적인 골자는 대부분 비슷하잖아요.

 

하나의 접촉으로 남는 글이 아니라 메아리처럼 무언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저는 글이든, 예술작품이든 진실된 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자주 생각해요. 그래서 컬쳐리스트를 한 이후로 유독 날것의 에세이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어제도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셨더라고요.  <정오의 처형>

 

사실 어제는 올리기 직전에 잠깐 걱정을 하긴 했어요. 너무 사적이기도 하고,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혹여 내 성격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웃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 말 너무 공감해요. 저도 그럴 때가 있거든요. 생략과 함축이 많아서 분명 오역될 여지가 충분한 글인데, 굳이 해명하고 싶지는 않은 느낌. 대충 누군가는 알아듣겠지. 근데 누군가가 알아 듣지 못하더라도 이 글은 꼭 쓰고 싶어.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시를 배우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미교님 글을 읽으면서 시인의 쓴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거든요.”

 

“제 글이 조금 불친절한 편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웃음)”

  

“분명 생략하거나 축약하는 부분이 많긴 하죠. 근데 나는… 거기에 생략되어 있는 말이 뭔지 다 알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좋았어요.”

 

“보통 행간을 읽어야 한다고 많이들 이야기를 하잖아요. 띄어쓰기라든가. 그런데 그걸 읽는 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고 자유이기 때문에, 제가 의도했던 바랑 다르게 읽힐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독자가 정말 이상하게 오역하지 않는 이상 번역체마다 또 나름의 맛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의도했던 바랑은 다르지만 또 그 사람 나름의 유의미함을 찾아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요.”

 

미교님의 글을 읽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지점들이 있어요. 보통 한자어 같은 것은 동음이의어나 설명이 필요할 때 쓰는 경우에 쓰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미교님은 해석의 어려움이 없는, 일상적인 단어들에도 어떤 적확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한자어를 병치 시킬 때가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어 ‘뒤틀린 몸뚱어리가 주는 생동(生動)’ 같은 문장이요. ‘그들은 이차원의 세계를 뚫고 나와 우리를 만진다(touch)’ 이렇게 영어를 쓰는 방식도 그렇고요. 그리고 괄호의 형태도 다양해요. 격동한다는 표현도 그냥 쓰지 않고 <격동>한다고 괄호를 쓰시더라고요. 이런 식의 포인트들이 재미있었어요. 언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잠깐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지금 예술에 관한 공부도 하고 있지만 1전공으로 영어를 채택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언어학 공부도 하게 되었고요. 제가 모든 언어를 자신 있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Speaking의 언어와 Writing의 언어가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에요. 말과 글에는 둘 다 나름의 장점과 한계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말로써 무언가를 강조할 땐 톤을 높인다거나 악센트를 쓴다거나, 볼륨을 조절하는 등 청각적으로 변화를 주는 준 언어적 표현을 사용하겠죠. 반면에 활자는 시각적이잖아요. 강조를 하려면 시각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도록 기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독자를 위했다기보다는 그냥 저 스스로 그렇게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요?

 

그렇죠.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저는 언어마다 맛이 다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개인적으로 한국어 표현은 다른 언어에 비해서 다채롭고 세밀한 언어라고 느껴요. 그런데 그건 한국어의 맛이고 영어는 또 영어만의 맛이 있거든요. 한국어의 ‘만진다’라는 표현과 영어의 ‘Touch’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심상은 무척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해요. 또, 한자로 ‘닿을 촉(觸)’이라고 쓰면 그게 또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만진다는 표현은 좀 Neutral 하고 Bland 한 느낌이 있다면, Touch는 제 기준에는 뭔가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이 있어요. 닿을 촉은 조금 더 무겁고 장엄한 느낌이 들고요. 그런데 그때 글에서 Touch를 썼던 이유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만진다’의 중량감이 아니라 좀 더 가벼운 느낌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어요.

 

한자어를 자주 쓰는 이유도 사실 한국에서 한자어가 많이 쓰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자어를 한자어라고 인식했을 때의 느낌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의 느낌이 무척 다르다고 느껴요. ‘격동’이라고 했을 때도 그냥 격동인데 한자어를 옆에 방치하면 격이 무슨 ‘격’인지 동이 무슨 ‘동’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이게 뭐지?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렇게 리마인드 시키는 효과와 더불어 무게감을 더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리고 원래 좀 정형화된 틀을 쓰기 싫어하는 이상한 기질 같은 게 있거든요. (웃음) 프레임 하게 다 입력하는 것보다는 극단적인 행갈이를 한 실험적인 글을 좋아하기도 하고. 왜 달팽이 모양으로 쓴 시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것에 매력을 느끼거든요. 독자들도 읽었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자 운동을 하듯이 읽는 것보다는, 아예 한 번 시각적으로 뒤틀어버리면 리프레시 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 정도의 실력이 없더라도 그냥 그런 식으로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미교님의 글쓰기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나 존재가 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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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확실히 시기별로 읽는 책마다 영향을 받아요. 시니컬한 작가의 책을 읽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세상을 약간 냉소적으로 보게 되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글들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게 되죠.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는데, 한국문학보다는 해외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그래서 종종 제 글이 번역체 같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농담을 할 때도 해외문학스럽게 할 때가 있다고 느끼고요. 제가 그런 문체나 스타일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랑 페르난두 페소아, 보들레르에요.

 

그리고 영향을 준 사람들이라고 하면, 블룸즈버리 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제게도 있어요. 블룸즈버리(Bloomsbury group) 그룹은 버지니아 울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영국의 예술가∙철학가∙문학가 단체의 이름이에요. 울프에게 그 그룹은 일종의 터닝포인트와 같았다고 해요. 그리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도 나름의 블룸즈버리 그룹들이 생기겠죠.

 

학교에서 진행하는 문학 캠프에서 제게 블룸즈버리 그룹이 되어준 사람들을 처음 만났어요. 글을 잘 쓰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색깔과 세계가 뚜렷한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들에게는 제가 분명 낯선 이방인에 불과할 텐데, 너무 기쁘게 저를 환대 해주는 거예요. 환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낯선 세계로의 초대가 무엇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동안 제가 감응했던 작가들은 이미 이 세계에 없거나 멀리 있는 존재들이었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글이 나를 울리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다는걸, 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좋은 인연이네요.”

 

“제 글쓰기 습관에 있어서 모든 처음을 가져갔던 사람들이 거기에 있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서로의 글을 보낼 때도 있는데, 그런 것 하나하나가 제게 다 자극이 되고 영감이 되더라고요. 무척 소중한 인연이에요. 그리고 이건 TMI 이긴 한데, 앞으로 그분들과 함께 유튜브를 시작할 계획도 있어요.”

 

“저 TMI 완전 좋아해요. 혹시 더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채널 명은 <모요일기>라고, 저희끼리 요일을 정해서 글을 쓰고 낭독하는 유튜브를 할 예정이에요. 앗, 그거 원고도 써야 하는데. (웃음)”

 

“구독과 좋아요 누르러 가겠습니다. (웃음) 미교님 글도 기다릴게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다



아까 휴학을 하셨다는 말씀을 언뜻 들었어요. 혹시 휴학하시고 어떤 일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뉴욕 첼시의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갤러리에서 인턴 생활을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직접 가지는 못하고 원거리로 근무를 했죠. 한국 갤러리와 뉴욕의 갤러리를 연결시켜 작가님들을 소개해 주거나 계약하는 일들을 주로 담당했어요. 아트 페어를 준비할 때 리서치를 하기도 했고요.

 

뉴욕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어릴 적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뉴욕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런던, 베를린, 파리, 뉴욕처럼 현대미술의 메카로 여겨지는 곳들 있잖아요. 그중에서 뉴욕만 안 가본 거예요. 그곳에서 일하다가 쉬는 날이면 여유롭게 주변에 있는 미술관들도 돌아보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심화되면서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요. 나중에 다시 한번 그쪽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긴 해요. 버킷리스트처럼.

 

“나중에 등이 훤히 파인 검정 블랙 드레스 입고 작품 설명해줄 것 같아요.”

“아, 막 이렇게 뿔테 안경 끼고? (웃음)”

“맞아요. 나 상상했어. 잘 어울려요.”

“지나친 로망은 현실감 없는 몽상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로망과 적당한 낭만은 삶의 추동력과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그런 것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요.”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셨을 것 같다고 짐작하긴 했어요. 미교님 글들을 읽다 보면 미술에 대한 짙은 애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관련 계통으로 진로를 희망 하시나 봐요.

  

꿈이 큐레이터에요. 학창 시절에 고고학자를 꿈꾸던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흙을 뒤집어쓰고 막 땅을 파면서 채굴을 하는 모습에 대한 일종의 낭만 같은 것이 있었어요. (웃음) 역사랑 예술을 원래 좋아했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한 미술 선생님을 만나서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고대 미술 쪽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면, 그 수업을 통해서 현대미술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거죠.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현대미술의 매력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현대미술 큐레이터를 꿈꾸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울 것 같아서 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답이 없다는 것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분명 다들 권위자임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터마다 모두 보는 시각이 다르고 해석도 다르니까요. 조금 상투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큐레이터는 작가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브리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단지 다리라는 기물로만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미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장을 생산해내는 사람이죠. 수동적인 것 같지만 능동적이고, 소비자임과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하고요. 그런 지점에 매료되어 성인이 된 이후로는 계속 그쪽에 천착해 있던 것 같아요.

 

해외 미술관의 전시를 감상하신 경험이 꽤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미술 기행을 오래 다녔어요. 첫 미술 기행은 파리였는데, 프랑스에서 한 달 동안 살면서 관광을 거의 안 하고 매일 미술관이랑 갤러리만 다녔죠. 이후에도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에 포르투갈, 영국, 아일랜드, 베를린, 스웨덴, 노르웨이 등으로 미술 기행을 다녔어요. 그런데 관광으로 치면 본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열정이 대단했네요. 저는 그래도 거기까지 갔으면 관광을 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아예 안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미술관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죠. 그런 부분에서 확신을 얻은 것 같아요. 내가 이 일을 진짜 하고 싶다는 확신. 간 곳 또 가고, 서너 번씩 가고. 그랬을 때 외롭거나, 지치거나, 재미없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혹시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전시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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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Rothko, Orange, Red, Yellow, 1961

 

 

너무 많아서 손에 꼽기 어렵긴 해요. 그럼에도 말해보자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이 떠올라요. LA의 MOCA에 가면 마크 로스코 룸이 있어요. 사방이 다 그의 작품이고 가운데에는 긴 의자가 하나 놓여있는 곳이에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저도 그 경험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명 깊었던 작품이었어요. 시각적 언어라는 것이 있잖아요.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무언가 날 것의 덩어리를 던져주고, 이걸 해석하는 것은 너의 몫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사방이 원색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압도당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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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Jonas, Moving Off the Land II, 2019, video still. © Courtesy of the artist

 

 

그리고 포르투갈의 리스본 미술관에서 조안 조나스(Joan Jonas)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는데, 환경에 관련된 영상 작업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후로 팬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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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yoi Kusama's Infinity Mirror Rooms ©최미교 에디터

 

 

또,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인피니티 룸에 방문한 기억이 있는데, 괴짜스러운 에너지가 대단하더라고요. 사실 이전에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했을 때는 제프쿤스(Jeff Koons)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은 지나치게 상품화 된 예술이라고 여겼을 때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긴 한데, 예술의 순수함에 대해 신봉하면서 상업미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멋이고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 답다고 여겼던 거죠. (웃음)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직접 가서 봤을 때, 대중들이 그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어요.

       

저는 중세 미술이나 고대 미술, 종교 색이 짙은 미술 등 대부분의 작품들을 편견 없이 좋아하고 그것만이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면에 제게 경계를 넘고 싶어하는 어떤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기질이 있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런 지점에서 독특한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끼고요. 딱 봤을 때, 뭐야? 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것에서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정답이 없으니까 매력적인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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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 제58회베니스비엔날레 설치 전경, 2019 ©리움

 

 

아, 잠시만요. (박수를 친다) 또 있어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강서경 작가님의 설치 회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완전 매료되었어요. 진짜 팬이거든요. 이후에 북서울미술관 특별전에도 갔고, LA에서 전시할 때도 찾아가서 굳이 악수 요청도 드리고, (웃음) 그랬죠.

     

행복해 보여요. 지금 말할 때. 그런데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기질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좋아하시는 예술 사조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그런 거 없다고 말씀하실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있다면요?


예전에는 후기 인상주의와 입체파를 좋아했어요. 브라크나 피카소 같은. 그런데 이제는 손에 꼽기 힘들 것 같아요. 요즘은 영상을 이용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나 여성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제가 글에 쓰기도 했는데, 쉬린 네샷(Shirin Neshat)도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하나거든요. 여성을 중심으로 젠더, 종교, 그리고 이슬람 문화를 주제로 삼는 작가에요.

 

쉬린 네샷에 대해 쓰신 글 읽고 왔어요. <흑과 백으로 담아낸 격동의 삶>

 

‘어쩌면 이것이 예술의 효용성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요즘은 그런 식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나 페미니즘적인 메시지, 혹은 탈식민주의적인 메시지들을 담은 예술작품들을 생산하는 작가들에게 주목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미술관을 걷는 일>이라는 글에서 미술관을 걷는 것은 도서관을 걷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미술 작품을 보는 것을 책을 읽는 것에 빗대어 표현하시기도 했죠. 미교님의 전시관람방법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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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첩 하나와 펜 하나를 쥐고 전시장에 들어가요. 그곳에서 우선 날짜와 요일, 전시명 등을 기록하고 쓰고 싶은 것들을 다 쓰는 것 같아요. 설명해 드리기 위해서 감상 노트를 가져왔는데, 한번 보실래요? (노트 두 권을 꺼낸다)

 

회화 작품을 봤을 때를 예로 들면, 저는 그것의 시각적인 부분, 그러니까 질감부터 색깔, 전시장에 비추는 조명의 형태, 액자 프레임 등까지 다 기록을 하는 편이에요. 여기 보시면 조악한 스케치들도 많죠. (웃음) 그 밖에도 개인적인 감상이나 인상적인 포인트들을 적어요.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그런 것들도 다 기록하고요. 작가에 대한 정보나 예술 사조 등등... 그리고 항상 모든 캡션을 꼼꼼히 읽어요. 그러면서 처음 보는 재료나 신선한 표현들은 기억해 두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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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스케치 같은 경우는 제가 잘 그리는 건 정말 아니거든요. 못 그리는 게 포인트에요. (웃음) 이건 제가 Julie Mehretu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린 건데, 나중에 찾아보시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렇지만 남길 수밖에 없었어요. 사진으로 찍었을 때는 금세 휘발되는 마음인데 어설플지라도 손으로 직접 기록을 하면 손맛 같은 것이 있어서 오래 기억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스케치를 하려면 벤치에 잠시 앉아야 하는데, 그럴 때면 제가 전시장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핀터레스트 같은 사이트들을 보면 전시를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착한 사진들이 인기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전시장 안에 있는 누군가가 저를 오브제로 취급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오브제가 될 때, 전시를 오롯이 다 즐겼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귀한 기록들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 보물 1, 2호에요. 다른 사람한테 처음 보여줘요.”

 

“덕분에 전시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을 배웠어요. 사실 저는 전시를 감상할 때 어떤 미학사적인 틀이나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자유롭게 감상을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제가 그림을 썩 잘 그리지 못해도 우선 그리고 보는 것처럼, (웃음) 무언가를 감상할 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학구열이 넘치는 날도 있을 것이고, 어느 날은 지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미술관을 찾을 수도 있겠죠. 저 역시 메모를 굉장히 적게 하는 날도 있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나올 때도 있어요.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생경한 작품을 마주할 때는 구태여 노력하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을 선명하게 감각하려고 할 때도 있고요.

 

어찌 보면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관점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표현론적 관점, 효용론적 관점, 반영론적 관점… 문학 작품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잖아요.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도 어느 날은 창작자의 의도가 궁금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작품의 아티스틱한 포인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겠죠. 문학작품을 읽는 방식이 독자의 선택인 것처럼, 미술작품을 보러 갈 때 초점을 맞추는 부분도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미교님께 미술관은 어떤 의미인가요?

 

너무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외려 그걸 설명하는 게 어려워지잖아요. 그래서 의미를 최대한 포괄할 수 있는 단어를 골라 보자면, 주머니요.

 

주머니요?

 

네, 제게 꼭 필요한 주머니요. 어디를 가든지 필수품처럼 늘 달고 다녀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디를 가든 미술관은 있으니까. 늘 휴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머니와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주머니 안에서 저는 무엇을 꺼낼 수도 있고 담을 수도 있겠죠. 또, 훗날 나중에 제가 미술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제 밥벌이 주머니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밖에도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영감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생각 주머니가 될 수도 있고, 미적인 감동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아름다움의 주머니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늘 무언가를 얻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버리고 오기도 하니까요. 오랜 편견이나 번뇌 같은 것들이요. 그렇게 그곳에 저의 손톱 하나나 살덩이 하나를 두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갔을 때 제가 두고 온 것들을 떠올리겠죠.

 

*

 

Behind Story



“지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또 시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구가 되고 싶다니. 앞뒤 설명도 없이 훅 들어온 예상치 못한 답변이 워낙 강렬해서 어떤 질문을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놓치면 안 될 이야기 같아서 숨을 죽이고 이어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최근에 아호 같은 게 생겼거든요. 지구예요. 최지구. 평소에 정세랑 작가님을 좋아하는데,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라는 에세이의 제목이 제게 주는 파장이 무척 컸어요. 그러면서 지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지구는 다채롭고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행성이잖아요. 소유하고 싶은 단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보고 떠올렸으면 하는 명사, 그게 지구였으면 했어요.”

 

지구로 불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자신이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항시 상기하게 된다면, 스쳐가는 모든 것들이 새삼스러워지지 않을까. 온갖 경이를 목도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살게 되지 않을까.

 

지구가 그려낼 지구의 아름다움을 앞으로도 기다리게 될 것 같다고, 나도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전문필진-박세나.jpeg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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